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장. 오렌지 주스
“몰라?”
“몰라.”
“말도 안 돼.”
아름의 말에 상유는 미간을 모았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아름이 지금 이 상황을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거였다.
“누나가 지금 나를 놀리는 거지?”
“내가 너를 왜 놀려?”
“누나가 이걸 모를 리가 없잖아.”
아름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미간을 찌푸렸다.
“나라고 해서 모든 걸 다 아는 거 아니야. 물론 내가 관리직에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것까지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잖아. 그 모든 건 내가 아니라 저 위에서 관장하는 일이라고.”
“위에서라니.”
상유는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아름이 너무 간단하게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아름 역시 자신을 도와주려는 사람인 것을 알기에 다른 말을 더 할 수 없기도 했다. 아름이 할 수 있는 모든 거였다.
“미안해.”
“아니요.”
아름이 갑자기 사과를 하자 상유는 고개를 저었다.
“마실 수 있어요?”
“네?”
“이거.”
기연이 갑자기 주스를 내밀자 상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게 뭡니까?”
“천사가 이런 것도 몰라요?”
“네?”
“오렌지 주스.”
기연의 대답에 상유는 미간을 모았다. 아니 그게 뭔지를 물은 게 아니라. 도대체 이걸 왜 주는지 묻는 거였다.
“정기연 씨는 생각보다 그렇게 융통성이 있는 타입이 아닌 모양입니다. 이게 뭔지 묻는 게 아니잖아요.”
“아 쓰러져서요.”
“네?”
이건 또 무슨 말이야? 정기연이라는 계약자는 생각보다 더 어려운 방식으로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요?”
“뭐.”
기연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벽에 살짝 기댄 후 머리를 앞에서 뒤로 모두 쓸어넘기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천사에게 뭐가 좋은 건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비타민 C라는 건 모두에게 다 좋은 거니까.”
“쓰러지지 말라고 주는 겁니까?”
“네. 그거죠.”
기연이 손가락을 튕기며 밝은 표정을 짓자 상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못 마시는데요?”
“그래요?”
“천사니까.”
상유는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컵을 만질 수 없다는 걸 보여주었다. 상유의 이런 반응에 기연은 입을 쭉 내밀었다.
“뭐야?”
“그래도 고마워요.”
“마시지 못하면서.”
“누가 이렇게 신경을 써준 건 처음이라서.”
“네?”
상유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굳이 이런 것들까지 모두 우리에게 말을 할 이유는 없을 거였다.
“고마워요. 정말.”
기연은 볼을 부풀리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말을 해주지?”
“싫어.”
선재의 제안에 아름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식으로 뭔가를 안다는 것은 문제가 될 거였다.
“알잖아?”
“뭘?”
“그거 불문율이야.”
“이미 상유 선배 많이 어겼어.”
“그건.”
선재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미 상유는 위에서 싫어할 일들을 너무나도 많이 하고 있었고 그래서 위에서도 주시하는 중이었다.
“어차피 위에서 좋아하지도 않는 천사인 거 다들 아는 건데 그 정도 더 알려줘도 문제가 없잖아요?”
“싫어.”
아름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위에서 이미 싫어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짓들을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러다가 이번처럼 그저 쓰러지는 것으로 모두 끝이 나지 않을 수도 있어. 그건 너도 알잖아?”
“뭐.”
선재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름의 말처럼 그런 것을 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가볍게 끝이 나지 않을 거였다. 선재는 헛기침을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누나는 보면 되게 상유 형을 신경을 쓰는 거 같아요. 다른 천사들보다 유난하게 더 좋아하는 거 같아.”
“좋아하기는.”
아름은 고개를 저었다. 천사들에 대해서 그런 감정을 갖는다는 것이 너무 우스운 거였다. 말도 안 되는 거였다.
“너 그런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뭐.”
선재는 씩 웃었다. 그리고 아름이 고개를 숙이고 잠시 서류를 보고 고개를 드니 이미 사라졌다.
“뭐야. 도대체.”
아름은 입술을 쭉 내밀었다.
“행복도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아닌데?”
상유의 말에 기연은 곧바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저 지금 되게 행복해요.”
“행복하다고요?”
“그럼요.”
기연의 대답에 상유는 입술을 쭉 내밀고 잠시 고민하다가 기연의 행복도를 보여줬다. 하지만 기연은 그저 웃고 있었다.
“저는 정말로 행복합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나오는 것을 보니까 천사들의 기준이 너무 강한 거 아니에요?”
“그래요?”
상유는 곧바로 고민에 빠졌다. 기연은 잠시 있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말을 믿어요?”
“네?”
“하여간.”
“거짓말이에요?”
“거짓말은 아니고 나를 위한 주문.”
기연은 손을 모으고 살짝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미소를 지은 채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자세를 바로 잡았다.
“자꾸만 행복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정말로 행복하게 되더라고요. 이게 별 거 아닌 거 같아도 정말 그렇게 돼요. 혹시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만나면 그런 말을 해줘요. 그거 중요한 거니까.”
“안 할 겁니다.”
“안 해요?”
“네. 절대.”
상유가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지만 기연은 그저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채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쪽이 아는 그대로 하면 되는 거지만. 그래도 사람. 아니 천사의 일이라는 것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만일 정기연 씨가 나를 만났을 때보다 두 배 이상 행복해진다면 저는 다시 이 일을 안 해도 되는 겁니다.”
“안 행복해지면요?”
“네?”
“평생.”
“설마요.”
상유는 가볍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절대로 그럴 일은 없을 거였다.
“정기연 씨가 아직 살 날이 많이 남았는데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겁니까? 행복할 겁니다.”
“내가 얼마나 살지 알아요?”
기연이 곧바로 눈을 반짝이며 묻자 상유는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뭐야?”
기연은 푹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혀를 살짝 내밀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모르는구나.”
“그런 것은 천사가 하는 게 아니라 저 위에서 알아서 하는 겁니다. 그런 일에 천사들이 개입을 할 수 없어요. 천사들은 그저 저 위에 계시는 분이 하시는 일을 돕는 것이 전부인 거니까요.”
“그렇구나.”
기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내 흥미가 사라졌는지 뒤로 살짝 물러나서 벽에 기대더니 눈을 감았다. 상유는 잠시 묘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저었다.
“오렌지 주스.”
상유는 자는 기연을 힐낏 쳐다봤다.
“뭐야.”
신기한 인간이었다.
“천사를 배려한다고?”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던 존재였다. 상유는 오렌지 주스를 마셨다. 그리고 순간 몸이 굳었다.
“이건?”
어딘가에서 봤던 거 같은 기억. 상유는 미간을 찌푸렸다.
“나랑 관련이 있는 사람이야?”
“어?”
갑작스러운 상유의 물음에 아름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이야?”
“거짓말 하지 말고.”
“뭐가?”
“누나.”
“몰라.”
아름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런 식으로 상유에게 언제까지 둘러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피해야 했다.
“그런 거 위에서 하지 않는다는 거 알잖아. 너에게 벌을 줄 건데 그런 복잡한 일 만들 리가 있어?”
“잘못을 한 거니까.”
상유는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서 그럴 수도 있지.”
“박상유.”
“사실이잖아.”
상유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위에서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것은 당연한 거고. 내가 그런 사고를 친 거니까. 이미 죽어야 하는 사람을 다시 살린 거니까. 나에게 그런 감정을 가질 거 아니야?”
“그러니까.”
아름은 안쓰러운 눈으로 상유를 응시했다. 그리고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도대체 왜 그런 걸 한 거야?”
“그러게.”
상유는 침을 꿀꺽 삼켰다. 깊은 한숨을 토해낸 후 아름의 앞으로 다가와서 아름의 눈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사실을 말해줘.”
“몰라.”
“누나.”
“정말 몰라.”
“젠장.”
상유의 낮은 욕설에 아름은 미간을 찌푸렸다. 천사의 잎에서 저런 말도 안 되는 용어가 나와서는 안 되는 거였다.
“너 인간 세계에 너무 오래 있는 거 아니야? 어떻게 천사에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욕설을 내뱉을 수가 있어?”
“인간이 되려나 보지.”
“미쳤어!”
아름이 갑자기 고함을 지르자 하늘에 천둥이 쳤다. 상유는 한쪽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좋아하지 않는 소리.
“정말.”
아름은 한숨을 토해낸 후 상유를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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