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장.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1
“좋다.”
“좋아요.”
기연과 상유는 손가락을 끼면서 밝은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요즘 근무 너무 줄어든 거 아닙니까?”
“맞아요.”
기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줄였어요.”
“왜요?”
“박상유 씨랑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요.”
“그러지 마요.”
“아니요.”
기연은 싱긋 웃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왜 그래?”
“아니.”
상유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미안해.”
“뭐가 미안해?”
기연은 상유의 눈을 바라보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손을 잡고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냥 즐겨.”
“하지만.”
존의 말에 상유는 미간을 모았다.
“그럴 수 없잖아.”
“왜?”
“왜라니?”
상유는 이마를 짚은 채 고개를 저었다. 존에게 뭔가 공감을 바라는 일을 부탁하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이 나로 인해서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기 바라지 않아. 내가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그게 왜 낭비인 건데?”
“왜라니?”
상유는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고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가 눈을 감았다.
“싫다. 정말.”
“왜?”
“됐어.”
상유는 미간을 모았다.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 너무 어려웠다.
“자신에게 왜 그렇게 냉정하게 대하시는 겁니까?”
“모르겠습니다.”
노 신부의 물음에 상유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이유가 없다고 모두가 말하지만. 이상하게 그러면 안 될 거라고.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너무 그러시는 거 같습니다.”
“그렇죠?”
상유는 어색하게 웃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집착하는 중이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그 사람을 혼자 두고 떠난다는 거. 그 사람에게 모든 아픔을 다 주고 간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 분을 제가 만날 수 있겠습니까?”
“네?”
상유는 노 신부를 쳐다봤다.
“그러니까.”
“어렵습니까?”
“모르겠습니다.”
상유는 엷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숙였다.
“제가 뭘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사랑을 하시는 거죠.”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왜요?”
“네?”
노 신부의 반문에 상유는 고개를 들었다.
“무슨?”
“천사는 신의 대리자로 모든 인간을 다 사랑할 존재인데 도대체 왜 그런 마음을 품으시는 겁니까?”
“그런 사랑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게 다릅니까?”
노 신부의 말에 상유는 뭔가 머리를 때리는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그저 그 분이 소중하다고. 그 분이 가치가 있다고 그것에 대해서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가치.”
상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저는 지금 천사께서 얼굴이 편안해 보이시는 것을 보니 오히려 마음이 놓입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까요? 점점 더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거 같아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행이다.”
상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연이 아니었더라면 오히려 지금 더 혼란을 겪을 수도 있을 거였다.
“저 위에서 분명히 어떤 이유가 있어서. 어떤 뜻이 있어서 보낸 거라고 생각을 하시는 거 아닙니까?”
“그럴까요?”
“분명히 그럴 겁니다.”
상유는 가만히 웃었다. 아주 조금이지만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었다. 이래서 다들 신부를 찾는 모양이었다.
“저도 이곳에 와서 고해성사라도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이토록 마음을 편하게 해주시는 분이라니.”
“다 잊죠.”
“네?”
“저는 다 잊습니다.”
노 신부는 빙긋 웃었다. 상유도 그런 신부를 따라 웃었다.
“어렵다.”
“당연하죠.”
상유가 글을 쓰다가 그대로 눕자 기연은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게 쉬울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아니요.”
상유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그런 적 없습니다.”
“그런데 왜 그래?”
“정기연 씨가 나랑 안 놀아줘서 나도 정기연 씨가 하는 일을 같이 하려고 하는데 아무리 해보려고 해도 이게 쉽지 않은 일이라서 말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지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해보면 되는 거죠.”
기연은 간단하게 말하며 밝게 웃었다. 상유는 입술을 쭉 내밀고 살짝 인상을 구긴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게 뭡니까?”
“네?”
“너무 간단하잖아.”
“원래 그래요.”
기연은 자판을 두드리다가 물끄러미 상유를 보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누구에게요?”
“뭐 누구든?”
“있습니다.”
“일단 그거부터 써봐요.”
“네? 그건 소설이 아니잖아요.”
상유가 의심을 하는 표정을 짓자 기연은 입술을 쭉 내밀었다.
“그런 태도는 지금 선생님에게 배우는 태도가 아닌 거 아니에요? 그런 식의 태도는 아닌 거 같은데.”
“저기 분명히 말을 하지만 정기연 씨는 내 선생님이 아닙니다. 그저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 말을 하는 겁니다.”
“그게 선생님이 하는 일이죠.”
“아니.”
상유는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기연의 밝은 표정에 그냥 웃고 말았다. 기연은 더욱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천사가 글이라니.”
“뭐가?”
“이상하잖아.”
“안 이상해.”
존의 빈정거림에 상유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묵주를 만드는 악마에게서 글을 쓰는 일이 이상하다는 말을 듣는 것은 좀 아닌 거 같은데?”
“이상하니까 이상하다고 이야기를 하는 거야. 아무리 천사라고 하더라도 글을 써서 뭘 하려고?”
“그러게.”
존의 말에 상유는 잠시 멍해졌다. 도대체 자신은 글을 써서 뭘 하려고 하는 걸까? 뭘 할 수가 있는 걸까?
“그런 게 꼭 필요할까?”
“모르지.”
상유의 물음에 존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글을 써본 적이 없으니까.”
“그냥 정기연 씨의 마음을 아주 조금이라도 더. 제대로 이해를 하고 싶어. 그래야 할 거 같아.”
“이해라.”
존은 입술을 내밀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를 한다는 것. 그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때로는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게 세상에 그 어떤 일보다 어려울 수 있는데 그걸 하겠다는 거야?”
“악마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니 이상하군.”
“나를 보니까 그래.”
“어?”
상유는 미간을 모았다. 이건 또 무슨 말인지.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나는 그쪽이 이해가 안 가거든.”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존은 하얀 이를 드러내고 밝게 웃었다.
“우리 둘도 이해를 못 하는데 말이야. 우리처럼 결국 인간이 신뢰할 수 없는 것들도 이 모양인 건데. 천사가 인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다 이해를 할 수 있다고?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그래?”
존의 말에 설득이 되는 것이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뭘 할 수가 있는 건지. 그리고 내가 뭘 해야 하는 건지. 아무리 생각을 해도 알 수가 없어.”
“그냥 이런 시간을 보내.”
“이런 시간.”
상유는 목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저 이런 시간을 보내는 것. 결국 자신은 기연을 아프게 만들 거였다.
“차라리 멀어질까 싶어.”
“어?”
“그러면 덜 슬플 거잖아.”
“아니.”
상유의 말에 존은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어?”
“왜?”
“그리워할 거야.”
“그랬어?”
“응.”
존의 대답에 상유는 침을 꿀꺽 삼켰다. 기연이 말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없는 시간 그렇게 보낸 거였다.
“정말 싫다.”
“그러니까 잘 해야 하는 거야. 지금 그 사람을 사랑해. 그래서 곁에 있어. 너를 기억하며 살 수 있게.”
“나를 기억하면서 산다.”
심장을 뭔가가 쿡 찌르는 기분이었다. 엄청난 통증. 하지만 존에게 내색을 할 수 없기에 애써 웃었다.
“무슨 악마가 그래?”
“신부들과 일 년 시간을 보내면 다 이렇게 되는 거야.”
“아.”
존도 결국 그 시간을 기연을 지켜봤다. 어쩌면 존은 자신보다 기연에게 더 중요한 존재일 수도 있었다.
“네가 부럽군.”
“악마가?”
“응.”
상유의 미소에 존은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상유는 그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가슴이 콱 막히는 기분이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그것을 하는 게 지금 우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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