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귀찮은 소녀
“거기 되게 좋더라.”
“시끄러워.”
“왜?”
원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왜 자신의 일터에까지 아정을 봐야 하는 건지.
“너 왜 나에게 친한 척이야?”
“그럼 안 돼?”
“안 돼.”
“왜?”
“안 친하니까.”
원희는 단호히 말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도대체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렇게 구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네가 나한테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나는 우리 두 사람 아무런 사이도 아니라고 생각을 하거든. 너 때문에 귀찮은 일들이 생기기는 했지만 그게 전부라고 생각을 한다고. 알아?”
“그래.”
아정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원희와 그다지 특별한 사이라고 생각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아프네.”
“뭐라고?”
“네가 너무 날을 세우니까?”
아정은 혀를 내밀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아무튼 전학생. 나는 너랑 친해지고 싶거든.”
“나는 아니야.”
“왜?”
“네가 그냥 싫어.”
아정은 침을 꿀꺽 삼켰다. 여태 누군가가 자신을 이렇게 단호하게 싫다고 한 적은 없었다. 아정은 어색하게 웃었다.
“내가 왜 싫어?”
“사람이 싫은데 이유가 있나?”
“그래?”
아정은 그대로 자리에 우뚝 서서 멍하니 원희를 응시했다.
“그런데 뭐지?”
“뭐가?”
“나는 네가 좋아.”
“뭐라고?”
“네가 좋다고.”
아정은 자신도 모르게 고백을 해버리고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최대한 그런 내색을 숨겼다.
“그러면 안 되는 거야?”
“뭐.”
원희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자신을 곤란하게 해놓고서는 좋아한다는 말은 우스운 거였다.
“너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고 있어? 너는 전혀 모르면서 하는 말 같은데 말이야.”
“그러게.”
아정은 혀로 입술을 축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스스로도 뭐라고 지껄이는 건지 너무 어려웠다.
“그래도 내가 해야 하는 말이니까 그냥 할래. 네가 좋아. 그냥 궁금해. 그런데 너는 아닌 거 같아.”
“그래. 아니야.”
원희는 간단히 대답했다. 자신에게 그런 감정들은 너무 유치하고 한심한 일이었다. 자신과 관련이 없는 거였다.
“나 돈이 없어. 그래서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는 거고. 너처럼 그저 재미로 하는 거랑 전혀 달라.”
“나도 단순히 재미로 하는 거 아니야. 그리고 나는 너 때문에 모든 게 망쳐졌어. 내 기분 알아?”
“내가 알아야 해?”
“그럼.”
“왜?”
“너 때문이니까.”
원희는 머리를 뒤로 넘기며 한숨을 토해냈다.
“아무튼 나는 사장님이 시킨 그대로 너를 버스 정류장에 데려다 줬으니까 다른 말을 하지 마. 나는 이제 집에 갈 거니까.”
“버스 타는 거 보고 가.”
“싫어.”
아정의 부탁이 있었지만 원희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배려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너 지금 그거 감정 강요야. 상대가 원하지 않는 것을 하는 거. 그거 정말로 나쁜 일이라고. 알아?”
“내가 그렇게 나쁜 일을 한다는 거야?”
“그래.”
아정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미간을 모은 채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학교에서 보자.”
원희는 대답을 하지 않고 돌아섰다.
“알았지! 전학생!”
아정은 그런 원희의 반응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아정은 지하철로 사라지는 원희를 보고 한숨을 토해냈다.
“도대체 뭐야?”
그러다 문득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미쳤어.”
이런 식으로 고백을 하다니. 그러다 문득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은 정말 누군가를 좋아하는 거였다.
“신기하네.”
전혀 관심도 없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좋아한다고 말을 하고 나니 정말로 좋아하는 것 같아졌다.
“좋다.”
아정은 아랫입술을 물고 작게 웃었다.
“오늘은 늦었네.”
“죄송해요.”
“아니.”
원희의 사과에 엄마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저 걱정을 한 것이었는데 원희는 그렇게 느끼지 않는 모양이었다.
“네가 알아서 그렇게 하는 건데 죄송할 일이 뭐가 있어. 엄마가 너 고생시키는 거 같아서 그러지.”
“아니요.”
원희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씻을게요.”
“그래.”
원희가 욕실로 들어가고 엄마는 한숨을 토해내며 미간을 모았다.
“아들 미안해.”
엄마는 한숨을 더 깊이 토해내며 힘들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젠장.”
원희는 문제집을 덮으며 한숨을 토해냈다. 자꾸만 아정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아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도대체 뭐야?”
자신에 대해서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도대체 뭐라는 건지.
“윤아정.”
원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 싫다.”
원희는 그대로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안녕. 이원희.”
아정이 밝게 웃으며 아는 척을 하자 원희는 미간을 모았다. 아정은 더 밝게 웃으면서 지석에게도 손을 들었다.
“안녕. 위지석.”
“아, 안녕.”
지석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정은 더 밝게 웃고 빠른 걸음으로 멀어졌다. 지석은 놀라서 원희를 쳐다봤다.
“쟤 뭐야?”
“뭐가?”
“이상하잖아.”
“그래?”
“안 이상해?”
“모르겠는데.”
원희의 반응에 지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뭐.”
원희는 별 것 아니라는 듯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대충 맞지?”
“네. 괜찮아요.”
원희가 풍덩 빠지는 옷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교복을 구한 게 다행이었다. 은선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거 줄이면.”
“아니요.”
원희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이거 얼마 입지 않고 학교에 다시 낼 거니까요. 줄일 이유 없어요. 그리고 이제 곧 겨울이고.”
“그래도.”
“아니요.”
원희가 밝게 웃자 은선은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원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 생활 다른 건 불편한 거 없니? 혹시라도 선생님이 해줄 수 있는 게 있으면 다 도와줄게.”
“아니요.”
원희가 다시 고개를 흔들자 은선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럼 교실 가보고.”
“네. 그럼.”
원희가 나가고 옆자리 선생님이 미간을 모았다.
“쟤 좀 그렇지 않아요?”
“네?”
“아니 뭐가 저렇게 단답형이고. 애가 재미가 없어. 선생님이 잘해줄 이유가 하나 없는 애네. 안 그래요?”
“아니요.”
“선생님이 그러니 그렇지.”
은선은 그저 어색한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옆자리는 그새 흥미가 사라진 모양인지 다시 자세를 바꾸었다. 은선은 원희가 있던 자리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같이 밥 먹을래?”
“아니.”
원희가 너무 단호히 거절하자 옆에 있던 지석이 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심해도 너무 심했다.
“야. 너 너무한 거 아니야?”
“뭐가?”
“아니.”
원희는 아정의 말을 더 듣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석도 엉거주춤 원희를 따라 일어나는데 아정이 지석의 팔을 잡았다.
“나 같이 먹어도 돼지?”
“어?”
“나. 왕따라서.”
아정의 말에 순식간에 교실이 조용해졌다.
“그래서 너희라도 나랑 밥을 먹어줬으면 해. 나 혼자서 밥도 못 먹는 그런 나쁜 년인 거 너는 알잖아?”
“그러니까.”
“야. 위지석 가자.”
원희는 지석의 다른 팔을 잡았다. 지석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왜 자신을 가운데 두고 이러는 건지.
“너희 왜 그러는 거야?”
“위지석 안 가?”
“같이 가야지.”
아정의 말에 원희는 한숨을 토해내고 머리를 긁적였다. 도대체 왜 자꾸 자신을 귀찮게 하는 건지.
“윤아정. 저기 네 친구에게 가. 지금이라면 쟤도 너를 더 이상 밀어내지 않을 테니까. 나를 귀찮게 하지 말고.”
원희의 말에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지수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몸을 돌리는데 아정이 손을 들었다.
“지수. 너 나랑 밥 먹을 거야?”
“뭐?”
원희는 두 사람을 보고 한숨을 토해냈다.
“넷이 먹자.”
“지금 뭐라는 거야?”
“위지석.”
“어?”
원희의 말에 지석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는 전학생도 아니고 왕따도 아니잖아. 그러니까 저 애한테 같이 밥 먹자는 말이라도 해봐.”
“아니.”
지석은 침을 꿀꺽 삼키고 멍하니 자리에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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