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장. 진짜의 가짜 2
[“나는 네가 부러워.”
“어?”
“나는 이제 용기를 내도 불가능한 일이니까. 이미 이런 수술들을 받은 상황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 자리로 갈 수 있다는 거. 그거 말도 안 되는 거잖아. 그런데 너는 그게 가능한 거니까.”
“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의 말처럼 여자의 몸에는 이미 너무 많은 흉터가 있었다. 그처럼 진짜를 만나서 그 자리에 가는 것. 그것 자체가 너무나도 어렵고,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 거였다.
“나는 저 자리로 갈 수 있을까?”
“당연하지.”
여자는 한숨을 토하며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가 다소 답답한 모양이었다. 여자는 더 이상 아무런 말을 더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와 자신을 보다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그를 보고 미간을 모았다.
“그런데 너는 왜 그런 표정이야?”
“미안해서.”
“그게 미안한 표정이야?”
“틀린 건가?”
“틀렸어.”
여자는 웃음을 터뜨리며 가볍게 그의 어깨를 밀었다.
“도대체 뭘 배운 거야? 언젠가 우리도 사회에 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그렇게 가르쳤는데 말이야.”
“그러게.”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도 그는 아주 중요한 인물이었다. 너무 멍청하게 굴어서.
“어쩔 수 없는 거지. 나는 너처럼 그렇게 공감하는 능력을 타고 나지 않은 거니까.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간단하게 말을 할 일은 아닌 거 같은데. 그런데 왜 미안한 표정을 짓는 거야. 미안할 일이 뭐가 있다고.”
여자는 부러 밝은 미소를 지으며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시다가 곧바로 인상을 찌푸렸다.
“다시 마시고 나면 조금은 맛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다시 마셔도 정말 별로야. 이런 걸 왜 마시는 거야.”
“그냥 갈까?”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여자는 얼굴이 굳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면서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마지막 잔향도 사라지게 하려는 것처럼 빈 공기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결국 모두와 떠나는 거잖아.”
그의 말에 여자는 천천히 눈을 굴렸다. 지금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건 ㅜ먼가 다른 말을 해줄 것이 없었다. 사실이었으니까.
“모두와 같이 하던 순간들이었어. 내가 자유를 찾는다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동안 알던 것들. 그 익숙한 것들과 모두 헤어진다는 것은 원하지 않아.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게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 알고 있으니까.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생각을 제대로 했어야 했어.”
“그러네.”
여자는 혀로 이를 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마찬가지일 거였다. 그 모든 것들과 떨어진다면 누구라도 자연스럽게 겁을 내고 망설이게 될 거였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그게 현실일 거였다.
“두려워.”
“그래도 네 삶을 갖는 거야.”
“삶.”
그는 여자의 말을 따라했다. 삶을 갖는다는 것. 모두가 바라는 일이었다. 더 이상 갇힌 삶을 살 이유는 없었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찾으면서 그대로 꿈을 향해서 나아간다는 것. 그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우리의 삶이라는 거. 그런 거 없는 거잖아. 그런데 너는 그걸 가질 수 있게 되는 거야. 물론 그게 진짜로 너인 채로 갖는 거라면 더 좋겠지만. 애초에 그건 불가능한 거잖아. 그렇다면 남인 순간에 그걸 느껴야 하는 거야.”
“그렇겠지.”
더 이상 그런 희망을 갖는 존재는 없었다. 전에는 만일 자신이 필요한 부분을 줄 이유가 없다면 여유로운 어른이 되는 경우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진짜들이 더 많은 나이를 먹게 되고 결국 가짜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때에 따라서는 두 개 이상의 가짜를 갖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삶이라는 거. 그런 것을 가짜들이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
“안 갈 거야?”
“아직.”
“왜?”
“잘 모르니까.”
그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여자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몸을 살짝 뒤로 기댔다. 자신은 그저 그를 따라 온 것이었고, 여기에 대해서 자신은 다른 말을 더 하는 것도 이상한 거였다.
“잘 아는 것을 하는 게 중요한 거잖아. 안 그래? 그런데 지금 살피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어. 아직도 진짜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떻게 해야 진짜가 될 수 있는지.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았어.”
“그러네.”
그는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아까보다는 조금은 익숙한 느낌. 아직은 정이 가지 않았지만 그 정도로 역하지도 않았다.
“인간들은 왜 이런 걸 마시는 걸까?”
“우리도 인간이라는 거니까.”
“그래.”
여자의 지적에 그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넓은 범위에서. 정말로 아주 넓은 범위에서 본다면 결국 그들도 인간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였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볼까?”
“그게 중요해?”
“중요하지.”
그들이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과 다르게 보통의 인간들이 같은 생각을 해줄지. 그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문제였다. 게다가 그들이 그들을 그렇게 생각을 해줄 리도 만무했다. 그들의 시선에서. 그러니까. 진짜들이 보기에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절대로 인간이 될 수 없었다.
“인간이 된다면 뭘 하고 싶어?”
그의 물음에 여자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별 것 아니라는 듯 한 번 웃어보였다.
“그게 왜 궁금한 거야?”
“나는 잘 모르겠어서.”
그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가 놓았다. 하얗게 변했다가 피가 도는 그의 입술을 보며 여자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사실 여기에 오기는 했지만 잘 모르겠어. 내가 도대체 뭘 해야 하는 건지. 그리고 인간이란 게 정확히 뭔지.”
“왜 그래?”
“하고 싶은 게 없어서 그런 거 같아.”
여자는 혀를 차며 이해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회로 나오고 싶어도 자신의 진짜를 찾지 못해서 오지 못하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그런데 자신의 진짜를 찾고도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우스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묻는 거야?”
“참고?”
“참고라고?”
“응.”
그의 뻔뻔한 대답에 여자는 그만 웃어버렸다. 그리고 머리를 뒤로 넘긴 후 다리를 반대로 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참고가 될 수 있을 거야.”
“그래서 뭐가 되고 싶었어?”
“엄마.”
여자의 말에 그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라니. 뭔가 다른. 더 위대한 것이 될 수도 있을 거였다.
“그저?”
“응.”
여자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배를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따. 그런 여자의 얼굴에 슬픔이 살짝 어렸다.
“나는 자궁이 없어.”
“알아.”
여자의 진짜는 자궁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가짜에게서 가져가는 거였다.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여자 역시 그것에 대해서 불만은 없었다.
“후회해?”
“아니.”
그의 물음에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후회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거였다. 진짜가 원하지 않았더라면 가짜인 자신은 그런 것을 꿈도 꿀 수 없었을 거였다. 그나마 진짜가 자신을 원하기에. 자신의 몸에서 필요한 부품들이 있기에 이런 것도 생각할 수 있으니 후회는 하지 않았다.]
“어때요?”
“뭐.”
잘 썼다. 정말로. 하지만 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이런 말을 하면 선재의 말처럼 되어버린 거였다.
“그게 다예요?”
“네.”
“뭐야.”
기연은 입술을 쭉 내밀었다.
“하여간.”
“왜요?”
“무슨 천사가 그래.”
“천사가 이러면 안 되는 겁니까?”
“안 되는 거죠.”
기연의 말에 상유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자신의 글에 대해서 그렇게 자신이 없습니까? 인간도 아닌 저의 반응이 필요할 정도로 말입니까?”
“뭐. 그런 건 아니기는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내 글에 대해서 어떤 말을 해주면 더 좋기는 하잖아요.”
“뭐.”
상유가 여전히 별다른 말을 더하지 않자 기연은 그대로 노트북을 다시 가져갔다. 상유는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연이 자꾸만 묻는다면 더 이상 이것을 피하기 어려울 거였다.
“언제 소설가가 될 수 있을까요?”
“모든 건 정기연 씨에게 달렸을 겁니다.”
“그렇죠.”
기연은 그제야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이제 상태는 조금 괜찮아요?”
“네? 네.”
상유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기연의 손이 이마에 닿았다. 상유의 눈이 커다래졌고 기연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뜨거워.”
“내가 만져져요?”
“네?”
“아니.”
상유는 헛기침을 하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자신이 무슨 실수라도 한 건가? 모습을 드러낸 건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상유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기연과 있으면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생기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부러워요.”
“뭐가요?”
“돈이 들지 않는 거.”
“뭐.”
기연의 말에 상유는 살짝 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돈이 들지 않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천사라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었다. 이것저것 귀찮은 일이 더해지는 거고 그건 인간들이 생각도 못하는 거였다.
“천사도 힘들어요.”
“왜요?”
“위에서 까다롭거든요.”
“그렇구나.”
기연은 곧바로 이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리저리 목을 풀고 머리를 위로 쓸어 올렸다.
“그렇지.”
“왜요?”
“그냥 다 그럴 거야.”
“왜 반말이에요?”
“아.”
기연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가렸다. 그리고 혀를 살짝 내밀고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도 전에 일을 해봐서 알아요. 위에 높은 사람이 많을수록 더 귀찮아지는 거니까. 위에서 뭐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뭐 이쪽보다 더 높은 사람이니까. 아 사람이라고 하면 이거 불경한 건가?”
“뭐 그런 것까지 저 위에서 다 불편하게 느끼는 거라면 아마 인간들이 남아나지 않을 겁니다.”
“그래요?”
“위에서는 그렇게 속이 좁지 않아요.”
“에이. 그냥 하는 말이지. 그게 사실일 리가 있어요.”
기연은 가볍게 상유의 가슴을 때렸다. 그리고 그대로 느껴지는 물리력. 상유는 놀랐다. 하지만 이것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것을 드러낸다고 해서 기연에게 좋을 것도 하나 없었다. 알아서 위에 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건지 생각을 하는 게 우선이었다. 위에 물어야 하는 것이 한 가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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