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소년의 시간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냐?”
“공부에 너무 열심히가 있나?”
“뭐. 그런 건 없지만.”
창현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뭔가 경쟁심리 같은 게 생겨서.”
“그럼 좋은 거지.”
“그러게.”
원희의 대답에 창현은 고개를 저었다. 원희도 엷은 미소를 지으며 문제 풀이에 열중했다. 이게 우선이었다.
“공부는 잘 하고 있어?”
“네.”
아정의 간단한 대답에도 희건은 씩 웃었다.
“같이 하자.”
“아니요.”
아정은 고개를 저었다. 희건은 아정에게 음료수를 내려놓고 옆에 앉았다. 아정은 미간을 모았다.
“뭐하는 거예요?”
“같이 공부하려고.”
“아니.”
“여기 혼성이야. 그리고 누구라도 앉을 수 있는 곳 아닌가?”
“다른 곳에 가면.”
아정은 그렇게 말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시험 기간이라서 빈자리가 없었다. 아정은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싱거워.”
“그럼 소금 좀 챙겨야 하나?”
아정은 그대로 외면했다. 희건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아니 나란히 앉았고, 아는 사이인데 밥 정도는 같이 먹어도 되는 거 아니야? 왜 이렇게 혼자 나오고 그래?”
희건이 자신을 쫓아오자 아정은 인상을 구겼다.
“왜 이러세요?”
“어?”
아정의 반응에 희건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아니.”
아정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이런 거 불편해요.”
“나는 아닌데?”
“뭐라고요?”
아정은 코웃음을 치고 허리에 손을 얹었다.
“저기요. 선배님.”
“오호. 그래.”
희건은 검지를 들고 씩 웃었다.
“그렇게 불러야지.”
“저는 그쪽이랑 엮이고 싶지 않아요. 제 오빠랑 아는 사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 말도 안 되는 부탁을 한 것도 알고 있어요. 그래도 이건 아니죠. 저는 어울리고 싶지도 않고 말을 섞고 싶지도 않아요.”
“나는 그러고 싶어.”
“저기.”
희건은 어깨를 으쓱하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하고 벽에 기대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정이 부탁 때문 아니야.”
“아니라고요?”
“응. 나 그 녀석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 그 녀석이 아무리 부탁을 해도 내가 내키지 않았다면 안 했을 거야.”
“거짓말.”
“정말.”
아정은 심호흡을 했다.
“사이가 안 좋다고요?”
“응.”
희건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정은 머리를 뒤로 넘기고 물끄러미 희건을 보다가 한숨을 토해냈다.
“그럼 더 이러지 마세요.”
“어?”
“오빠 부탁도 아닌데 왜요?”
“네가 가여워서.”
“뭐라고요?”
아정은 어이가 없어 반문했다.
“도대체 무슨?”
“너 가엽다고.”
“이봐요.”
“뭐가?”
희건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네가 지금 내 알량한 도움도 받지 못하는 거. 그거 네가 가여워서 그러는 거야. 네가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해서. 다른 사람의 순수한 도움 같은 것을 인정하지 못해서 지금 그러는 거라고.”
“아니요.”
아정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 사람이 멋대로 자신을 판단하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를 알아요?”
“알지.”
“어떻게요?”
“윤서정을 아니까.”
아정은 순간 숨이 헉 하고 막히는 기분이었다. 아정은 싸늘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 오빠를 안다고 해서 다 아는 건 아니죠. 내가 오빠가 아닌 걸? 그러니까 그건 말도 안 돼.”
“방금 그 표정 뭐야?”
“됐어요.”
아정은 그대로 멀어졌다. 희건은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재미있어.”
희건은 아랫입술을 살짝 물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너 살이 빠지는 거 같아.”
“그럼 좋은 거지?”
“걱정이 되니까 그러지.”
지석의 말에 원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괜찮긴.”
“괜찮아. 정말.”
“이원희.”
“진짜.”
지석이 자신의 이름을 한 번 더 부르자 원희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석은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아정이랑 어떻게 할 건데?”
“뭘?”
“끝이야?”
“응.”
원희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끝난 거야.”
“그게 무슨?”
“말했잖아. 나랑 어울리지 않는다고. 아정이와 내가 어울리지 않는 거. 진작 알고 있으면서 외면했어.”
“그게 무슨 말이야?”
지석은 가만히 원희를 응시했다.
“그러지 마. 너희 두 사람 정말로 잘 어울려. 나는 처음부터 너희 둘이 잘 되기를 바랐다고. 그렇게 잘 어울리는데. 그렇게 두 사람이 행복하게 보였는데.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 이상하잖아.”
“하나도 이상하지 않아.”
원희는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살짝 웃었다.
“애초에 다른 사람들이었어. 나랑 아정이는. 아정이가 집에 돈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잖아. 나는 아니야.”
“그저 돈만 가지고 사람을 평가할 수 없는 거잖아. 아정이가 그런 애가 아니라는 거 알고 있잖아.”
“알아.”
원희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석을 보면서 입술을 살짝 내밀고 고개를 흔든 후 자신의 머리를 헝클었다. 복잡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모든 건 분명했다. 부정할 수 없었다.
“내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어. 도대체 왜 이 간단한 것을 모르고 있던 건지. 내가 애써 외면하려고 했던 건지는 모르겠는데 말이야. 내가 그렇지 않다는 건 알겠더라고.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거. 내가 할 수 있는 것 가지고 있는 것. 아무 것도 없어.”
“왜 없어?”
지석은 가슴을 두드리며 고개를 저었다. 원희는 몸을 뒤로 기대고 눈을 감았다.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지석과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조금 더 분명하고 바른 선택을 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정이를 위한 거야.”
“아니.”
지석은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왜?”
“윤아정은 네가 필요해.”
“내가?”
원희는 자신을 가리키며 미간을 찌푸렸다.
“왜?”
“왜라니?”
지석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물끄러미 원희를 보면서 머리를 살짝 긁적였다.
“왜 이래? 너 지금 자존감이 떨어져서 그래. 지금 공부하느라고. 그래. 그래서 그런 거야. 너 지금.”
“아니.”
원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니야.”
“뭐가 아닌데?”
“처음부터 느꼈어.”
“뭘?”
“나랑 윤아정.”
“아니.”
지석은 머리를 뒤로 넘기고 한숨을 토해냈다. 도대체 원희가 왜 자꾸 같은 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정은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고. 원희 역시 모든 걸 알고 사귀는 거였다.
“지금 윤아정이 학교에서 얼마나 힘든지 들었잖아. 다들 윤아정을 따돌리려고 하는 거 알잖아.”
“알지.”
원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더더욱 아정을 멀리해야 하는 거였다. 아정 옆에는 꽤나 번듯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라면 아정을 덜 힘들게 할 거라는 확신 같은 게 있었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뭐든.”
“아니.”
원희는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나 취업도 못할 거야.”
“뭐?”
지석은 혀를 살짝 내어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멀쩡한 사람들도 취업을 못하는 상황이야. 그런데 축구 선수를 하던 내가 대학에 간다고 뭐가 달라질 거 같아?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뭐가 더 장미처럼 화려하게 될 수 있을 거 같아?”
“아무도 모르지.”
“정말 몰라?”
원희가 다시 한 번 채근하자 지석은 침을 꿀꺽 삼켰다. 원희는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고 조금 더 분명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알았어.”
“원희야.”
“정말.”
“아니.”
“그만.”
지석이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자 원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이미 분명한 마음을 움직이는 것도 이상한 거였고. 자신은 모든 걸 포기해야만 하는 거였다.
“고마워.”
“고맙다니.”
원희의 대답에 지석은 한숨을 토해내며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원희는 시간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학원 갈게.”
“밥 좀 제대로 챙기고.”
“응.”
지석의 말에 원희는 가볍게 손을 들었다.
“고맙다. 시간 내줘서.”
“아니. 이 정도를 가지고 뭐.”
지석은 가볍게 원희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면서도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없어서 마음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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