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장.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2
“뭐 어차피 잠시라면.”
선재는 긴장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기연은 입술을 내밀고 살짝 인상을 구겼다.
“사장님 굳이 사람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공연히 돈은 쓰지 마세요. 여기 일 되게 못 하니까요.”
“돈은 없어도 됩니다.”
상유의 다급한 말에 선재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돈이 없어도 됩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있어야죠.”
기연이 대신 상유의 말을 끊으며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상유는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뭐 하자는 거예요?”
“뭐가요?”
“아니.”
기연은 머리를 뒤로 넘기고 한숨을 토해냈다.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햇잖아요. 더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고. 그런데 내 옆에서 뭐 하는 거예요?”
“내가 생각을 하는 더 중요한 일. 이게 바로 정기연 씨와 같이 시간을 보내고 의미를 찾는 겁니다.”
“의미라니.”
기연은 인상을 지푸린 채로 고개를 저었다. 상유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건 아니었다.
“박상유 씨가 아마 천사라서 모르는 모양인데 말이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적당한 거리라는 게 있어야 해요. 그 거리라는 게 사람과 사람 사이를 더욱 의미가 크게 해주죠.”
“그게 뭡니까?”
“네?”
“좋아하면 그걸로 그만인 거지.”
“아니.”
상유는 이렇게 말을 하고 기연의 손을 확 끌었다. 기연은 입술을 내밀면서도 엷은 미소를 지었다.
“하여간.”
“좋아합니다.”
“나도 좋아해요.”
“그래서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나도 그렇지만.”
“얼마일지 몰라요.”
상유의 절절한 고백에 기연은 살짝 숨을 들이쉬었다. 그랬다. 도대체 언제일지. 얼마나 오랜 시간 상유가 자신의 곁에서 머물 수 있을지. 지금 당장 상유가 사라지더라도 할 말은 없을 거였다.
“힘이 돌아오는 거죠?”
“네.”
상유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그렇구나.”
기연은 혀로 입술을 축였다.
“그랬어.”
기연은 머리를 뒤로 넘기고 애써 웃었다.
“좋아요.”
“뭐가 좋습니까?”
“이제 박상유 씨가 자신의 능력을 되찾는 거잖아요. 나는 내가 좋아하는 남자가 자기가 가진 거 나로 인해서 잃지 않기를 바라요. 그런 식으로 행동을 하는 거. 뭔가 모자란 여자의 일 같아.”
“그게 무슨 말입니까?”
상유가 짜증이 섞인 채 말을 했지만 기연은 그저 여유로운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요.”
“네?”
“내가 정기연 씨에게 나로 인해서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뭐라고 고민을 하게.”
“아니요.”
기연은 상유의 팔짱을 끼고 고개를 저었다.
“안 그래요.”
상유도 기연의 체온을 느끼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빛이라.”
“그렇지.”
태초에 빛이 있으라. 결국 자신의 손에 그것이 일어나고 있는 와중이었다. 상유는 미간을 찌푸렸다.
“너 뭐가 되는 거야?”
“어?”
“그냥 천사는 아니잖아.”
“그러게.”
존의 지적에 상유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더 강한 힘. 그리고 성스러운 무언가가 되는 기분이었다.
“저 위에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건 적어도 내가 바라는 건 아니야.”
“네가 바라거나 말거나. 그런 건 저 위에서 전혀 관심도 없는 거잖아. 그리고 너는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거고.”
“그렇지.”
상유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필요. 결국 그것은 자신이 신이 되어간다는 의미였다.
“도대체 저 위에서는 무슨 생각을 하고 나에게 이런 힘을 주는 거지? 내가 도대체 뭘 할 수가 있는 거라고?”
“나는 소멸시키지 마.”
“안 그래.”
존의 걱정스러운 표정에 상유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존은 그런 상유를 살짝 이상하게 쳐다봤다.
“알고 있어요.”
“그래요?”
“네. 이미 말을 했거든요.”
“아.”
존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나오자 기연은 고개를 숙였다. 참 신기했다. 악마에게 위로를 받고 있다니.
“사실 존 씨가 내 편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나를 위해서 이래 주니까 고마워요.”
“그렇습니까?”
“네. 좋아.”
기연은 혀로 입술을 핥으면서 짧게 고개를 저었다. 존은 난간에 몸을 기대고 저 아래를 내다 봤다.
“좋다.”
“위험해.”
“안 죽어요.”
기연이 팔을 끌었지만 존은 고개를 저었다.
“악마를 누가 죽여.”
“하지만.”
기연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부럽네요.”
“뭐가요?”
“악마라는 거.”
존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연은 이리저리 목을 풀고 뒤로 물러나서 벤치에 앉았다.
“그렇게 뭔가에 달관할 수 있다는 거. 나는 그렇게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지는 못하는 거니까.”
“이런 거 그냥 가지면 되는 거 아닌가?”
“아니.”
기연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 없었다. 이건 오롯이 악마라서 할 수 있는 거였다.
“그리고 조금 더 박상유 씨랑 가까워지는 사이일 거라는 생각이 들 거 같아. 나는 지금 아니데.”
“안 듭니까?”
“네.”
기연의 대답에 존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럼 내가.”
“아니요.”
존이 움직이려고 하자 기연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대로 좋아요.”
“하지만.”
“일주일도 안 남은 거죠?”
“네?”
기연의 말에 존은 멍해졌다. 자신도 못 느끼고 있는 것을 기연이 느끼는 모양이었다. 존은 쓴웃음을 지었다.
“모르겠습니다.”
“왜요?”
“악마니까.”
“아.”
기연은 바로 납득했다. 존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도대체 왜 자신이 이 모든 것들과 엮인 것인지 신기했다.
“정말 이곳에 남으실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신부는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으면서도 묘한 미소를 지었다.
“고맙습니다.”
“네?”
“아이들을 위해서 고맙다는 말입니다.”
신부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악마를 칭찬하는 것이 내키지 않는 모양새였다.
“이곳의 아이들은 언제나 자신의 선생님이 자신을 버리고 떠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버리고 가다니.”
“다들 취업이 되면 바로 떠나니까요.”
“아.”
존은 작게 탄식했다. 결국 악마가 생겨나는 이유. 아니 악마가 이곳에 오지 않을 이유가 그런 것들일 거였다. 믿음이 사라지고 서로에 대한 애정이 사라지는 순간 악마들은 이곳에 올 이유가 없었다.
“왜 여기에 악마가 저만 있는지 알았습니다. 연옥이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 있는 거군요.”
“그렇죠.”
신부는 가볍게 책상을 손으로 문질렀다.
“아무리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아무리 제가 모든 것을 다 잡고 있다고. 적어도 신부라는 소명을 따르고 있다고 말을 해야 하지만 그게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은 아실 거 같습니다. 맞지요?”
“네. 그렇습니다.”
존의 대답에 신부는 생긋 웃었다.
“그래도 이제 달라지셨습니다.”
“제가요?”
“네. 전에는 살짝 날이 서있더니.”
“아.”
존은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결국 이곳에 온 것이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굳이 저를 찾아오신 이유를 보니 노 신부님께 그분이 가신 이유와 같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 그럴 겁니다.”
존은 헛기침을 하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집을 왜 빼요?”
“그러니까.”
존의 말에 상유는 인상을 구겼다.
“네가 정기연 씨를 지켜야지.”
“어차피 지금은 네가 있는 거고. 그리고 내가 여기에 없어도 네가 어디에서라도 지켜보는 거 아니야?”
“그건.”
존의 말에 상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 자신이 신이 되고 있는 거라면 그게 가능할 거였다.
“내가 생각을 할 때. 내가 그래도 정기연 씨를 돕기 위해서 그 근처를 맴돌기 위해서는 신의 가호가 있어야 해.”
“그게 성당이다?”
“그렇지.”
존은 아랫입술을 살짝 물고 눈을 눌렀다. 존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너무 불안했다. 조금이라도 존이 기연에게서 멀어진다면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생겨나서 기연이 사라질 거 같았다.
“그러니까.”
“나는 괜찮아요.”
기연은 스스로의 가슴께를 가볍게 두드리며 씩 웃었다.
“나 하나는 지켜.”
“그렇습니까?”
“당연하죠.”
상유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도 뭔가 모를 불안함이 자꾸만 들었다. 하지만 이걸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기연이 스스로를 믿는 이 순간. 자신도 기연을 믿어주는 것이 우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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