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장. 당신에게 나 1
“봉사를 해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노 신부의 물음에 존은 가슴을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노 신부는 여전히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쪽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는 알고 있지만. 그래도 자신의 몸을 우선으로 생각을 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어차피 이곳에서 뭔가를 해야 하는 거니까. 그리고 이곳에서 최대한 오래 머물기 위해서는 뭔가 허락이 필요할 거 같습니다.”
“허락이라.”
노 신부는 가만히 존을 응시했다.
“그쪽은 정말 사악한 존재가 맞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존은 손가락을 튕기며 씩 웃었다. 그의 손가락에서 피어오른 불꽃을 보면서 노 신부는 고개를 저었다.
“신의 피조물을 가지고 다른 평가를 하는 것은 제가 할 일이 아닙니다. 다 신의 뜻이 있으니까 여기에 존재하시는 걸 겁니다.”
“신이라.”
존은 가볍게 몸을 떨었다.
“그건 별로 안 반갑네요.”
“불경하네요.”
“고맙습니다.”
존의 미소에 노 신부도 따라 웃었다.
“안 아파?”
“괜찮습니다.”
할머니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존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여전히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아프면 쉬어.”
“아니요. 잘 할 수 있습니다.”
할머니는 지나가는 상유의 손을 잡았다.
“총각이 조금 더 열심히 해.”
“네?”
상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여기 총각이 고생이잖아.”
“그러게요.”
존은 곧바로 울상을 지었다. 상유는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끌끌 차면서 고개를 저었다. 존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렇게 능청스럽게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을 할 줄 몰랐어. 그쪽이 악마라는 걸 잊게 되는 거 같군.”
“그쪽은 지금 자신이 천사라는 걸 알고 있나? 천사가 그렇게 누군가를 믿지 못하는 거. 그게 말이 되나?”
“뭐.”
상유는 엷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냈다. 도대체 이 순간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너무나도 복잡했다. 자신이 뭘 해야 하는 건지. 그리고 뭘 할 수 있는 건지. 너무 어려웠다.
“여기에 계속 있을 거야?”
“당연하지.”
“그럼 부탁할게.”
“어?”
“정기연 씨.”
존은 물끄러미 상유를 응시했다.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
상유는 엷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존은 혀로 이를 훑으면서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뭘 바라는 건지 모르겠어. 그런데 이상하게 그쪽이 있으면 마음이 편해. 그러면서도 불편해.”
“그럴 수 있지.”
존은 씩 웃으면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천사와 아무렇지도 않다는 게 이상한데. 천사도 이상할 거였다.
“미안해.”
“뭐가?”
“내가 악마라서.”
상유는 미간을 모은 채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고 하늘을 바라보고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가야 할 거 같아서.”
“저기.”
“응.”
“왜?”
“뭔가 결론을 보고 싶어.”
“결론이라.”
존은 목을 문질렀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고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물끄러미 상유를 응시했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열려다가 고개를 흔들고 눈썹을 긁적였다.
“다른 거 생각은 하지 말고. 그냥 그쪽이 좋아하는 거. 이 시간. 그냥 이걸 느끼는 건 어때?”
“그렇지.”
상유는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정답일 거였다.
“그래서 박상유 씨도 뭘 쓰려고요?”
“네.”
상유는 손을 비비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기연 씨가 좋아하는 일. 정기연 씨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거. 그거 나도 같이 하고 싶어서요.”
“뭐.”
기연은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상유가 자신과 같은 일을 해준다는 거. 고마운 마음이었다.
“그건 좋죠.”
“그렇죠?”
“그럼 각자 작업을 하죠.”
“좋습니다.”
상유는 노트에 뭔가 쓰다가 물끄러미 기연을 응시했다. 마음이 편안했다. 좋은 사람이었다. 저 사람을 위해서 뭘 해야 하는 건지. 자신이 뭘 할 수 있는 건지. 이걸 빠르게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쪽도 전혀 연결이 안 되는 거군.”
“당연하지.”
존의 간단한 대답에 상유는 끙 하는 소리를 내며 미간을 찌푸렸다. 존마저 제대로 연락이 되지 않는다면 고립이었다.
“그쪽이 왜 그런 상태인지는 알아야 할 거 같은데.”
“알잖아?”
“어?”
“이미 내가 왜 이러는 건지.”
“그거야.”
“알면서.”
상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존은 짧은 한숨을 토해내며 입술을 쭉 내밀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좋다는 말을 들어서.”
“그건.”
“이거 맞아.”
존은 확신에 찬 채로 말하며 한숨을 토해냈다.
“젠장.”
“왜 그래?”
“이제야 겨우 뭐라도 된 거 같은데.”
“뭐?”
“이제 겨우 여기에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을 한 건데.”
상유는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 존의 말에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돕고만 싶었다.
“그럼 당연히 도와야 하는 거죠.”
“그건 그렇지만.”
기연의 간단한 말에 상유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랬다가는 또 다른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
“괜찮아요.”
“네?”
“올 거잖아요.”
“그건.”
상유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자신이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 거였다. 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건 기연에게 너무나도 잔인한 일이었고 기연을 너무나도 힘들게 할 일이었다.
“존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지난 일 년을 기다리지 못했을 거야.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을 거야.”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사실이니까.”
기연은 상유의 눈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이제 와 이런 말을 한다는 건 우스웠지만 당연한 마음이었다.
“그러니 가요.”
“정기연 씨.”
“바른 일을 해야지.”
“아니요.”
상유는 짧게 여러 번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왜요?”
“왜라니.”
상유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당신 옆에 있고 싶다고. 그래야만 한다고. 그 말을 해야 하는 거였다.
“내가 지금 정기연 씨를 떠나면 이게 어떤 일이 될지. 어떤 일에 영향을 미치게 될지 모릅니다.”
“나를 못 믿는 건가요?”
“네?”
“나는 박상유 씨를 믿는데?”
“아니.”
“그거면 되잖아요.”
기연의 말에 상유는 멍하니 있다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거면 된다는 말. 기연은 애서 더 밝게 웃었다. 자신이 웃어야지만. 그래야지만 상유가 마음이 편하게 떠날 수 있었다.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었다.
“그쪽 핑계를 대는 거예요.”
“핑계?”
존은 미간을 모았다.
“그게 무슨?”
“박상유 씨도. 그쪽도. 이곳에서는 편하지 않잖아요. 내가 뭐라고 둘 다 여기에서 이러고 있어요.”
“나는 내 의지로 있는 겁니다.”
존은 가슴을 치면서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아무리 저 위에서 귀찮게 한다고 해도 견딜 수 있다고요. 내가 명색이 악마인데 이렇게 바로 넘어질 리 없잖아요.”
“그러지 마요.”
기연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안 돼.”
“네?”
“존.”
기연의 차분한 목소리에 존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쪽도 지쳐가고 있는 거 알아요. 자꾸만 쓰러지고. 그거 여기에 오래 있어서 그러는 거잖아요.”
“그건.”
“그러니까 가요.”
기연은 싱긋 웃어보였다.
“그쪽이 왜 여기에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 그건 그쪽이 찾아야 하는 거고. 거기엔 내가 없어야 맞아요. 혹시나 내가 있어야 하더라도 지금 당장은 아니야. 당신 점점 지쳐가고 있잖아요.”
“그리고 저쪽도고.”
“그렇죠.”
존은 잠시 고민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결국 둘이 결정할 일이었다. 자신은 거기에 할 말이 없었다.
“저쪽이 하면.”
“더 몰아세워 줄래요?”
“그건.”
“부탁이에요.”
존은 한숨을 토해내고 머리를 긁적였다.
“힘든 부탁을 하네.”
“그렇죠?”
기연은 싱긋 웃었다.
“그쪽은 악마니까. 거짓말도 괜찮잖아요?”
“그렇죠.”
존은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편이 불편했지만 내색할 이유는 없었다.
“저쪽도 준비하고 있을 겁니다.”
“느껴져요?”
“네.”
기연은 다행이라는 마음과 동시에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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