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장. 이별 준비 3
“이제 사람이 되어가는 거 같아.”
“사람이라니.”
신부의 말에 존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봐요. 프란체스코.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 마요. 내가 도대체 왜 인간이 되어간다는 거야?”
“아무리 악마라고 하더라도 타인의 아픔에 대해서 그러헥 이해를 하는 거. 그게 인간이라는 거 아닌가?”
“아니.”
존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모든 인간에게 다 그러는 게 아니라 오직 정기연 씨. 내가 아는 인간에게만 그러는 거라고.”
“나에게는 안 그럴 거예요?”
“어?”
“내가 힘들면?”
“아니.”
갑작스러운 신부의 물음에 존은 입술을 살짝 물었다. 하여간 인간들은 귀찮은 것을 자꾸만 묻는 족속이었다.
“그러는 그쪽은 내가 악마라고 해서 전혀 취급도 안 해줄 거면서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왜 그럴 거라고 생각을 해요?”
“어?”
“나는 그쪽이 좋아요.”
신부의 말에 존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 무슨?”
“그런 거 아닙니다.”
신부는 곧바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뭐라는 거야?”
“나도 그런 거 아닙니다.”
“그냥 신기해서요.”
신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맨 처음에는 악마라는 존재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고 되게 싫었는데 지금 보니 다 그런 것도 저 위의 뜻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 위라면?”
“뭐.”
존은 가볍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여간 이 배려도 없는 것들은 자신을 자꾸만 궁지로 모는 셈이었다.
“결국 나는 언젠가는 저 아래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왜 자꾸 나를 그런 것들하고 엮는 건지.”
“여기에 있거나 위로 가면 되는 거죠.”
“불가능합니다.”
존은 단호히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불편했다. 자신은 결국 이곳에 매일 수 없는 존재였다.
“그렇군요.”
신부도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게 대답했다. 존은 한숨을 토해내면서 이리저리 목을 풀고 어색하게 웃었다.
“언제인지는 모르시는 거고요.”
“그래서 온 거 아닙니까?”
“저도 모르지요.”
“그렇습니까?”
당연한 이야기였다. 노 신부라고 하더라도 천사가 다시 저 위에 가는 순간을 알 리는 없었다.
“제가 멍청한 일을 한 거군요.”
“그걸 이제 아신 겁니까?”
“신부님.”
“농입니다.”
노 신부는 밝게 웃음을 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상유는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갑자기 다시 저 위로 가는 것은 싫습니다. 이곳에서 제가 해야 하는 일들이 아직 있는데.”
“그게 무엇입니까?”
“낮은 자들을 굽어 보는 것.”
“아셨습니까?”
“알았죠.”
상유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저 그분의 뜻이라고만 생각을 하고 외웠다. 머리에는 있었던 것이었는데 직접 이곳에 와서 그것을 겪으니 전혀 다른 기분이었다. 왜 몰랐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리도 어리석은 존재인 건지. 그래도 천사라는 존재인 것인데 왜 그랬던 것인지 너무 답답합니다.”
“이 오랜 시간 그분의 뜻을 따르는 저도 가끔은 인간이기에 실수를 합니다. 모든 피조물은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뭐.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상유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신기합니다.”
“무엇이요?”
“그 분도 실수를 하는 것이.”
“아. 뭐.”
노 신부는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했다.
“그런 재미라도 있어야죠.”
“재미라.”
상유도 노 신부를 보면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재미. 당연한 말일 수도 있었다. 신도 다르지 않을 거였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어떻게 하시는 겁니까?”
“네?”
“무조건 신을 섬기시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럴 리가 있습니까?”
노 신부는 인자한 미소를 지은 채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상유도 괜히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저기.”
밥을 먹다가 상유가 입을 열자 기연은 괜히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상유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곧 떠날 거 같습니다.”
“아.”
결국 상유가 자신에게 꺼낼 말이었다. 마음이 무거웠지만, 듣고 싶지 않았지만 들어야 하는 말이었다.
“저기.”
“미안합니다.”
“왜 미안해요?”
“곧 갈 거 같습니다.”
“그게 뭐요?”
기연은 일부러 더 밝은 표정으로 대답하며 고개를 저었다.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다.
“다행이다.”
“뭐가 다행입니까?”
“그래도 박상유 씨가 나에게 먼저 말을 해줬으니까. 나는 박상유 씨에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아니까.”
“중요합니다. 그 누구보다.”
“그래요?”
“당연하죠.”
상유는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푹 숙이고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해요.”
“왜 자꾸 사과를 해요?”
“내가 좋아하면 안 되는 사람을 좋아해서.”
“아니요.”
기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없어.”
“하지만.”
“정말.”
기연은 다시 한 번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박상유 씨. 나는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거 모두 다 박상유 씨 덕분이에요. 내가 이렇게 중요한 사람처럼 느끼는 거. 스스로가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거. 이거 전부 다 박상유 씨가 있어서 가능한 거예요. 나는 박상유 씨 하나도 원망하지 않아요.”
“그렇게 말을 해줘서 고맙습니다.”
“당연한 거죠.”
기연은 씩 웃으면서 장난스럽게 어깨를 으쓱했다.
“좋아요. 지금.”
“그렇다면 다행이죠.”
“바로 그렇게 태도가 변하는 거예요?”
“네?”
“아니.”
기연은 입술을 쭉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왜?”
“눈치가 없어요.”
“네?”
“아니요.”
기연의 여전히 알 수 없는 말에 상유는 고개를 갸웃했다. 기연은 가만히 상유의 손을 잡았다.
“이제 이 맛있는 밥도 못 먹는 거네.”
“존에게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갈 겁니다.”
“내가 할 이유는 없어요?”
“당연하죠.”
기연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그 동안 만난 남자랑 다르다고 할까? 상유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즐거웠다.
“고맙습니다.”
“당연하죠. 그리고 그 녀석이 이 정도도 해주지 않으면 여기에 있을 이유 전혀 없을 겁니다.”
“무서워.”
“당연한 거죠.”
기연은 입술을 쭉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그냥 나를 알려줘요.”
“왜요?”
“우리 둘만의 음식이니까?”
“아. 그런 겁니까?”
“당연하죠.”
상유는 혀로 살짝 입술을 축였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미안한 기분. 그러면서도 고마운 기분.
“나도 정기연 씨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기연은 밝게 웃으며 상유의 목을 끌어당겨서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상유도 그런 기연에게 응대하며 몸을 기울였다.
“원래 동물원을 좋아했습니까?”
“아니요.”
기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싫어해요.”
“그런데 왜?”
“그냥 사귀면 가야 할 거 같아서?”
“그럼 왜 싫어하는 겁니까?”
“좀 그렇잖아요.”
기연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불쌍하기도 하고. 원래 거기에 사는 애들이 아니니까. 그런 애들을 보는 게 마음이 불편하기도 해요.”
“좋은 사람이에요.”
“그러면서도 가는 거 이상하죠?”
“그럼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갈까요?”
“네?”
기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서 김밥을?”
“네.”
“안 될 거 같은데.”
“왜요?”
선재의 말에 기연은 입술을 쭉 내밀었다.
“사장님 아무리 제가 요리를 못 한다고 하더라도 김밥도 가르쳐주지 못하신다는 거 아니지 않아요?”
“그게 아니라 이 날씨면 상해서 먹지 못할 겁니다. 괜히 탈이 날 수도 있고 지금은 먹을 거 아닌 거 같은데요?”
“그래요?”
선재의 말에 기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그래도 뭐 이렇게 한다고 하니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도왔으면 하는데. 유부초밥이랑 조금 차가운 것들 어떻습니까?”
“뭐든 좋아요.”
기연의 기대에 찬 표정을 보면서 선재는 턱을 어루만지고 짧게 심호흡을 한 채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어디에서 포장을 하시지.”
“의미가 다르잖아요.”
“아니 의미라고 해도.”
선재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 번 기연의 솜씨를 보면 어려울 거 같은데. 선재는 눈썹을 움직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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