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장. 철이 든 소녀
“너무 미워하지 마.”
“알아.”
지수의 말에 아정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정은 그저 자신을 위한 행동을 한 거였다.
“도대체 오빠는 왜 그러는 걸까?”
“너를 좋아하니까.”
“그럴 이유 없는데.”
“왜?”
“아니.”
아정은 혀를 살짝 내밀었다. 서정은 늘 자신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내미는 사람이었다. 그런 것은 싫었다. 더 이상 서정이 자신으로 인해서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힘든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나 오빠에게 이러 것을 부탁할 자격도 없는 사람이야. 나로 인해서 엄마랑 아빠가 이혼을 한 거였으니까.”
“어?”
“아빠가 다르거든.”
지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무슨?”
“미안.”
아정은 어색하게 웃었다.
“너에게도 말을 하기가 부끄러워서 말을 하지 못했어.”
“아니 그게 아니라.”
지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굳이 아정이 말을 해줄 이유도 없었다.
“괜찮아.”
“거짓말.”
“어?”
“안 괜찮잖아.”
“정말 괜찮아.”
지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물끄러미 아정의 눈을 보면서 엷은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어?”
“이제라도 말해줘서.”
“아니.”
아정은 혀를 내밀었다.
“그게 뭐야?”
“계속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
“그건 아닌 거 같았어.”
아정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더 이상 지수에게 숨겨서는 안 되는 거였다. 말을 해야만 했다.
“네가 내 친구인데 이러면 안 되는 거였어.”
“에이. 그런 게 어디에 있어?”
“있지.”
아정은 심호흡을 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사람들은 엄마가 바람을 피워서 지금 이사장님하고 사귀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야. 바람이 나서 나를 나았어.”
“바람?”
“응. 우리 아빠가 조명 감독이었어. 그런데 두 사람이 뭐 하기도 전에 그냥 죽었다고 하더라고.”
지수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아정은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고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물론 이사장 아버지는 괜찮다고 했어. 여전히 엄마를 사랑하고 있다고. 엄마만 괜찮으면 오라고. 그런데 엄마가 안 괜찮다고 하더라고. 그럴 수가 없지. 엄마는 그래도 미안함을 아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혼자서 나를 감당하기로 했어. 그리고 서정 오빠를 그 사람에게 줬어. 이사장 아버지는 그렇게 하자고 했지. 그리고 크고 나서 서정 오빠가 나에게 왔어. 스무 살이 되자마자. 자신이 책임을 진다고. 자신이 도대체 왜 그래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런다면서 말이야. 엄마는 나를 낳고 나서 한 번도 나를 신경도 쓴 적이 없어. 나를 보면 그 아빠가 생각이 난대. 그래서 서정 오빠가 죄책감? 같은 걸 갖는 건 아는데. 그럴 게 아니잖아. 오히려 오빠에게서 엄마를 앗아간 건 나야. 내가 그랬는데. 나 때문에 그 모든 게 다 일어난 건데 왜 그러는 건지 모르겠어.”
“네 탓이 아니야.”
아정이 눈물을 흘리자 지수는 아정의 손을 꼭 잡았다.
“네 탓이 아니야.”
“그래도 나 때문 같아.”
“아니.”
지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절대.”
“나오지 말라뇨?”
“유나라 학생이 불편하게 생각하더군요.”
원장의 말에 원희는 미간을 모았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학생이 유나라 학생에게 추파를 던지고 나서 이상한 짓을 했다고. 그 학생이 불편하다고 하더군요.”
“제가 그랬다고요?”
“네.”
원희는 침을 삼키고 고개를 저었다.
“소명의 기회가 있습니까?”
“소명을 해야 합니까?”
“네.”
“뭐가 문제입니까?”
“그런 적 없습니다.”
원희의 덤덤한 말에 원장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물끄러미 원희를 빤히 쳐다봤다.
“그 학생이 우리에게 중요해요.”
“그렇습니까?”
“아버지가 대단해요.”
“그렇군요.”
원희는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싫습니다.”
“네?”
“그래도 싫습니다.”
원희의 대답에 원장은 얼굴을 구겼다. 원희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무조건 그 뜻을 따라야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 이렇게 고집을 부린다고 해서 다 되는 게 아니에요. 고집을 부려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고집이 아닙니다.”
원희는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기에서 쉽게 망설일 수도 없었고. 망설여서도 안 되는 거였다.
“제가 잘못한 게 없는데 여기에서 네. 라고 하면 그걸 인정하고 물러나는 꼴이 되는 거잖아요.”
“그러다가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어요. 이거 경찰이 개입할 수 있는 문제가 될 수도 있어요.”
“불러주세요.”
“뭐라고요?”
“경찰 불러주세요.”
원희의 대답에 원장은 이마의 땀을 훔쳤다.
“이봐요.”
“저는 공부하러 가야 합니다.”
“이원희 학생!”
원장은 원희를 다급히 불렀다.
“그러지 마요.”
“뭘 말입니까?”
“알고 있잖아요.”
“아뇨.”
원희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이렇게 밀려날 수 없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제가 오해를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었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닌 상황에서는 제가 물러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럴 수 없어요. 경찰 부르겠습니다.”
“일단 지켜보죠.”
원장의 말에 원희는 고개를 숙였다.
“그게 말이 돼?”
“왜?”
“미친.”
창현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거 또라이야.”
“뭐.”
원희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 수도 있지.”
“뭐라고?”
“됐어.”
원희의 반응에 창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게 말이 돼?”
“왜 안 돼?”
“아니 그걸 어떻게 그냥 넘어가? 걔가 지금 너를 무슨 취급을 한 건데? 너 그래도 넘어가도 돼?”
“응.”
원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경찰을 부르라는 이야기도 더 귀찮은 일을 하기 싫다는 거였다. 그런 귀찮은 일 자체가 내키지 않고 원하지 않는 일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녀석하고 더 엮이게 되는 거야. 나는 그런 사람하고 전혀 엮이고 싶지 않으니까 말을 할 것도 없어.”
“그래도.”
창현은 무슨 말을 더 하려다가 입을 내밀었다. 원희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어디에서 지내는 거야?”
교문을 들어가던 아정이 걸음을 멈췄다.
“윤아정.”
“여기에는 왜 왔어?”
“어디에서 지내?”
서정의 말에 아정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주위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아정은 인상을 구겼다.
“그냥 가.”
“어디를 가?”
“오빠랑 무슨 상관이야?”
“뭐?”
아정의 말에 서정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지금 여기에 오빠가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다 나를 주목해.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 그냥 가.”
“윤아정.”
“제발.”
아정의 짧은 부탁에 서정은 침을 삼켰다. 아정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머리를 뒤로 넘겼다.
“나는 오빠가 더 이상 내 인생에 들어오지 않기를 바라. 오빠를 위해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
“뭐?”
“나를 위하는 거 아니잖아.”
“아니.”
“오빠 마음 편하려고 하는 거잖아.”
아정의 말에 서정은 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의 표정이 굳어 아정은 마음이 무거웠지만 당연히 해야 하는 거였다.
“오빠도 이제 제발 오빠 인생을 살아. 더 이상 나를 위해서 가짜 인생을 살아주지 말고. 그럴 이유 없잖아. 나를 위해서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 내가 뭐라고? 내가 도대체 뭐라고 이러는 건데?”
“동생이니까.”
“엄마만 같잖아.”
“그래도.”
“아니.”
아정은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이 사람들 보여?”
“보여.”
“오빠 인생을 망칠 사람들이야.”
아정의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게 뭐?”
“뭐라고?”
“너는 내 동생이야.”
“반쪽.”
“그래도 동생이야.”
서정이 힘을 주어 말하자 아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서정을 지나쳤다. 더 이상 대화를 할 것도 없었다.
“윤아정!”
뒤에서 서정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서정을 위해서라도 이렇게 모질게 대하는 것이 분명했다. 서정은 이미 너무나도 오랜 시간 자신의 인생을 포기했다. 이제 자신도 어른이 된 순간, 더 이상 서정이 자신을 위해서 뭔가를 포기하게 만들어서는 안 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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