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장. 귤
“아는 거 같아.”
“그럼 말해줘요.”
“미쳤어.”
선재의 말에 아름은 미간을 찌푸렸다.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천사는 자신의 과거를 알아서 안 되는 거였다.
“그런 일을 했다가는 위에서 더 크게 문제라고 생각할 거라는 거 알잖아. 그거 말도 안 되는 거야.”
“누나가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형이 그 사실을 모를 거라고 생각을 하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에요?”
“모를 거야.”
아름은 단호히 대답했다. 선재는 한숨을 토해내며 입술을 쭉 내밀었다. 그리고 바닥에 그대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누나 그거 너무 간단하게 생각하는 거야. 상유 형 성격 알잖아요. 그런 천사가 그 여자가 자신에게 누구인지 알고 나서 여기에서 난리를 치는 거 생각하면. 나는 그거 너무나도 끔찍해요.”
“그럼 네가 가.”
“에?”
아름의 말에 선재는 미간을 모았다.
“무슨 말이에요?”
“네가 하는 게 그거잖아.”
“아니.”
선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인간 세상에서 뭔가 하는 건 너무나도 싫었다. 그건 귀찮은 일이었다.
“싫어요.”
“왜 싫어?”
“당연하죠.”
선재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인간 세계는 너무나도 더러운 곳이었다. 역겨운 냄새가 쉴 새 없이 퍼지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 다녀왔다가는 다시 천사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거야. 이 몸을 정화하기 힘들어요.”
“그래도 상유 혼자서 그 모든 것을 다 하기에 힘들어 보이니까. 상유가 혼자서 너무 지치는 거 같으니까. 위에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상유에게 왜 그 많은 것을 바라는 건지도 모르겠고.”
“형이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그 분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일만 시킨다고요.”
아름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 사실이기는 했다. 감당할 수 있는 시련. 더 큰 존재가 될 수 있는 시련만 주는 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유를 이렇게 버려둘 수는 없는 거였다.
“자신이 모른다고 하면 다르겠지만 이미 그 여자가 누구인지 의심하는 상황에서 이상한 거 아니야?”
“왜 의심을 하는 건데요?”
“어?”
그러고 보니 상유가 왜 자신에 대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건지 알지 못했다. 아름은 손가락을 튕기고 씩 웃었다.
“그거네.”
“네?”
“그거야.”
선재는 불안한 눈빛으로 아름을 응시했다.
“쓰러진 거니까. 그런 일이 천사에게 당연히 있는 일도 아니고 인간과 관련이 있을 때만 그러는 거잖아. 상유가 바보도 아니고 그 정도 사실도 모르지 않을 거야. 그 정도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니라고.”
“아무리 그게 일도 아니라고 하지만.”
선재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넘기려고 했다. 하지만 선재와 다르게 아름은 꽤나 확신을 가진 모양새였다.
“그런데 너는 왜 그러는 거야?”
“네?”
“왜 그렇게 이걸 가벼이 넘기려고 해.”
“뭐.”
선재는 예의 그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상황을 모면하려고 했지만 아름의 태도가 너무나도 단호했다.
“너 지금 되게 이상해. 너 분명히 뭔가 알고 있는 거야. 네가 알고 있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뭔가를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지금 대충 뭉개고 넘어가려고 하는 거라고. 아니야?”
“아니에요.”
선재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으로 몰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아름이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 하늘에서 종이 울렸다. 선재는 이내 진지한 표정을 하더니 날개를 펼치고 사라졌다. 아름은 인상을 구겼다.
“도대체 뭐냐고.”
아름은 입술을 쭉 내밀고 미간을 찌푸렸다.
“글은 안 써요?”
“이게 다 쓰고 있는 겁니다.”
기연이 책장을 넘기면서 여유롭게 대답하자 상유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행복 측정기를 흔들었지만 기연은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을 지을 뿐 다른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그쪽이 얼른 자신의 꿈을 이뤄야 한다고요. 그래야 내가 이 지긋지긋한 일을 하지 않는 겁니다.”
“귤 먹을래요?”
“네?”
“귤이요.”
“아니.”
이게 무슨 낙천적인 말이란 말인가. 상유는 한숨을 토해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 인간은 너무 이상했다.
“지금 이 순간에 귤을 먹으라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을 하는 겁니까? 내 말을 모르는 거예요?”
“알아요.”
기연은 씩 웃으면서 해맑게 웃었다. 그리고 귤을 까서 반 개를 그대로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맛있다.”
“지저분해.”
과즙이 입가로 흐르는 것을 대충 소매로 훔치는 기연을 보며 상유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하지만 기연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사람도 아닌 존재에게 내가 긴장을 하고 뭔가 숨겨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건 아니죠? 그거 이상한 거예요.”
“아무리 내가 인간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예의 같은 것을 지켜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나도 남자라고요.”
“남자라.”
기연은 잠시 있다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무슨 말인데요?”
“그러니까.”
“알아요. 알아.”
상유가 무슨 설명을 하려고 하자 기연은 고개를 흔들고 씩 웃었다. 그러면서도 꽤나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먹어요. 좀.”
“아니.”
“오렌지는 비싸더라고요.”
기연이 직접 귤을 까서 건네자 상유는 인상을 구겼다.
“그러니까.”
“내 수호천사를 잘 하라는 의미라고요.”
기연은 직접 상유의 입에 귤을 밀어넣었다. 상유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있다가 그 귤을 받아먹었다.
“맛있죠?”
밝은 표정. 심장의 저릿함. 상유는 그대로 사라졌다.
“뭐야?”
기연은 입술을 쭉 내밀었다.
“사람 무안하게.”
기연은 자신의 손에 남겨진 귤을 보고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혀를 찼다.
“하여간 남자라는 족속은 뭐가 되었건 믿으면 안 되는 거야. 하다 못해 강아지도 수컷은 안 될 거라고.”
기연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남은 귤을 모두 입에 밀어넣었다.
“안 내려갈 거야.”
“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데 내가 그걸 모르고 있다는 거 너무 이상한 거잖아. 그게 뭔지는 알아야 갈 거 아니야?”
“그거 규정 위반이야.”
“아니.”
아름의 경고에 상유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규정 위반은 무슨.”
“뭐가?”
“나 규정집 다 읽었다니까?”
“아니.”
상유의 여유로운 대답에 아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아니 평소에는 활자라고는 전혀 읽고 싶어하지도 않더니 지금은 저것을 다 읽고 도대체 왜 이렇게 자신을 괴롭히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너 왜 그러는 거야?”
“뭐가?”
“그냥 그 인간이 행복해지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래서 지옥에 가지 않도록 하면 되는 거라고.”
“이미 안 갈 사람이야.”
상유의 어조는 짐짓 진지했다.
“누나도 이미 알고 있잖아요. 그 인간. 정기연 씨. 불행하기는 하지만 지옥에 갈 정도는 아니에요.”
“지금은 아니겠지. 하지만 점점 더 그 사람이 불행해진다면 그 인간은 지옥으로 가게 될 거야.”
“그건 그렇지만.”
사실이었다. 지금 당장 행복하다고 해서 그게 인간의 모든 행복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럴 수 없었다. 지금 당장 행복한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불행한 일이 이어진다면 결국 불행해질 거였다. 그리고 그 불행은 스스로의 인생을 저주하게 만들고 신을 져버리며 지옥에 가게 되는 거였다.
“너는 그저 천사야. 그저 천사가 해야 하는 일. 그 정도를 하라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거야?”
“그저 천사라고 하더라도 이상한 거잖아. 그냥 천사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면 그걸 해야 하는 거잖아. 아니야? 천사로 내가 해야 하는 일. 그것만 한다는 거야. 지금 나는.”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아름의 음성이 낮고 울리자 상유는 끙 하고 신음을 흘렸다. 자신이 아무리 아름을 이겨먹고 싶더라도 절대로 안 될 일이었다. 아름을 이기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고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누나가 그렇게 나온다고 해도 그대로 물러나지 않을 겁니다. 절대로 그냥 물러나지 않을 거라고요.”
상유의 대답에 아름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상유가 이렇게 나오는 것에는 자신도 별다른 방어 수단이 없기에 그런 것도 있었다.
“내 과거를 알죠?”
“몰라.”
상유가 묻기가 무섭게 아름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걸 알 리가 없잖아.”
“거짓말.”
“정말이야.”
아름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상유에 대해서 알고 싶었지만 그것은 불문율이었다.
“저 위에서는 천사의 과거에 대해서 말을 해주지 않아. 옆동네 저승사자들도 그건 마찬가지잖아.”
“그렇죠.”
상유는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 그 얼굴에 묻어나는 초조함에 아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저 네가 잘 하는 거. 네가 할 수 있는 일. 그것만 하면 되는 거야. 다른 거 고민하지 말고.”
“그저 제가 잘 하는 걸 하고 싶은데. 그 인간이랑 내가 분명히 뭐가 있어서 이러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그거야.”
아름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사실이었다. 그런 느낌이 드는 거. 그게 당연한 거였다. 아마 위에서는 상유를 벌주기 위해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였을 가능성이 컸다.
“만일 그렇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건데? 네가 저 위를 마음대로 뒤집고 다닐 수도 없는 거잖아. 네가 무슨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도 아니고. 그런 거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거 알고 있지?”
“알죠.”
상유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해서 그냥 포기한다는 것도 이상한 거였다. 할 수 있는 일은 하나 없더라도 제대로 부딪치고 뭐 하나 얻어내는 것은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누나 선재는 누구죠?”
“뭐?”
“선재.”
“그건.”
아름은 더욱 말문이 막혔다. 자신도 궁금해하던 일.
“위의 사자 아니야?”
“아닐 거야.”
아름은 자신도 자신감이 없으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 그게 우선이었으니까.
“절대 아닐 거야.”
아름은 더욱 힘이 빠진 채로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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