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새 아르바이트
“정말로 그래도 된다고요?”
“응.”
담임의 간단한 말에 아정은 침을 꿀꺽 삼켰다. 당연히 안 될 거라고 생각한 일이 가능하다고 하니 당황스러웠다.
“우리 학교 원래 아르바이트 같은 거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아닌데?”
“네?”
“우리 가능해.”
은선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미소를 지었다.
“다들 안 물어보더라고. 우리 학교에 그런 규정은 없어. 적어도 내가 아는 와중에는 말이야. 그런데 너는 왜 물어본 거야?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물어본 거 아니었어? 그게 아니면 왜 물은 거야?”
“아니.”
아정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이 학교에 더 오래 붙어있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럼 언제부터 가능한 거예요?”
“그런데 보호자 사인이 필요해.”
“네?”
“그게 필수야.”
“보호자라니.”
아정은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누구에게 도움을 구해야 하는 건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네가 이 시간에 웬 일이야?”
“나 오늘 쓰러졌거든.”
“아.”
서정은 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간 이런 게 오빠라니. 아정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엄마는?”
“늦는데.”
“언제 오는데?”
“모르지.”
서정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대답하자 아정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하여간 도움이 안 되는 인간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뭐가?”
“네가 언제 집에 와서 엄마 찾은 적 있어?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 있어서 엄마의 도움이 필요한 건데?”
“그런 거 아니야.”
“아니긴.”
서정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사람처럼 대답했다. 아정은 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다 문득 눈을 반짝였다. 이쪽도 뭐 굳이 보호자라고 하면 할 수 있을 수 있는 사람일 거였다.
“사인 좀 해줘라.”
“어디에?”
“여기에.”
아정이 마치 친구에게 사인이라도 받아주는 것처럼 종이를 내밀었지만 이대로 넘어갈 서정이 아니었다. 서정은 재빨리 종이를 가져가서 확인한 후 미간을 모은 채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저었다.
“이거 뭐야?”
“아니.”
“윤아정.”
“왜?”
“아니다.”
서정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다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자신도 고등학생부터 연기를 한다고 다녔으니까.
“네가 뭘 하고 다니는 건지는 몰라도 담임 너무 힘들게 하지 마. 네 선생님 많이 고생하니까.”
“오빠 담임이었다고 엄청 챙기네.”
“그럼.”
서정이 사인을 마치기가 무섭게 아정은 그것을 빼앗아 챙겼다. 서정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여간 너는 네 오빠한테 너무 싸가지가 없게 굴어. 다른 사람들은 너 착한 애인 줄 아는 거지?”
“그럼.”
아정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자 서정은 코웃음을 치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정은 눈을 깜빡였다.
“오빠는 사랑스러운 여동생이 안 보이니?”
“그런 건 없는 거 같은데.”
“오빠!”
아정이 소리를 지르자 서정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정은 볼을 잔뜩 부풀린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빠 성격이 그 모양인 건 연애를 못해서 그러는 거야? 아니면 연애를 못 해서 성격이 그 모양인 거야?”
“이 성격 너랑 꼭 닮았어.”
“아니거든!”
아정은 고함을 지르고 방으로 들어갔다. 서정은 엷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씩 웃었다.
“하여간 닮았어.”
“또 멍 때린다.”
“죄송합니다.”
선재의 지적에 원희는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선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야?”
“네?”
“이상하잖아.”
“아니요.”
원희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자꾸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스스로의 일을 가지고 오는 기분이었다. 이러면 안 되는 거였다.
“죄송합니다.”
“또 사과.”
선재는 한숨을 토해내고 미간을 모았다.
“꼬맹이. 나를 그냥 좋은 아저씨로 생각을 하라니까? 네가 고민이 있으면 나에게 말을 하라고.”
“아니요.”
원희는 고개를 저었다. 이곳과 자신의 삶은 다른 곳이었다. 지나칠 정도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건 이쪽에서 사절이었다.
“그냥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그러는 거예요. 일하는 곳에서는 사실 말하기가 조금 그래요. 죄송합니다.”
“아니요.”
선재는 볼을 부풀리며 고개를 저었다.
“네가 그렇게 말을 하는데 내가 계속 물으면 잘못이지.”
“고맙습니다.”
“오늘은 들어가도 돼.”
“네?”
선재의 말에 원희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 모든 것을 말하지 않는다고 그만 두라는 건가?
“그러니까.”
“오늘 손님이 오기로 했거든.”
“손님이요?”
“응.”
선재는 씩 웃으며 코 아래를 검지로 비볐다.
“오늘은 내가 사정이 있어서 가라고 하는 거니까 월급이랑은 상관이 없어. 아무튼 먼저 가라고 해서 미안해.”
“아니요.”
일찍 가라고 하는 거라면 차라리 다행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혹시 주위에 아르바이트 하려고 하는 애 없어?”
“네?”
“내가 다른 지점을 하나 더 차리려고 해서 말이야. 혹시라도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이 있나 해서 말이야.”
“없을 걸요?”
원희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순간 아정의 생각이 떠올랐지만 그쪽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그래. 들어가.”
원희는 옷깃을 여미고 가게를 나왔다. 이제 겨울이었다.
“어떻게 되려나?”
“너 일하는 곳에서 일할래.”
“뭐라고?”
아정의 말에 원희는 미간을 모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왜?”
“아니.”
아정의 너무나도 당당한 태도에 원희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당당하게 요구하는 건지.
“그걸 왜 나에게 말하는 건데?”
“뭐라고?”
“그거 나랑 상관이 없는 거잖아.”
원희는 일단 거리를 두기로 했다. 아니 거리를 두는 게 옳았다. 이건 자신이 바라던 것이 아니었다.
“너 스스로 뭐라도 하라는 뜻이었어. 그런데 이렇게 나에게 와서 하는 거 뭔가 이상한 거 같은데?”
“나 그런 거 한 번도 구해본 적 없어. 그리고 나처럼 예쁜 애에게 그건 너무 위험한 일 아니야?”
“그게 도대체 무슨.”
아정의 당당한 태도에 원희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스스로를 예쁘다고 말을 할 수가 있다니.
“너 그거 농담이지?”
“아니.”
아정은 씩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럼 부탁해.”
“야!”
아정은 이 말을 남기고 자리로 돌아갔다. 원희는 침을 꿀꺽 삼켰다. 화장실에 다녀오던 지석이 미간을 모으며 자리에 앉았다.
“뭐야?”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것도 아니긴,”
지석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윤아정이 또 너를 괴롭히는 거야? 그런 거라면 그냥 넘어가면 안 되는 거라는 거 너도 알지?”
“그런 거 아니야.”
원희는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그런 거라면 이런 스트레스는 받지 않을 거였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농담이 아니었어?”
“농담은.”
원희의 말에 아정은 볼을 부풀린 채 고개를 저었다.
“나 진심이야.”
“미친 거네.”
“어?”
원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왜 자꾸 아정이 자신과 엮이라고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건 서로에게 좋은 게 아니었다.
“그저 네가 나를 괴롭히지 않는 그 모습만 보이면 되는 거 아니야?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그냥?”
아정은 어깨를 으쓱하고 밝게 웃었다.
“그리고 나 이제 친구가 없거든. 전학생 네가 내 말을 무시해서 말이야. 그러니까 네가 책임을 져야 하는 거지.”
“그건 무슨 말이야.”
원희는 머리를 마구 헝클며 한숨을 토해냈다. 하지만 원희가 답답하게 느끼건 말건 아정은 그저 여유로울 따름이었다.
“그래서 싫어?”
“누군가에게 소개해줄 자리 없어.”
“그럼 네가 일하는 곳에 가서 앉아라도 있어야지.”
“뭐라고?”
“얼른 가자고.”
아정의 말에 원희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좋아.”
“사장님.”
“뭐?”
원희가 자신을 노려봤지만 선재는 그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아정에게 손을 내밀고 있을 따름이었다. 아정도 그 손을 잡고 해맑게 웃었다.
“원희 사촌 형?”
“뭐. 그런 셈이지.”
선재는 이를 드러내고 더 밝게 웃었다.
“너 뭐 먹을래? 음식을 먹어야 손님들에게 추천하지.”
“그럼 저는.”
아정이 곧바로 음식을 고르기 시작하는 것을 보며 원희는 한숨을 토해냈다. 자신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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