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완결/천사입니다...만 [완]

[로맨스 소설] 천사입니다...만 [21장. 진짜의 가짜 1]

권정선재 2018. 3. 8. 21:01

21. 진짜의 가짜 1

잠도 안 자는 겁니까?”

그럼요.”

기연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상유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적절한 수면을 취하지 않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닙니다.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한다면 결국 사람은 불안해지고 우울해지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제대로 잠을 자는 게 우선인 겁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기연은 심호흡을 하고 목을 이리저리 풀었다.

읽어줄래요?”

?”

진짜의 가짜.”

아니.”

읽어줘요.”

기연은 다짜고짜 상유에게 노트북을 내밀었다. 이걸 읽고 무슨 말을 한다는 것은 또 다른 규정 위반일 수도 있었다. 인간에게 어떤 믿음을 준다는 거. 가능성을 준다는 거.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그게.”

그냥 재미없다고 해도 좋고. 아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냥 읽어만 줄래요? ?”

그냥 읽으라고요?”

. 부탁이에요.”

기연의 간절한 표정에 상유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간단한 일도 아니었다. 선재가 자신에게 일렀던 것처럼 그러면 안 되는 것을 자신이 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천사의 일이라는 게 인간들이 생각을 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게 모든 일이 진행이 되는 게 아니에요.”

내 수호천사라면서요?”

아니.”

도대체 그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언제까지 물고 늘어질 건지. 기연은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불리한 일이 생기면 무조건 그 이야기를 하는 거였다. 물론 빌미를 준 자신이 잘못이기도 했다.

좋습니다.”

좋아요?”

.”

상유는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사실 위에서 다른 반응을 보이기 기대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가끔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그저 반항을 하고 싶은 순간도 있으니까요. 그게 천사가 해야 하는 일이고.”

반항이요?”

상유의 말에 기연은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상유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고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쪽 되게 이상한 거 알아요?”

?”

아무 것도 아니고. 내가 몰라도 된다고 하면서 나에게 엄청나게 많은 말을 해주고 있는 거 같아. 내가 모든 것을 다 알기를 바라는 것처럼. 내가 그쪽에 대해서 뭐라도 알기 바라는 것처럼.”

그건.”

상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자신이 그런 짓을 한 건가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쩌면 아름의 말처럼 자신은 다가가서는 안 되는 것에 다가가는 거였고 이건 저 위와 부딪치는 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미 부딪치기로 한 일이라면 그냥 부딪치는 것이 옳은 거였다.

부딪칠 겁니다.”

?”

아니요.”

상유는 이를 드러내고 씩 웃었다.

귤 고마워요.”

뜬금없이.”

기연은 미소를 지은 채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면서도 상유가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해준다는 것에 마음이 편해졌다.

나 지금 행복해지는 거 같아.”

그래요?”

. 확인을 해봐요.”

.”

얼른.”

기연이 재촉하자 상유는 한쪽 입 꼬리를 올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확인을 하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기연의 말이 옳았다. 이게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기연의 행복도는 올라갔다.

원래 인간이라는 존재는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요. 지금 그쪽이 내 옆에 있는 거고.”

그거 좋은 겁니까?”

.”

기연은 샐쭉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밝게 웃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좋은 일인 거 같아요. 누구라도 한 사람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거니까.”

믿을 수 있는 천사겠죠.”

. 그런 거죠.”

믿을 수 있다는 말 자체를 부정해야 하는 거였는데. 상유는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자꾸 멍청한 짓을 하고 있었다.

읽지 않겠습니다.”

? 갑자기.”

기연의 얼굴에 서운함이 더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연에게 계속 끌려가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이건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닙니다. 나는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게 전부라고요. 그게 천사고.”

에이. 치사해.”

치사라니.”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말. 상유는 인상을 구겼다. 천사로 이런 대접을 받고 싶지 않았다.

아마 정기연 씨는 스스로도 모르겠지만 전에 있던 천사가 이미 떠나버렸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한 사람에게 천사가 한 번이 아니에요?”

한 번도 오지 않는 사람도 있고 여러 번 찾아오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정기연 씨는 정말.”

상유는 미간을 찌푸린 채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천사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인가이라면 진작 천사를 내쫓았을 겁니다. 그래서 아마 위에서 벌을 주겠다는 이유로 이런 것을 하는 거겠죠. 그게 다일 겁니다.”

벌이라니.”

기연은 불을 잔뜩 부풀렸다.

내가 벌이라는 건가요?”

당연하죠.”

말도 안 돼.”

기연은 검지를 들고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읽어요.”

?”

제발 읽어줘요.”

기연이 두 손을 모으고 말하자 상유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무슨 인간이 이렇게 귀찮게 한다는 말인가? 하늘에서 보던 순간에도 이토록 천사에게 많은 것을 바라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스스로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물론이죠. 그러니 읽어요.”

상유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읽으면 안 되는 거였다. 그런데 동시에 저 위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이렇게 곤란하게 만들었다면, 자신도 곤란하게 만들어도 되는 거였다.

좋습니다.”

여기요.”

상유는 심호흡을 한 후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기연을 한 번 힐낏 보더니 헛기침을 하고 기연의 글로 시선을 옮겼다.

 

[그는 물끄러미 남자를 응시했다. 너무나도 신기한 존재. 그 자리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로 자신과 꼭 닮은 남자를 보며 그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도 두려웠다. 정말로 자신은 누군가의 모습을 본 딴 존재였다. 그 동안 아무런 일도 당하지 않았던 일은 그저 요행이었다.

뭘 보고 있어?”

저기.”

커피를 들고 온 여자가 그의 옆에 앉아, 그가 보던 곳을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여전히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곳에 오면 남자를 볼 수 있을 거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토록 꼭 닮은 남자를 볼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닮았네.”

닮았지. 당연히.”

그의 말에 여자는 살짝 날이 선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의 말처럼 닮은 것이 당연할 거였다. 자신을 만들어준 사람. 분명히 그도 이대로 나이가 든다면 저런 모습이 될 거였다. 만일 아무런 일도 당하지 않고 나이가 든다는 가정은 너무나도 어려운 거였지만, 여태까지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거였다.

안 마셔?”

아직.”

여자는 그에게 커피를 한 번 제안했지만 그가 바로 마시지 않자 입술을 쭉 내밀었다.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주문한 거였다. 밖에서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알았지만 안에서는 절대로 마실 수 없는 거였다. 여자는 다리를 꼬고 여유로운 척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켠 후 곧바로 인상을 찌푸렸다.

되게 맛없어.”

그래?”

마셔봐.”

여자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커피를 내려놓는 것을 보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 한 번도 마셔보지 못한 것. 다를 거였다. 그는 자신의 커피를 들어 한 모금 마시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뭇잎을 태운 것이나 진배없는 맛. 이상한 향기가 입 안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은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이런 걸 마시다니.

인간들이란.”

그의 말에 여자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너도 인간이야.”

.”

그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 역시 인간이라고 하지만 다른 이들도 자신들을 인간이라고 봐줄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확신이 없었다. 그리고 아마 다른 이들은 그들을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였다.

여자는 그런 그를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이리저리 목을 풀다가 아,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자신의 가슴을 쳐다봤다. 그도 여자의 가슴을 쳐다봤다. 옷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지만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흉터를 여자는 가만히 매만졌다.

아파?”

아니.”

그의 물음에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통증 같은 것은 없었다. 아직도 통증이 남아있다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살아있지 못할 거였다. 다만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아니라는 것. 이것을 볼 때마다 이것들이 그 자리에 있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서 불편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그는 모르는 거였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한 거 같은 생각이 들어서. 아무리 중요한 상황이고 급한 상황이라고 해도 예쁘게 봉합을 할 수도 있는 거잖아. 결국 흉터가 남지 않게 할 수도 있는 거였을 텐데 말이야.”

그러게.”

건성으로 대답은.”

그의 대답에 여자는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원래부터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담지 않은 채 말하는 사람이었다. 목젖이 보일 정도로 웃는 여자를 보다가 그도 따라 웃었다.

네가 부러워.”

그래?”

전혀 인간 같지 않잖아.”

여자의 말에 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여자에 비해서 인간처럼 보이지 않았다. 사실 인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는 못했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여자처럼 감정을 느껴야 한다는 거였다. 하지만 그는 감정을 드러내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너무나도 낯설었다. 한 번도 그런 것을 배우지 않았다. 물론 배우지 않은 것은 여자도 마찬가지였지만 이상하게 그것에 대해서 표현하기 어려운 쪽은 그였다.

그런데 네가 용기를 낼 줄은 몰랐어.”

?”

다른 애일 줄 알았어.”

.”

여자의 말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신기할 정도였으니까. 다들 나가고 싶다는 말을 하지만 정말로 나갈 용기를 내는 존재는 없었다. 나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두들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나서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언젠가 이런 일이 있을 것 같았다.

신기해.”

그래.”

여자는 그를 보며 가만히 웃었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려고 컵을 만졌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부러워.”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여자는 고개를 돌렸다. 그는 여자를 응시하면서 진심으로 부럽다는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그가 그런 것을 노력한다는 사실에 여자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뭐가 부럽다는 거야?”

그냥.”

뭐라는 거야.”

여자는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가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