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소년과 소녀와 청년
“여기에서 뭐해?”
“너 기다려.”
원희는 아정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정이 학원 1층까지 와서 자신을 기다릴 줄 몰랐다.
“학교는?”
“끝났어.”
아정은 가방을 두드리며 씩 웃었다.
“밥 먹자.”
“어?”
“밥은 먹을 거 아냐.”
“아니.”
원희는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물끄러미 아정을 응시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잠시 시간 갖는 거잖아.”
“미안해.”
아정은 재빨리 사과의 말을 건넸다.
“내가 잘못했어.”
“윤아정.”
“나 혼자서 다 하려고 한 거였어. 그런데 혼자서 할 수 없으니까. 혼자서 다 하려고 하는데 지치고 힘드니까 너에게 투정을 한 거야. 이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나도 모르게 이렇게 되어버렸어.”
아정의 고백에 원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가슴이 무거웠다. 뭘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너랑 내가 먼 거 같아.”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
“아니야.”
아정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 원희와 멀어질 수 없었다. 멀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네가 무슨 말을 하건 나는 싫어. 나는 네가 좋아. 이대로 우리 두 사람 사이를 끝을 내고 싶지 않아.”
“나는 너에게 지금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해. 내가 너를 위해서 할 수 없는 거 알잖아. 나는 지금 여기에서 재수생으로 공부를 해야하고. 너는 학교에서 모든 일을 혼자서 다 감내해야 해.”
“네가 위로해주면 되잖아.”
“아니.”
원희는 짧게 여러 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아정의 눈을 보며 엷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가볍게 발로 땅을 끌다가 한숨을 토해내고 다시 물끄러미 아정의 눈을 응시했다.
“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
“누구?”
순간 아정의 얼굴이 굳었다.
“오해라고.”
“오해 아니야.”
“이원희.”
아정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물끄러미 원희를 보다가 머리를 뒤로 넘기고 한숨을 토해냈다.
“너 진심도 아닌 말을 왜 자꾸 하는 거야? 내가 정말로 그 사람에게 가면 싫어할 거면서 왜 그래?”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 사람은 너랑 과도 같은 사람이고. 네가 힘들어하고 있을 때. 네가 과에 적응을 하지 못할 때. 그 모든 것을 다 도와줄 수 있잖아.”
“아니.”
아정은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희건이 아무리 자신과 가까이 있다고 해도 그런 사람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다.
“그 사람은 모든 것이 다 장난 같은 사람이야. 그리고 나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을 거야.”
“싫어.”
“뭐가?”
“이런 거.”
원희는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보잘 것 없잖아.”
“누가?”
“나.”
“아니야.”
“아니.”
원희는 가볍게 고개를 흔들고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아정이 자신을 위로한다고 해도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착각하고 있었어. 우리가 같은 교복을 입고 있다고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이라고 말이야.”
“뭐가 다른데?”
“나는 지금도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해야 해.”
“뭐?”
“너는 공부만 하잖아.”
“아니.”
아정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원희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고등학교 시절 다 끝이 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인 건지. 아정은 입술을 꾹 다물고 주먹을 살짝 쥐었다가 폈다.
“진심이야?”
“진심이야.”
“네가 지금 나를 밀어내면 나는 너를 잡지 않을 거야. 나도 자존심이 있고. 힘들어서 안 그럴 거야.”
“알아.”
원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정의 눈을 응시하면서 엷은 미소를 짓고 고개를 저었다.
“나도 다 알고 있는데 지금 너에게 가라고 하는 거야. 너를 좋아하니까.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아니까.”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데? 나를 좋아해서 그냥 헤어지려고 한다는 게 말이 된다는 거야?”
“응.”
아정은 물끄러미 원희를 응시했다.
“후회할 거야.”
“알아.”
“안다고?”
“응.”
“이원희.”
“왜?”
“아니.”
아정은 머리를 뒤로 넘기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원희의 눈을 응시했다.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 거야? 나 너무 힘들어. 안 그래도 학교에서 나를 따돌려서 너무 힘들다고. 그런데 그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아. 그래서 너에게 이렇게 기대려고 오는데 왜 이래?”
“내가 뭘 해줄 수가 있는데?”
“뭐?”
아정의 눈이 순간 멈췄다. 아정은 침을 꿀꺽 삼키고 멍하니 원희를 응시하다가 한숨을 토해냈다.
“도대체 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나는 여기에서 공부나 하고 있고. 너는 거기에 있고. 우리는 다르잖아.”
“안 달라.”
“달라.”
원희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안해.”
“뭐가 미안한 건데?”
“더 이상 너에게 뭔가를 해줄 수가 없어서. 더 이상 내가 너에게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라서.”
“아니야. 아니라고. 지금 내가 너에게 도움을 청하고. 지금 나를 잡아달라고 하는 거잖아. 나 지금 너무 힘드니까. 지금 내가 너무 지쳐있으니까 내 손을 잡아달라고. 이 말을 하는 거잖아.”
아정의 고백에 원희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그리고 잠시 더 아정을 보다가 그대로 돌아섰다.
“너 그대로 가면 다시 안 볼 거야!”
아정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원희는 다시 뒤를 보지 않았다. 아정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멀어지는 원희를 응시했다.
“너 왜 그랬어?”
“모르겠어.”
지석의 물음에 원희는 어색하게 웃었다.
“한심하지?”
“응.”
“그러게.”
원희는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아직 공부하고 있으니까. 내가 걔 옆에 있기엔 너무 부족하잖아. 너무 가진 게 없는 사람이잖아.”
“윤아정 네가 뭘 가지고 있어서 좋아한 거 아니잖아. 그냥 이원희라는 사람 자체를 좋아한 거 아니야? 그런데 왜 이렇게 약하게 구는 건데? 네가 그러면 아정이가 더 힘들어하는 거 몰라?”
“알지.”
원희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소주를 한 잔 마시고 크으으 하는 소리를 내며 몸을 가볍게 떨었다.
“이런 걸 왜 마셔?”
“그러게.”
지석은 콜라를 마시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도 싫어.”
“술 많이 마셔?”
“응.”
“가기 싫다.”
“그러니까.”
지석은 이렇게 대꾸를 하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물끄러미 원희의 눈을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자존심이 상한 거야?”
“응.”
“왜?”
“그냥.”
원희는 짧게 한숨을 토해냈다. 그 차를 보는 순간 자신과 아정의 세계가 얼마나 분리가 되어 있는지. 그게 느껴졌다. 자신과 아정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다시 느꼈다.
“학교 다닐 때. 모두 교복을 입고 있어서 몰랐던 거. 그걸 교복을 벗으니까 알게 되더라고. 그게 보이더라고.”
“다른 건 하나도 없는데 원희 너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 아정이도 그렇게 말한 적 없잖아. 그런데 왜 너 혼자서 그런 생각을 하면서 힘들어 해. 네가 그러면 아정이도 힘들다는 거 알잖아.”
“알지.”
원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느끼는 것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었다.
“아정이도 이미 알고 있어.”
“뭘 알아?”
“처음부터 나에게 말을 하지는 않았거든.”
“그거야 당연하지.”
지석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걔 자존심 강하잖아.”
“자존심?”
“그래.
지석은 안경을 만지며 한숨을 토해냈다.
“안 그래도 힘든 애야. 그 학교 걔네 아버지가 이사장인 학교라서 그거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어?”
지석의 말에 원희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몰랐어?”
“응.”
“하여간 이원희.”
“아니.”
원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아정이 자신에게 말해주지 않았는데 이런 것까지 다 알 수는 없었다.
“내가 어떻게 알아?”
“알려고는 했어?”
“그게.”
“너 아정이 말도 안 들었지?”
“응.”
원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정이 자신에게 말하려고 했던 것들. 결국 이런 것들일 거였다.
“사과해.”
“싫어.”
“왜?”
“어차피 헤어질 거야.”
“이원희.”
“내가 알아.”
원희의 대답에 지석은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다가 술을 마셨다. 원희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술을 마시고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다시 술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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