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소년 개구리 왕자가 되다.
“누구라도 그렇겠네.”
원희의 말에 창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형도 아직 대학생인데 여자 친구가 취업을 하고 나니까 헤어지더라고. 그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야.”
“아무래도 서로 같이 있어야 하는 공간이 달라지면 멀어지는 게 당연한 거기는 한데. 그게 복잡해.”
원희는 어색하게 웃었다.
“아무튼 미안해.”
“뭐가?”
“네 이름 기억을 못 해서.”
“됐어.”
원희가 다시 사과를 하자 창현은 손을 흔들었다.
“내가 제대로 소개를 한 것도 아니었고. 사실 네가 내 이름을 부를 일도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늘 너랑 시간을 보냈으니까 그건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내가 무조건 잘못한 거야. 이건.”
“당연하지.”
창현은 손가락을 튕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커피라도 사.”
“알았어.”
원희는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힘든 일은 없어?”
‘없어.’
아정의 대답에 원희는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하고 있었지만 할 말도 딱히 없는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매일 온다고 그렇게 말을 해놓고서 왜 오늘은 안 왔어? 나 그래도 네 얼굴을 보고 싶었는데.’
“미안.”
‘힘들지?’
“약간.”
‘미안.’
아정의 사과에 원희는 작게 웃었다.
“왜 사과를 해.”
‘너 공부하는 거 안 그래도 힘든데. 내가 자꾸만 투정을 부리는 거 같아서. 네가 힘든 게 더 클 텐데.’
“그런 게 어디에 있어? 너는 네 자리에서 힘이 드는 거고. 나는 내 자리에서 힘이 든 건데. 지금 내가 보고 싶으면 가?”
‘아니.’
아정은 바로 대답했다.
‘지금이라도 공부해.’
“왜?”
‘너 혹시라도 재수가 없어서 3수라도 하게 되면. 나 너 군대 다녀오고 그러면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 상상도 하기 싫어.’
“그런 것까지 생각을 하는 거야?”
‘당연하지.’
아정의 대답에 원희는 밝게 웃었다. 기분이 좋았다. 아정이 힘든 모든 일을 자신이 없애줄 수 있기를 바랐다.
“나는 언제라도 여기에 있으니까 나를 믿어줬으면 좋겠어. 나를 믿고 조금 더 많은 것들을 말해줬으면 좋겠어.”
‘정말 힘들면 말할게.’
“응. 알았어.”
원희는 별다른 말을 더 하지 않았다.
‘그럼 나는 잘게.’
“응. 잘 자. 사랑해.”
‘나도 사랑해.’
원희는 전화를 끊고 짧은 한숨을 토해냈다. 아정의 모든 것을 다 알면서 말을 할 수 없다는 게 너무 불편했다.
“너 촬영장에서 아르바이트 안 할래?”
“아르바이트?”
서정의 물음에 아정은 고개를 저었다.
“싫어.”
“뭔지도 안 듣고.”
“뭔지 들으면? 그게 좋은 거면 오빠 네가 나에게 하라고 할 리가 있어? 그러니까 나는 안 할 거야.”
“그러지 말고.”
서정은 입술을 내밀고 아정의 옆에 앉았다.
“보조 연기자.”
“연기자?”
아정은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서정과 달랐다. 그런 식으로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고 싶지 않았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내가 다 알고 있는데 내가 보조 연기자를 할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야? 대기 시간은 그거 얼마나 길고. 사람 제대로 나오지도 않고. 오빠한테 한 번 당했으면 된 거야.”
“그건.”
서정은 혀로 입술을 축이고 어깨를 으쓱했다. 전에 자신도 보조였을 때 아정을 데리고 갔다가 겪은 거였다.
“지금은 내가 다르잖아.”
“뭐가?”
“주연 배우.”
서정이 브이를 그리면서 말해도 아정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나는 싫어.”
“왜?”
“귀찮아.”
“원희도 부르고.”
“어?”
갑자기 서정의 입에서 원희가 나오자 아정은 미간을 모았다.
“오빠 뭐야?”
“뭐가?”
“내 일에 신경을 쓰지 마.”
“아니.”
“됐어.”
아정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서정이 고마웠지만 더 이상 자신에게 신경을 쓰지 않기를 바랐다.
“오빠도 이제 나를 두고 오빠의 인생을 살아. 오빠. 나 이제 스무 살이야. 성인이라고요. 성인. 그러니까 오빠는 자기 인생을 조금 더 살아도 괜찮아. 언제까지 나를 챙기려고 하는 건데?”
“계속?”
아정은 한숨을 토해내며 검지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그리고 물끄러미 서정을 보며 입을 내밀었다.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오빠가 걱정하는 그런 일 없을 거야. 그러니까 괜히 오지랖 부리지 마. 오빠가 그러는 거. 나 오히려 부담스럽게 생각을 하니까. 오빠가 아무리 내 오빠라고 하더라도. 나는 오빠의 인생을 망치고 싶지 않아. 나는 오빠를 위해서 그러고 싶지 않아.”
“네가 왜 내 인생을 망쳐?”
“그냥.”
아정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난 후 이리저리 목을 풀고 서정을 보고 돌아섰다.
“도대체.”
서정은 기다란 검지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제가 왜 저래.”
서정은 입술을 쭉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같이 과제 하자.”
“됐어요.”
도서관에 가려는 아정을 쫓던 희건은 잠시 멈칫했다. 그러다가 이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아정의 옆에 섰다.
“너무 그러지 마.”
“왜 그러세요?”
“어? 뭐가?”
“아니 도대체 제가 뭐라고. 이러시는 건데요. 이거 되게 무섭고 불쾌하고 그래요. 낯선 남자가 이런 식으로 자꾸 쫓아오는 거. 여성에게는 겁이 날 수 있는 일이라는 거. 그거 모르세요?”
“응. 몰라.”
희건의 간단한 말에 아정은 미간을 모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멈춰 서서 물끄러미 희건을 응시하며 고개를 저었다.
“더는 그러지 마세요.”
“윤아정.”
아정이 그대로 가자 희건은 아정의 손을 잡았다. 아정은 그 손을 내려놓고 고개를 흔들었다.
“왜 그래요?”
“너는 왜 그래?”
“뭐라고요?”
“혼자 살아?”
“네. 혼자 살아요.”
“무슨.”
희건의 당황한 반응에 아정은 그저 여유로운 표정을 지을 따름이었다. 아정은 가만히 희건을 응시했다.
“남자라서 여성을 구해줘야 한다고. 구원해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을 하는. 그런 사람은 아닌 거죠?”
“지금 그런 게 아니라.”
희건은 혀로 입술을 축이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가여워서 그래.”
“제가요?”
“그래.”
“제가 왜요?”
아정은 당당히 받아쳤다.
“그 이상한 인간들이 저를 따돌리려고 해서요? 저 그런 거에 대해서는 아무렇지도 않거든요. 제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제가 무슨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제가 왜 불안해야 하는 건데요?”
“사람이라는 게 원래 혼자서 살 수가 없는 거니까. 누군가가 있어야 하는 거니까. 그게 당연한 거니까.”
희건의 말을 가만히 듣던 아정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은 이미 그런 시간을 다 지난 이후였다.
“그런 것에 대해서 걱정을 했다면 진작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했을 거야. 그 안에 들어가려고 했을 거죠.”
“4년은 길어.”
“알아요.”
아정은 가방을 더욱 꽉 잡았다.
“그래서 버티려고요.”
“뭐?”
“저 같은 애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거. 그쪽이 무슨 말을 하고 자꾸만 밀어내려고 한다고 해서 밀리지 않을 거라는 거. 그쪽이 무슨 짓을 해도 넘어지지 않는다는 거. 그런 거 보여주려고 해요.”
“네가 무슨 청춘 만화의 여주인공인 줄 알아?”
“주인공이죠.”
아정은 야무지게 그 말을 받았다.
“여주인공이 아니라.”
“뭐라고? 그건 또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요.”
희건이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자 아정은 더 밝은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서 선배랑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없는 거예요. 선배는 지금 제가 하는 말을 이해를 못 하잖아요.”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 네가 이해를 하지 못하게 말을 하는 거잖아.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을 해야 하는 거지.”
“아뇨.”
아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야.”
아정이 그대로 멀어지자 희건은 아랫입술을 물었다.
“저거 뭐야?”
희정은 한숨을 토해내면서도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미쳤나봐.”
아정은 화장실로 들어와서 한숨을 토해냈다. 혹시라도 희건이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나마 좋은 사람이었나?”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우스웠다. 아정은 전화기를 들어서 무심결에 원희의 번호를 누르다가 손을 내렸다.
“공부.”
다른 곳에 있었다.
“싫다.”
원희를 원망해야 하는 일은 아니었다. 원희는 오히려 그와 같이 있고 싶어서 공부를 계속하는 중이었다.
“내가 너무 이기적이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저 원희만을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원희였다. 이런 순간에 대해서 말을 하고 싶은 것도 원희였고, 지치고 힘들다고 말하고 싶은 상대도 원희였다. 하지만 원희는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함부로 연락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전화를 하고 싶었다. 아정은 겨우 문자만 하나 남기고 전화를 가방에 던지듯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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