16장. 원망 3
“아버지 좀 그만 괴롭혀.”
“뭐라고?”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만난 재희의 말에 재호는 미간을 모았다. 여기에서 아빠를 괴롭히는 거라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누나가 아빠 편을 드는 것처럼. 나는 엄마 편을 들겠다고 하는 거야.”
“뭐가 더 옳은 건지 몰라?”
“그게 뭔데?”
“뭐라고?”
재희는 미간을 모은 채 고개를 저었다.
“표재호 그러지 마.”
“누나야 말로 그러지 마. 아무리 그래도 엄마보다 그 이상한 사람이 우선인 것은 아닌 거라고.”
“뭐라고?”
“그 남자 구해서 뭐 하려고?”
“아니야.”
재희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단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이렇게 나서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다.
“너도 아는 것처럼 거기에는 다른 국민들도 있어. 그 사람들을 찾는 것이 가장 우선인 일이야.”
“그런 거라면 아빠가 이렇게 나서지 않았겠지. 다른 일에 아빠가 이렇게 나선 적이 있었던 거 같아?”
재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입술을 꾹 다물고 무슨 말을 하려다가 고개를 저었다.
“됐어.”
“뭐가 된 건데?”
“네가 뭐라고 하건 너나 나나 서로의 생각을 바꿀 거 아니잖아. 그런데 무슨 말을 더 할 건데?”
“그러는 누나도 바꿀 거 아니잖아. 그래놓고 왜 자꾸만 내가 더 나쁜 사람인 것처럼 그렇게 말을 하는 건데? 그거 이상한 거잖아. 나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 건데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내가 말했잖아. 엄마가 뭘 했는지.”
“그건.”
재호는 순간 답이 궁해졌다. 엄마가 얼마나 못된 짓을 한 것인지 이미 재희에게 다 들었으니까.
“나를 터뜨리려던 것도 엄마야.”
“그거야.”
“뭐?”
“아니야.”
재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엄마 편을 든다고 하더라도 재희까지 공격하려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거였다.
“엄마도 모든 것을 걸고 앞으로 나서려고 하는 중이야. 그런데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거야?”
“누나가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건 아니잖아. 그래도 조금은 두 사람이 더 서로에게 가까워지게. 그렇게 하라는 거잖아. 그거 아니잖아.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거지. 이혼은 안 돼.”
“아니.”
“뭐라고?”
“이혼 하셔야 해.”
재희가 힘을 주어 말하자 재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세게 쥐고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이야?”
“두 분 안 어울려.”
“누나.”
“두 분 필요로 결혼하신 거야.”
“필요?”
재호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이미 다 알고 있는 거였지만 재희의 입으로 들어니 더 무거웠다.
“너도 알고 있잖아. 두 분이 어떤 사이인지. 어떤 상황인지. 다 알고 있으면서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그거야.”
“됐어.”
재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인 후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너는 거기로 간 거잖아.”
“누나는 다시 엄마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다시는 엄마를 보지 않아도. 그렇게 적이라도 된다는 거야?”
“응.”
“뭐라고?”
“그래도 돼.”
재희는 간단하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재호는 혀로 입술을 축인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라는 거야?”
“그래도 되는 거라고?”
“누나.”
“그래도 되는 거니까. 너도 네 편을 들어. 나는 다시 엄마를 보지 않아도 되는 거니까. 너도 마찬가지의 선택을 해.”
“그게 무슨.”
재호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재희가 집무실로 들어갔다. 재호는 멍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로 가려고요?”
“그럼.”
지아는 이른 시간부터 일어나서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윤태도 하품을 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힘들어.”
“왜요?”
“뭐가요?”
“나 혼자 갈게요.”
“아니요.”
지아의 말에 윤태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지아는 입술을 쭉 내밀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같이 가야죠.”
“뭐래?”
“피곤해도 가야죠.”
“그러지 마요.”
지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윤태와 눈을 마주하다가 가볍게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꼭 모든 곳을 같이 가줄 이유는 없어요. 이 정도는 나 혼자서도 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도 갈 거예요.”
“아니요.”
“왜요?”
“같이 가요.”
“치.”
“세수만 하고 올게요.”
“알았어요.”
물가로 가는 윤태를 보며 지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면서도 괜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정말 가지고 가요?”
“그래야죠. 혹시 다른 곳에 전화가 터질 수도 있는 거니까요. 다른 곳에 가서 확인을 해야죠.”
“알았어요.”
지아는 밝은 표정으로 전화기를 받았다. 윤태는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지아는 가볍게 윤태의 어깨를 주물렀다.
“나보다 어리면서.”
“그러게요.”
“뭐예요?”
“더 노력할게요.”
“그래요.”
지아는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확실히 아직도 안 터지네요.”
“걱정이에요.”
재율의 말에 지아는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걱정이었다. 이것저것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그런데 이 섬이 확실히 큰 것 같기는 해요. 그런데 다른 흔적 같은 것은 확실히 아무도 없네요.”
“이렇게 큰 섬에 어떻게 아무도 살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이 섬을 버리는 것은 뭔가 아까운데?”
“모르죠.”
윤태의 간단한 대답에 재율은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 어깨를 으쓱했다. 윤태는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확실히 피곤해.”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
“아니요.”
지아의 걱정에 윤태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뭐 이 정도를 가지고요.”
“그래도요.”
“정말 아니에요.”
윤태는 먼저 저 앞으로 나갔다. 지아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일부터는 누나도 나오지 마요.”
“네?”
재율의 말에 지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누나가 너무 혼자서 뭐든 다 하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저 형도 저렇게 힘들어 하는 거고요. 아니에요?”
“그건.”
지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침을 삼켰다. 재율의 말이 옳았다. 자신이 너무 무리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럴 수도 있네.”
“그러니까요.”
재율의 말에 지아는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아니요. 어차피 같이 가야 하는 사람들인데요.”
“그래?”
“그럼요.”
재율은 이 말을 하고 앞으로 나갔다. 지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두 사람을 따라서 걸음을 옮겼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죠.”
“무슨 방법이요?”
시안은 지웅의 덤덤한 말에 미간을 모았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시안은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뭐 하자는 건데요?”
“뭐라고요?”
지웅은 곧바로 미간을 모았다.
“라시안 씨. 지금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여기에서는 그 어떤 답도 내릴 수 없다고요.”
“그래도 뭔가 해야죠.”
“뭔가라뇨?”
“아니.”
지웅의 대답에 시안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지웅에게 온다면 무슨 말을 들을 거였다.
“그런 식으로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죠. 그 동안 사무장이라고 그렇게 했으면 무슨 답이 있어야죠.”
“솔직히 나도 내가 무슨 답을 내려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라시안 씨는 무슨 답을 갖고 있나요?”
“없으니까 온 거죠.”
“저도 없습니다.”
지웅은 간단하면서도 단호하게 대답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있다면 강지아 씨가 먼저 나서기 전에 제가 무슨 말이라도 했을 겁니다. 강지아 씨를 위해서라도 말이죠.”
“뭐라고요? 그게 무슨?”
“그 동안 너무 고생했잖아요.”
“누가 고생을 했다는 거예요?”
시안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웅은 굳이 이해를 하지 못하는 시안을 설득할 이유가 없었다.
“라시안 씨는 라시안 씨의 일에 대해서 선택하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건 나와 강지아 씨의 선택인 거고요.”
“그 선택이라는 게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거잖아요. 그걸 몰라요?”
“알죠.”
“아는데요?”
“어쩔 수 없습니다.”
“무책임해.”
시안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가만히 지웅을 노려보더니 미간을 모았다.
“그거 되게 무책임한 거예요. 승무원이 그러면 안 된다고요. 한국으로 돌아가면 고소할 거예요.”
“꼭 그래줘요. 한국으로 가면.”
지웅의 힘없는 대답에 시안은 한숨을 토해냈다. 결국 아무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절박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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