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친구가 된다는 것
“그런데 걔는 왜 쓰러진 거야?”
“그냥 자기 성질 못 이긴 거지.”
지수의 대답이 원희의 귀를 파고들었다. 누구 하나 아정의 편을 들어서 대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사실 그렇잖아. 윤아정 늘 자기가 하고 싶은 거 다 해야 하는 사람이었어. 그런 애가 지금 자기 성질을 어떻게 이겨. 전학생을 무시하고 그랬었는데 전학생이 자기 마으매로 되지도 않지. 자기가 나쁜 사람이 된 거니까. 그거 지금 못 견뎌서 그렇게 혼자 뒤로 넘어간 거잖아. 안 그래?”
“하여간 유별나.”
“그러니까.”
원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떻게 모두 이런 태도를 가지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원래 그래?”
“어?”
“애들.”
“아. 뭐.”
지석은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아는 것처럼 아정이가 그렇게 살가운 성격은 아니니까. 아무래도 평소에 좋아하지 않는 애도 있었지.”
“이건 그걸 넘어섰잖아.”
원희는 마치 자신이 이 모든 일의 중심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라서 너무나도 불쾌했다. 이건 단순히 아정에게만 쏟아지는 말들이 아니었다. 결국 자신도 이 모든 것과 관련이 되어있는 거였다.
“다들 왜 이러는 거야?”
“뭐가?”
“이상하잖아.”
“하나도 안 이상해.”
음료수를 마시며 지석은 별 거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너도 본 것처럼 윤아정 늘 그렇게 행동했어. 늘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을 했었다고. 그런 에에게 모두가 이렇게 반응하는 게 설마 나쁘다고 하는 건 아니지? 윤아정 너에게도 그랬어. 안 그래?”
“그럼 나만 화를 내야지.”
“뭐라고?”
“나에게만 자격이 있는 거지.”
원희으 말에 지석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별 말을 하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희는 고개를 저었다.
“다들 그냥 기회만 찾고 있었던 거 아니야? 윤아정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기회 말이야.”
“너 지금 제대로 해야 할 걸?”
“뭐?”
“너 지금 윤아정 편을 드는 거야?”
“아니.”
원희는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경우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제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이제 수능을 봐야 하고 성인이 되어야 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건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이 나이에 지금 왕따라는 거. 이거 되게 우스운 거 아니야? 이거 되게 이상하고 유치한 거잖아.”
“그럼 안 돼?”
“뭐라고?”
“너는 몰라.”
지석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너는 그 동안 아무 것도 모르는 거잖아. 우리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모르는 거잖아. 왜 그 누구도 윤아정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건지 모르잖아. 그래놓고서는 왜 우리 탓을 해? 왜 우리가 잘못한 것처럼 말해. 이원희. 너도 지금 되게 속시원하고 그런 거 아니야? 너는 달라?”
“달라.”
원희는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자신은 이 가운데 있고 싶지 않았다.
“내가 바라는 게 아니야.”
“그럼 너는 빠져.”
“아니.”
원희는 다시 한 번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이건 이미 자신과 관련이 되어 있는 일이었고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였다. 앞으로 계속 자신과 이 문제는 연결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윤아정이 그런 취급을 받지 않기를 바라. 게다가 나로 연관된 사건으로 인해서 말이야.”
“그럼 네가 해야지.”
“네가 도와주기 바라.”
“뭐라고?”
원희의 말에 지석은 미간을 모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 친구잖아.”
“친구?”
“아니야.”
“뭐.”
지석은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의 정의라는 것은 다소 애매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원희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윤아정을 돕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윤아정이 싫어.”
“부탁이야.”
원희의 말에 지석은 침을 꿀꺽 삼켰다.
“뭐가?”
“아마 지금 이런 식으로 윤아정 계속 왕따를 당하는 상황이라면. 내 이야기도 계속 나올 거 같은데. 아니야?”
“아마 그렇겠지.”
지석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전학생 이야기가 당연히 나올 거였다.
“나는 그게 불쾌해.”
원희늰 지석의 눈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도와줄 거야?”
“뭐.”
지석은 입술을 꾹 다물고 어색하게 웃었다. 싫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원희의 표정을 보니 그럴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네.”
“고마워.”
원희는 곧바로 이를 드러내고 밝게 웃었다. 지석은 묘한 표정을 지은 채 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
갑작스러운 원희의 사과에 아정은 침을 꿀꺽 삼켰다. 원희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왜 그러는 거야?”
“뭐가?”
“아니.”
왜 사과를 하려고 하는 거냐고 따져 묻는 것도 너무나도 이상한 말이었지만 물어야만 하는 거였다.
“너 나 싫어하잖아.”
“응. 싫어.”
“뭐야.”
이렇게 바로 싫어한다고 대답을 하다니. 아정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좋게 지내려고 해도 그게 간단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나에게 사과를 하는 거야? 내가 싫으면 그냥 미워하면 되는 거잖아. 그게 더 간단한 거 아니야?”
“그거 너무 유치한 거 같은데?”
“뭐라고?”
“우리 애가 아니잖아.”
원희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별 것 아니라는 것처럼 대답했다. 이런 원희의 태도가 너무 불편했다.
“너는 뭐든 그렇게 쉬워?”
“뭐라고?”
“이상하잖아.”
아정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너무 이상하잖아.”
“뭐가?”
“다.”
아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원희는 자신이 사는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느 사람이었다. 이 상황에서도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숨기거나 그런 것을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당당해?”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뭐지?”
“너는 네가 좋아?”
“응. 좋아.”
원희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아정은 허탈했다. 스스로를 이렇게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그녀가 아는 세상 안에는 이런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너는 늘 그런 식이야? 늘 당당하고. 늘 겁이 나지 않고. 늘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이야?”
“응.”
원희는 너무나도 간단한 것을 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정은 아랫입술을 꽉 물고 고개를 저었다.
“가.”
“왜?”
“가라고.”
“싫어.”
원희의 대답에 아정은 미간을 모았다. 아니 자신이 괜찮다고 하는데 왜 이러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여기에 왜 있는 건데?”
“그냥?”
“뭐라고?”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서.”
아정은 아랫입술을 꼭 물고 침을 삼켰다. 마치 원희가 자신의 잘못을 쿡 찌르는 것 같아서 불편했다. 하지만 이런 아정의 기분과 다르게 원희는 덤덤할 따름이었다. 아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에게 이러는 이유가 뭐야?”
“사이 좋은 척?”
“뭐라고?”
“그래야 내 소문도 사라지지.”
“그게 무슨?”
“너 때문에 나도 유명인사가 되었거든.”
원희는 입을 쭉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아정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물고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토해냈다.
“그래서 뭐 하자는 거야?”
“동맹?”
“동맹이라고?”
아정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전학생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몰라도 자신과 전학생의 동맹은 불가능했다.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왜 안 될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건데?”
“이미 우리 두 사람이 원수라는 걸 다 알고 있는데 이게 정말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는 말이야?”
“응.”
“뭐라고?”
“뭐여야 하는 이유가 있어?”
“야. 전학생.”
“내 이름은 이원희.”
원희는 자신의 명찰을 가리키며 씩 웃었다. 아정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토해냈다.
“뭘 원하는 거야?”
“적어도 지금 내가 가난하다는 소문이 사라질 정도로 사람들이 너에게 관심이 사라지는 거?”
“뭐라고?”
“어렵나?”
원희는 귀를 후비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나만 좋은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
원희의 말에 아정은 미간을 모았다.
“너는 뭐든 그렇게 간단한 것처럼 말하는데 말이야. 생각보다 그렇게 간단한 일들이 아니거든.”
“일단 야자부터 빼자.”
“뭐라고?”
“그러면 되는 거잖아.”
아정은 코웃음을 쳤다. 학교는 그리 간단한 곳이 아니었다. 게다가 한 사람에게 이런 것을 봐준다면 자꾸 이어질 거였다.
“안 될 거야.”
“안 해봤잖아.”
“뭐라고?”
“해봤어?”
“아니.”
그런 것들은 꼭 해봐야만 가능한 게 아니었다. 이 학교가 명문인 이유는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원희의 단호한 표정을 보니 뭐라도 답이 나올 것만 같다는 생각에 아정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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