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장. 나에게 당신 1
“좋다.”
“그러게요.”
상유는 기연을 품에 안고서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기연도 상유의 배를 만지면서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가 미간을 모았다.
“그런데 이 상처는 뭐예요?”
“모르겠어요.”
“몰라요?”
“네.”
상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몸에 있는 흔적이었지만 도대체 어디에서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
“천사는 이상해요.”
“이상합니까?”
“당연히 이상하죠.”
기연은 그러면서 자신의 팔을 만졌다.
“이거 고등학교 때 가정시간에 크로켓 튀기다가 기름이 튀어서 이렇게 화상을 입은 거거든요.”
“부러워요.”
“흉터가요?”
“아니요.”
기연의 반응에 상유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몸에 있는 흔적을 알고 있다는 거. 저는 알고 싶지만 제 몸에 있는 걸 알지 못하거든요.”
“이제라도 알아 가면 되는 거죠.”
“이제라도.”
상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연의 말이 옳았다. 이제라도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알면 되는 거였다.
“그리고 이제 기억을 하지 못할 거라는 걱정은 하지 마요. 내가 있으니까. 나도 기억을 할 테니까.”
“그래 줄 겁니까?”
“당연하죠.”
기연은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상유는 그런 기연의 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리고 눈을 감고 머리를 기댔다.
“저거 그대로 두고 볼 거야?”
“응.”
“미친 거야.”
아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저거 저 위에서 그냥 용납을 할 거 같아?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지켜보면서 그냥 둘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야? 그렇지 않잖아. 그거 아닌 거 알잖아.”
“알아.”
선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리저리 목을 풀다가 엷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렇게 보고 있는 거잖아. 선배가 알아서 잘 하고 있으니까. 누나도 그만 걱정을 해요.”
“어떻게 그래?”
아름은 머리를 뒤로 넘기고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게 가능하다고 생각을 하는 거야? 그래도 신이라며. 신이라는 건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왜요?”
“뭐?”
“신이니까 해도 되는 거죠.”
선재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누나는 형이 모든 것을 하고 있다는 거 몰라요?”
“뭐?”
“저 아래에서 잘 할 거야.”
“아니.”
“사람들을 돕는 거.”
아름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고 묘한 표정을 지은 채 선재를 응시했다.
“나는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우리 둘 사이에 제대로 된 대화가 이뤄지고 있는 거야?”
“언젠가 아시게 될 거예요.”
선재는 이 말을 하고 사라졌다. 아름은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허리에 손을 얹었다.
“도대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그래서 돌아가지 않을 거야?”
“당연하지.”
“아니.”
상유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눈으로 존을 응시했다. 도대체 여기에서 뭘 하려고 하는 건지.
“악마가 여기에서 있는 이유가 뭘까? 그건 신이 부탁을 한 것 말고는 그런 이유가 없는 거 같은데.”
“그래?”
존은 턱을 긁적였다.
“그렇구나.”
“누구의 부탁이야?”
“아무도.”
“뭐?”
“그 누구의 부탁도 아니라고.”
“거짓말.”
상유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런 말에 속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야? 내가 여기에 온 이유도 저 위의 뜻인 것처럼. 너도 여기에서 저 위의 뜻대로 행동하는 거 아니야? 저 위에서 바라는 거. 너에게 말하는 거. 그대로 하는 거 아니야?”
존은 물끄러미 상유의 눈을 응시했다. 그리고 벽에 기대서 가볍게 자신의 머리를 두드리고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니야. 지금 네가 혼란을 겪는 것은 알고 있지만. 네가 지금 복잡한 마음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나를 밀어낼 이유는 없다고 생각을 하는데? 나는 너를 돕는 거야.”
“돕는다.”
상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애초에 악마가 천사를 아무런 이유도 없이 돕는다는 게 이상한 거였다.
“바라는 게 뭐야?”
“뭐?”
“바라는 게 있을 거 아니야. 그런 게 있지 않고서야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도울 이유가 있어?”
“좋은 사람 같아.”
상유는 눈을 가늘게 떴다.
“정기연 씨?”
“당연하지. 그럼 내가 그쪽에게 사람이라고 말을 할 리가 없잖아.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제대로 모르는 거 같군.”
“아니.”
뭔가 말려드는 기분이었다. 상유는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침을 꿀꺽 삼키고 물끄러미 존을 응시했다.
“정말로 아니라고?”
“그래.”
상유는 여전히 의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존은 그저 여유로운 표정을 지을 따름이었다. 상유는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안 이상해요.”
“정말입니까?”
“네.”
기연은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상유의 볼을 꼬집고 가볍게 볼을 부풀린 채 고개를 흔들었다.
“왜 그래요?”
“그냥 이상해서요.”
“뭐가 이상한 건데요?”
“나를 돕는다는 거.”
“그냥 그 마음을 받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냥.”
상유는 혀로 입술을 축였다. 그리고 기연의 눈을 응시하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마음이 불편했다. 어딘지 모르게 턱 하고 걸리는 기분. 무슨 일이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만 같았다.
“겁이 나요.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거 같아.”
“기다릴게요.”
“네?”
“얼마든 기다릴게요.”
상유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그건.”
“이미 기다렸는 걸.”
기연은 활짝 웃은 채 가볍게 도리질 했다.
“나를 믿지 못해요?”
“미안해서.”
“하나도 미안하지 마.”
기연은 상유의 가슴에 손을 얹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상유의 가슴에 고개를 기댔다.
“심장이 뛰네.”
“네?”
“심장이 뛴다고요.”
“아니.”
상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니까.”
“그러면 안 되는 거예요?”
상유의 표정에 기연은 입을 가렸다. 상유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뭔가 다른 일이 벌어지는 중이었다.
“사장님은 연애할 때 어떠셨어요?”
“네?”
갑작스러운 기연의 물음에 선재는 고개를 갸웃했다. 기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히 이상한 말을 한 기분이었다.
“아니요.”
“아닌 게 뭐야.”
기연의 대답에 선재는 씩 웃었다.
“그냥 그런 시간들을 보내는 거죠.”
“그럼 왜 결혼은 하지 않으셨어요?”
“결혼.”
선재는 손톱을 물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그렇게 되었어요. 결혼이라는 거. 그 사람하고 내가 다시는 떨어져서 살지 못할 정도로 사랑해야 가능한 거니까.”
“그렇게 사랑하지 않으셨어요?”
“결혼을 하자고 해요?”
“아니요.”
기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과 상유는 결혼을 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런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냥 나로 인해서 그 사람이 힘들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 사람이 나 때문에 지치고 있는 걸 알아서.”
“지친다.”
선재는 입술을 쭉 내밀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좋아하면 그러는 거죠.”
“그래요?”
“그럼요. 그런데 정기연 씨가 그 사람을 더 좋아하는 모양이네. 지금 보니까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그러는 거 같은데?”
“더 좋아하는 사람.”
기연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랬다. 이 간단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더 좋아해서 그런 거였다.
“그러네.”
“몰랐습니까?”
“네.”
기연은 아랫입술을 물고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 거였다. 자신은 그 사람을 늘 기다릴 수 있었다. 상유는 자신에게 있어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주는 사람이었고 뭔가 할 수 있게 해준 존재였다.
“그렇다.”
“뭐가 그래요?”
“제가 더 좋아해요.”
기연은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선재도 그런 기연을 보고 따라 웃으면서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부럽네요.”
“제가요?”
“네. 누군가를 정말로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거.”
기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은 건가요?”
“당연하죠.”
선재의 말에 기연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심호흡했다. 이 마음이 편했다. 마음이 편안했다.
“그리고 아직 정기연 씨 어린 나이니까 정기연 씨가 원하는 대로. 생각을 하는 그대로. 그냥 하면 되는 겁니다.”
“그래도 되는 거죠?”
선재는 다른 말을 더 하지 않고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기연도 그런 선재를 보고 따라 웃었다. 자신이 해야 하는 거였다. 자신을 믿는 거. 이게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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