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장. 기나긴 긴장 3
“다시 확인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안 그래도 하고 있어.”
나라의 물음에 지웅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벌써 여러 번이나 확인을 했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더 이상 터지지 않아.”
“그러면 가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래도 가야지.”
“그건 너무 위험해요.”
나라의 대답에 지웅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위험했다. 위험하지 않다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 남는 것. 그것이 안전하다고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무조건 가야 하는 거였다.
“그 사람들을 우리가 구조가 되고 나서 구조를 해도 되는 거잖아요. 꼭 지금 가지 않아도 되는 거잖아요.”
“아니.”
“왜요?”
“안 구할 거야.”
“안 구한다고요?”
“당연하지.”
지웅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숙였다.
“한국에서 우리를 구하려고 했다면. 이곳에 누구라도 살아있을 거라고 믿었다면 진작 왔을 거야. 하지만 그 누구도 오지 않았어. 그 이야기는 이미 우리가 죽었다고 생각을 한다는 이야기야.”
“그게 무슨.”
나라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국가라면 무조건 국민을 구해야 하는 거였다. 그런 식의 생각은 말이 안 되는 거였다.
“우리가 여기에 이렇게 있는 걸요?”
“그래도.”
“말도 안 돼.”
나라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말이 안 되는 거였다. 너무 속상했다. 너무 속상해서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다들 이게 아무렇지도 않은 거예요?”
“화가 난다고 달라질까?”
“네? 달라지지 않나요?”
“그럼.”
지웅은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은 너무 작은 사람들이었다.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을 거였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 누구도 우리의 말을 듣지 않을 거야. 우리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으니까.”
“그럼 뭐가 중요한 거죠?”
“이슈.”
“이슈요?”
나라는 미간을 모았다. 이슈라니. 사람들이 위험한데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지웅은 진지했다.
“선배는 지금 하신 말씀을 믿는 거죠?”
“확신해.”
“확신이라니.”
나라는 아랫입술을 잘게 물었다. 그냥 믿는 것도 아니고 확신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큰 말이었다.
“나는 선배의 말에 동의하지 않아요. 그건 말이 안 되는 거니까. 그럴 수는 없는 거니까요. 안 그래요?”
“그렇지. 보통 사람이라면.”
“보통 사람이요?”
“응. 보통 사람.”
지웅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이 아닐 거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여태 오지 않을 리가 없으니까. 그들이 마주한 한국 사람들은 보통이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가 어떤 확신을 보여주지 않으면 이곳에 오지 않을 사람들이야. 지금도 모르겠어.”
“모른다고요?”
나라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누군가가 자신들을 구하러 올 거라는 확신도 없이 가야 하는 거였다.
“그거 너무 위험한 거 아니에요?”
“위험하지.”
“선배!”
나라가 새된 소리로 비명을 지르자 윤태는 씩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요?”
나라는 머리를 뒤로 넘기며 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지금 너무 무서워요.”
“그래.”
“그리고 선배는 그렇게 무서운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고요.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죠?”
“그게 사실이니까.”
“아니요.”
나라는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면 적어도 그렇게 잔인하지 않을 거였다. 적어도 국민을 위한 일이라면 귀찮기는 하지만 나설. 그런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다.
“우리 문자를 보고 올 거예요.”
“그래.”
지웅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보낸 문자를 보고 이 섬으로 오기는 할 거였다. 하지만 그 섬이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모든 섬을 다 돌지 않을 거였다.
“섬들을 다 도는 것은 힘들 거야.”
“그건 우리가 하면 힘든 거죠.”
“아니.”
나라의 항변에도 지웅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누가 해도 힘들어.”
“그게 무슨 말이죠? 이해가 안 가요.”
“사람들에게 우리는 그다지 중요한 사람들이 아니야. 우리가 죽건 말건.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
“의미가 없다니.”
나라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였다. 그런데 그게 의미가 없을 수 없는 거였다.
“우리에게 뭐가 더 중요한 건지 모르겠어요. 지금 그럼 우리는 뭘 해야 하는 거죠? 뭘 할 수가 있는 거죠?”
“모르겠어.”
“선배가 모르면 어떻게 해요?”
“그러게.”
지웅은 혀를 내밀고 어색하게 웃었다.
“나도 뭘 알아야 하는 건데. 내가 뭘 알아야 하는 건지. 그리고 내가 뭘 할 수가 있는 건지 모르겠어.”
“다 같구나.”
“다 같지.”
지웅의 대답에 나라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머리를 뒤로 넘기고 한숨을 토해냈다.
“뭐 어쩔 수 없는 거죠. 선배님이라고 해서 뭐든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차라리 지금은 좋네요.”
“응?”
“사람 같아서?”
“뭐래?”
지웅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해야 하는 거지.”
“그게 뭔데요?”
“당황했다는 티를 내지 않는 거.”
“네?”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놀라면 안 되는 거니까.”
“아. 그렇군요.”
나라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옳았다. 자신들이 흔들리면 사람들도 알 수박에 없을 거였다.
“우리가 해야 하는 거.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우리가 해아만 하는 거. 그게 바로 그거인 거네요.”
“그렇지.”
지웅은 혀를 내밀고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긴장되지만 어쩔 수 없는 거였다.
“언니 여기에 있었어요?”
“그럼.”
세연이 반가워하며 지아의 옆에 앉았다. 윤한도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짧게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 앉았다.
“우리들 다 여기에 있구나.”
“모두 같은 생각을 하니까.”
“그런가?”
지아의 말에 윤한은 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문도혁 씨가 다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거죠. 모두 다 같은 상상을 하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모두 옮기고 있는 거죠. 그러면 아 되는 거니까. 그건 너무 위험한 거니까.”
“그렇죠.”
재율은 무릎을 안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갈 수 있겠죠?”
“그럼.”
지아는 재율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씩 웃었다.
“당연히 나가지.”
“누나는 자신감이 되게 넘치는 거 같아요.”
“그게 내 유일한 장점이지.”
“그렇죠.”
“뭐라고?”
재율이 동의하자 지아는 미간을 모은 채 고개를 저었다. 재율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좋다.”
“그러게.”
지아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있다는 게 정말 다행이었다.
“너무 좋아.”
이렇게 모두 그대로 가면 되는 거였다. 다른 것은 고민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떠나면 되는 거였다.
“젠장.”
도혁은 낮은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었다. 무조건 여기에서 나가야만 하는 건데 이대로라면 나갈 수 없을 거였다. 다들 배를 지키기라도 하려는 모양이었다. 도혁은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다들 미친 거 아니야?”
도대체 저기에서 하루 종일 뭘 하겠다고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건 말도 안 되는 거였다.
“미친 새끼들.”
도혁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무슨 수를 써야 했다. 석구와 태욱이 구해지는 것은 무조건 막아야만 하는 거였다.
“아빠 정말 괜찮은 거죠?”
“그럼.”
재호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대통령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렇지도 않아.”
“아무렇지도 않기는.”
재호는 한숨을 토해내며 미간을 모았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정말. 왜 그러는 거예요? 아빠가 아빠 몸을 챙기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아빠 몸을 챙길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건데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래.”
“정말 싫어.”
“알아.”
대통령은 그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엄마 때문이죠?”
“아니.”
“아니긴.”
“아니야.”
재호가 다시 한 번 물었지만 대통령은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이 어린 아이에게 자신의 일을 전가할 수 없었다.
“네 엄마와 나는 이미 모든 것을 끝을 내기로 한 사이야. 그런데 다른 문제가 더 있을 것이 뭐가 있을 거 같아?”
“없어요?”
“그럼. 없지.”
대통령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재호는 한숨을 토해냈다.
“엄마가 이해가 안 가요.”
“너까지 그러지 마라.”
“알아요.”
대통령의 지적에 재호는 어색하게 웃었다. 자신마저 그러면 안된다는 거.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속상한 것이 사실이었다. 자신이 뭘 할 수 있는 건지. 그리고 뭘 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뭘 도와야 하는 걸까요?”
“없다.”
“정말요?”
재호의 간절한 물음에도 대통령은 그저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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