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장. 긴박한 순간 4
“문제가 될 겁니다.”
“알아.”
부하의 말에 해군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생각을 하지 않고 결정을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부하의 말까지 이렇게 나오니 뭔가 걱정이 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할 수는 없잖아. 이미 그 사람을 가둔 거고. 우리는 한국에서 온 말을 따라야 하는 거고.”
“그거야.”
“나를 믿어.”
“믿습니다.”
해군은 씩 웃으면서 부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거 기분 좋군.”
“하지만 이건 별개의 일입니다. 저는 좋은 상관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제 마음 모르십니까?”
“알지.”
늘 자신을 따라서 모든 것을 다 해주던 사람이었다. 해군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냥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지. 그게 뭔지. 그게 뭐가 더 중요한 건지. 그런 것도 의미가 없고.”
“하지만.”
“됐어.”
해군은 박수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전하게 해주게.”
“하지만 다시 또 이런 거니.”
“괜찮아.”
해군은 씩 웃었다.
“아침이면 모든 게 끝이 날 거야. 아침이면 첫 섬. 우리가 가기로 한 섬에 도달하기로 한 거지?”
“맞습니다.”
해군은 손가락을 튕겼다. 다른 때의 모습과 달라서 부하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아무 말을 보태지 않았다.
“이걸로 된 거야.”
해군은 헛기침을 하고 혀를 살짝 내밀었다. 굳이 뭔가 더 걸 이유는 없었다. 할 수 있는 것. 그저 해야 하는 것을 하는 거. 그게 전부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거 하려고 하는 거니까. 내가 지금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두 의견에 따르면 안 되는 거야.”
“그렇군요.”
“한 가지에 몰입하는 거. 그게 오롯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거야. 그러니까 다른 건 보지 않을 거야.”
“저도 그러겠습니다.”
해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내일이면 모든 것이 결정이 나는 거였다. 그것만 걸면 되는 거였다.
“강지아 씨 다행이네요.”
“뭐가요?”
윤태는 날이 선 지아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그러니까.”
“뭐가 다행이라는 거죠?”
“네? 그러니까 거기에 같이 가지 않아서.”
“그게 이윤태 씨랑 무슨 상관이죠?”
“그러니까.”
윤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지아가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차갑게 반응을 보이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그러는 겁니까? 내가 지금 강지아 씨에게 무슨 실수라도 한 것 있습니까? 그런 말 하지 마요.”
“아니요.”
지아는 머리를 뒤로 넘기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이윤태 씨 내가 말했잖아요. 우리 이제 끝이라고. 우리 더 이상 이럴 이유 없다고 말이에요. 내 말을 무시하는 거예요?”
“그러는 강지아 씨야 말로 내 말을 무시하는 겁니까? 나는 그런 거 용납하지 못한다고 했잖아요.”
“그게 무슨?”
지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윤태를 위해서 옳은 일이었다. 자신은 윤태의 삶을 망가뜨려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럴 수 없었다. 그건 윤태에게 너무나도 잔인한 일이었다.
“나 기자야.”
“그런데요?”
“여기 생리 알아.”
“나도 알아요.”
윤태도 밀리지 않았다.
“내가 강지아 씨를 사랑한다는 게 강지아 씨를 얼마나 힘들게 할지 알아요. 그러니까 미안해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 놓치고 싶지 않아요. 강지아 씨를 사랑하니까. 너무 좋아하니까 그러고 싶지 않아요.”
“뭐라고요?”
“그거 아닙니까?”
윤태는 목소리를 높이며 손을 쫙 폈다.
“내 팬들이 강지아 씨 욕을 할 테니까.”
“아니.”
“내가 지켜줄게요.”
윤태는 혀를 내밀어 입술을 훑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목을 가다듬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게 얼마나 지치는 일인지.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으니까 강지아 씨가 힘들지 않게 지켜줄게요. 제발 그러지 마요. 내가 강지아 씨를 지킬게요.”
“아니요.”
지아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윤태가 자신에게 이렇게 말을 해주는 것이 더 불편하고 답답했다. 너무 미안했다.
“왜 그래요?”
“뭐가요?”
“나는 당신에게 좋은 사랑이 아니에요.”
“좋은 사랑이에요.”
“뭐가요?”
“가장 힘든 순간에 있어줬으니까.”
“그거야.”
지아는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어쩔 수 없는 거였다. 그리고 윤태는 자신이 아니었더라면 여기에 오지 않을 거였다.
“나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그게 모두 다 나 때문인 거 같으니까. 그러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아니요.”
윤태는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진심으로 누군가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면 안 되는 거라고요.”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지아도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이런 식으로 윤태의 곁에서 늘 그를 괴롭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기사를 쓰는 사람이잖아. 이런 곳에서 남자랑 여자가 연애를 시작했다고 하면 온갖 말이 다 나올 거라는 거. 그 엄청난 루머들. 그거 몰라요? 그런 거 없어요? 그런 거 모르고. 그러는 거예요?”
“알아요.”
“아는데 이래요?”
“네. 아는데 이럽니다.”
윤태는 지아에게 한 발 내딛었다. 지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머리를 넘기고 싸늘하게 웃었다.
“이미 서준 씨에게도 말했어.”
“준이 형이 가래요.”
“뭐라고요?”
“강지아 씨가 이상하다고.”
“아니.”
지아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건 또 무슨 말인지. 서준은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서 매니저 미친 거 아니에요? 내가 이윤태 씨에게 얼마나 힘든 사람인지 모르는 거예요? 그게 말이 돼요?”
“그러게요.”
윤태는 턱을 어루만지며 씩 웃었다.
“좋은 매니저다.”
“뭐라고요?”
“내가 뭘 바라는지도 알고.”
“이윤태 씨.”
“그만 밀어내요.”
윤태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긁적이면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지금 진심으로 이윤태 씨를 걱정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나 연예부 기자에요. 이윤태 씨가 한국으로 가면 무슨 일들을 겪을지 알아요. 그게 얼마나 큰일인지도 알고 얼마나 이윤태 씨를 힘들게 할지도 알아요.”
“그래서요?”
“그래서라뇨?”
“그게 강지아 씨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이유가 되나요?”
“그게 무슨?”
윤태는 순간 얼굴을 훅 앞으로 들이밀었다. 지아는 침을 꿀꺽 삼킨 채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윤태가 손을 잡았다.
“이거 놔요.”
“원래 연인이 만나다 보면 헤어질 수도 있고 계속 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라면 싫어요. 정말로 우리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서 그런 게 아니라 무슨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을 거 같아서 그런다는 거. 나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지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이건 아니었다. 이러면 안 되는 거였다.
“나 이윤태 씨의 삶을 망가뜨릴 자신이 없어.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이윤태 씨 안 그래도 한국에 가면 온갖 질문이 다 쏟아질 거야.”
“그런데요?”
“이윤태 씨.”
“되게 이상한 거 걱정하시네.”
윤태는 혀를 내밀고 이를 드러내고 씩 웃었다.
“우리 한국으로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니요. 이건 좋은 거예요. 미래를 걱정할 게 아니야.”
윤태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강지아 씨. 그냥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이거만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겁니까? 꼭 그런 여러 것들. 미래. 복잡한 일들. 그런 걸 다 생각을 해야 해요? 나 처음이에요. 누군가가 이렇게 좋아진 거. 그러니까 제발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들 하지 마요. 그런 거 나에게 중요한 거 아니에요. 나에게 중요한 건 오직 강지아 한 사람이에요.”
“이윤태 씨. 하지만.”
지아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했지만 윤태는 힘을 주어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지아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미치겠어.”
“왜 미쳐요?”
“답답하니까.”
“뭐가요?”
“이윤태 씨가 너무 좋게만 생각하니까.”
“아니요.”
윤태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도 너무나도 두려웠다. 가장 무서운 순간. 가장 끔찍한 모든 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걸 처음으로 돌릴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나는 강지아 씨가 좋아요. 그래서 다른 건 전혀 생각하고 싶지 않아. 다른 걸 생각하면 뭔가 바뀔 거 같아요. 그거 너무 이상한 거잖아. 그런 식으로 흔들리고 싶지 않아. 그건 잘못이니까. 그러면 안 되는 거니까. 더 이상 멍청한 짓을 하고 싶지도 않고. 그런 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요.”
“뭐가 멍청하다는 거죠?”
“한 번 어긋나면 다시 원래의 궤도로 올리는 건 어려워요.”
윤태의 대답에 지아는 한숨을 토해냈다. 그의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지만 너무 답답했다. 무서웠다.
“이윤태 씨는 지금 그게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말하지만 나는 너무 무서워요. 겁나. 알아요?”
“알아요.”
“아는데 이래요?”
“아니까 이래요.”
“이윤태 씨 제발.”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갈 거예요.”
지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순간 텐트에 큰 불빛이 보였다.
“저게 뭐죠?”
“불?”
“불이다!”
지아는 눈이 커다래졌다. 불이 났다. 지아는 다급히 그리로 뛰어갔다. 윤태도 그런 지아의 뒤를 쫓아갔다.
“여기에 있었어요?”
“표재율 씨?”
진아는 발목을 문지르다가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재율은 한숨을 토해내며 진아에게 등을 내밀었다.
“업혀요.”
“하지만.”
진아는 무슨 말을 더 하려다가 재율의 등에 엎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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