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장. 이별 준비 1
“아래에 무슨 신호라도 보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래야 상유도 준비를 하고 뭐라도 할 거 아니야. 안 그래?”
“싫어요.”
아름의 말에 선재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정말로 그쪽이 신이 되기를 바란다면. 적어도 이렇게 아프게 하면 안 되는 거지.”
“정말로 아픈 순간. 모든 것을 다 잃어야 하는 그 고통의 순간. 그때 선배는 알게 될 겁니다.”
“미친 거야.”
아름은 단호히 고개를 흔들었다. 이럴 수 없었다. 상유는 지켜봤다. 절대로 아파서는 안 되는 아이였다. 천사로의 모든 일을 다 하면서 다른 천사들이 흔들리는 것도 지켜준 존재였다. 그런 천사였다.
“도대체 왜 상유야?”
“아.”
선재는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그러네.”
“뭐?”
“이유는 모르겠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아름은 경멸의 시선으로 선재를 응시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누군가에게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애초에 너로부터 시작이 된 건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 시작은 결국 너였던 거야. 알아?”
“알죠.”
선재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알아요.”
“권선재.”
“누나.”
선재는 물끄러미 아름을 쳐다봤다.
“저 이제 사라질 거예요.”
“뭐?”
“그리고 저를 기억하시지 못할 겁니다.”
“무슨.”
아름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지금 선재가 하는 말은 천사인 자신이 듣더라도 말이 안 되는 거였다.
“세상에 그런 일이 있다는 거 들은 적이 없어. 내가 이렇게 보여도 천사로 나름 권위도 있어. 그렇게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처럼. 그렇게 무시하면서 대하지 마. 나 그런 대우를 받을 이유 없어.”
“사실이니까.”
선재는 눈을 감았다.
“곧 끝날 겁니다.”
“뭐?”
“모든 게.”
아름은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머리가 지끈거리고 금방이라도 토할 거 같은 기분이었다.
“이제 여름이에요.”
“그러게요.”
가만히 숨을 쉬면 여름 냄새가 났다.
“좋다.”
“날이 이렇게 더운데 좋아요?”
“당연하죠. 상유 씨랑 같이 있으니까.”
기연의 말에 상유는 엷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기연의 손을 잡았다.
“편안해.”
“내가 원래 사람들을 좀 편하게 해줘요.”
“나 사람 아닌데.”
“뭐 천사도 해준다고 하죠.”
기연의 대답에 상유는 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뭐야?”
“대충 넘어가요.”
기연의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상유는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이길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정기연 씨가 하는 말을 듣고 보면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 싶어.”
“박상유 씨를 좋아하는 사람.”
“고맙습니다.”
상유의 낮은 목소리. 기연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편안해요.”
“네?”
“상유 씨 목소리.”
“아.”
상유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렇구나.”
“신기해.”
“뭐가요?”
“어릴 적부터 이상형이었거든요.”
“네?”
상유는 기연을 쳐다봤다. 하지만 기연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상형이요?”
“네.”
기연은 이제야 겨우 눈을 뜨고 씩 웃었다.
“누구나 자기의 이상형을 가지고 있을 텐데. 저는 목소리가 좋은 사람이 그렇게 좋았어요. 지금 상유 씨처럼.”
“그렇구나.”
결국 저 위에서 생각을 한 건 이런 거였을까? 자신이 기연과 만난 것이 오롯이 우연은 아니었던 걸까?
“왜 그래요?”
“아니요.”
자신도 모르게 표정이 굳었던 모양이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거짓말.”
기연은 입술을 쭉 내밀었다.
“말해줘요.”
“아무 것도 아니에요.”
“하여간.”
기연은 한숨을 토해내면서도 싱긋 웃었다.
“좋아요.”
“고맙습니다.”
“내가 천사를 좋아한 게 죄지.”
“그렇죠.”
상유가 장난스럽게 고개를 끄덕이자 기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밝은 미소를 지었다. 상유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이상형.”
“연결이 되어있는 걸까?”
“아마도?”
존의 말에 상유의 얼굴이 구겨졌다.
“젠장.”
“왜 그래?”
“그 사람이 걱정이 되어서.”
“그 정도 생각도 안 한 거야?”
“어?”
존의 말에 상유는 고개를 돌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당연한 거 아니야?”
“당연하다니?”
“애초에 저 위에서 아무런 인연도 닿지 않는 사람을 맺어줄 거라고 생각을 하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
“아.”
상유는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결국 그 말이 사실이었다. 저 위에서 관심을 가지려면 이 정도는 뒤어야 하는 거였다.
“그런 거였군.”
“그렇게 씁쓸한 거야?”
“응.”
상유는 심호흡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되어버려야만 하는 걸까? 자신은 그렇게 누군가를 좋아하는 이 마음을 가지게 되는 걸까? 그런 거라면 싫었다.
“그래도 좋은 거 아닌가?”
“무슨?”
“지금은 진심이라고 생각을 하는 거잖아.”
“그것도 저 위의 뜻일 수도 있지.”
“아니.”
존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을 거야.”
“그걸 그쪽이 어떻게 알지?”
“만일 정말로 그게 전부였다면 지금 이 순간 이렇게 고민하는 거. 이거 되게 무의미한 일이 아닌 건가?”
“무의미?”
상유는 혀로 입술을 축였다. 결국 자신의 끝없는 불신. 이게 자신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증거가 되는 거였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거. 그거 우연히 만나게 해준다고 해서 모두 다 하는 건 아니야.”
“그렇지.”
상유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거였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닐 거였다. 그럴 거였다.
“그렇군.”
“그런 거야.”
상유는 짧게 한숨을 토해냈다. 존은 미간을 모았다.
“그런데 왜 그러는 거야?”
“어?”
“걱정은 이쪽이 해야지.”
“뭐가?”
“악마야. 이쪽은.”
“아.”
“아라니.”
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자신이 악마라고 하지만 저쪽은 이쪽 생각을 전혀 안 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 천사를 도와서 이런 일들을 하고 있는 거 알면 저 아래에서는 소멸을 하려고 할 거야.”
“그쪽 말이 맞는 거라면 그런 것도 걱정을 할 이유는 없는 거잖아. 다 정해져 있는 거니까.”
“아니.”
존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저 아래에는 저 위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을 거였다. 모든 건 자신의 일이었다.
“그래도 다행이야.”
“무슨?”
“이곳을 봤으니까.”
존의 미소에 상유는 미간을 모았다.
“뭐라고?”
“정말 와보고 싶었어.”
“인간세상?”
“응.”
“도대체 왜?”
“우리는 인간을 불행하게 해서 그 불행을 먹고 사는 존재들이니까. 지금 지옥은 그 어느 순간보다도 호황이야. 그래서 그 어떤 악마도 이곳으로 오지 않지. 괜히 왔다가 너희들과 부딪치는 거. 이거 저 아래에서 바라는 게 아니거든. 그러다가 혹시라도 저 위에서 이곳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다면. 이곳을 정화라도 할 생각을 한다면. 우리도 일을 하고 귀찮아질 테니 말이야.”
“그렇군.”
상유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가 이곳에서 보이지 않는 것은 천사들의 노력이 아니라 인간의 타락이었다.
“타락.”
“어쩔 수 없지.”
“왜?”
“누구나 그래.”
“누구나.”
상유는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
“그런 건가?”
“응?”
“천사들도.”
“뭐.”
존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고여 있는 것들 중에서 변하지 않는 건 없어. 그게 설사 천사라고 해도. 저 위라고 해도.”
“그래.”
상유는 한숨을 토해냈다. 그랬다. 가슴을 콱 막고 있는 거 불쾌한 기분. 이게 바로 그거였다.
“천사의 타락.”
“왜 그래?”
“아니.”
상유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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