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장. 미안함
“아닐 수도 있잖아.”
“없대.”
“어?”
아정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 사람 엄마랑 혈액형이 같았대. 그러니까 네 아빠라고 내 아버지가 오해를 하던 그 사람 말이야.”
“아.”
서정의 말에 아정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도 간단한 일이었다. 이렇게도 간단한 일을 도대체 왜 그 오랜 시간 그냥 둔 채로 자신을 가엽게 여기고 부정하게 만들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뭐가?”
“어떻게 하자는 건데?”
“그러게.”
서정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 역시 지금 이 상황에서 마땅한 해결책 같은 것을 갖고 있지 않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무도 모르게 할 거야.”
“됐어.”
아정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미 자신은 밖에서 낳은 아이였다. 이것보다 더 아픈 이야기는 없었다.
“싫다.”
“아정아.”
“나는 그 사람이 싫어.”
아정의 말에 서정은 고개를 푹 숙였다. 태훈이 자신의 아버지인 이상 자신은 사과를 해야만 하는 거였다.
“정말.”
“그래.”
“정말 미워.”
“응.”
서정의 대답에 아정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도 눈물이 툭 하고 떨어졌다. 머리가 살짝 울렸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니?”
“그러게.”
“평생 나를 미워한 사람이야? 나로 인해서 오빠의 삶이 망가진다고 한 사람이야. 네 살이었어. 내가 네 살. 그 어린 아이에게. 그 어린 여자 아이에게. 그 사람은 그런 말을 했어. 너는 내 아들을 망칠 아이다.”
“그래.”
서정은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도 들었던 말이었다. 자신도 이미 아정이 그 말을 들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미안해.”
“왜 네가 사과를 해?”
“그러게.”
아정은 서정의 미소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서정을 원망할 수는 없었다.
“고마워.”
“뭐가?”
“늘 곁에 있어줘서.”
“당연한 거야.”
서정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정은 그런 그를 물끄러미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 당연한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여간.”
“죄송해요.”
아정의 사과에 은수는 그대로 아정을 꼭 안았다.
“걱정이나 시키고 말이야.”
“고마워요.”
아정은 밝은 미소를 지었다. 은수가 이렇게 자신을 반갑게 맞아줄 거라고 생각을 하지 않아서 고마웠다.
“고마워요.”
“고맙긴. 당연한 거지.”
우리의 인사에 은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저 여기에 있어도 돼요?”
“어?”
“이 방.”
“당연하지.”
은수는 걱정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혹시라도 나가라고 할까. 그것이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ᄋᅠᆻ다.
“네가 있어야 나도 마음이 편해.”
“네?”
“나 혼자 자는 거 무서워.”
“정말로요?”
“그럼.”
아정은 혀를 내밀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고마운 사람이었다. 이렇게 좋은 사람을 만난 것이 너무나도 다행이었다.
“고마워.”
“아니요.”
서정의 인사에 원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건 자신이 고맙다는 말을 들을 일이 아니었다.
“형이 부탁을 하지 않았더라도, 당연히 다시 기숙사에 들어가라고 했을 거예요. 그게 가장 쉬운 해결이니까.”
“그렇지.”
서정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정이 유난히 야윈 것 같아서 원희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응시했다.
“형은 좀 괜찮아요?”
“어?”
“마른 거 같아.”
“뭐. 좋지.”
서정은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이리저리 풀었다.
“배우니까 그렇구나.”
“어?”
원희의 말에 서정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이야?”
“네?”
원희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요?”
“아니.”
“배우니까 그런 거요?”
“어? 어.”
잠시 잊고 있었던 것. 아정으로 인해서 지운 것. 미뤄둔 것. 그것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고마워.”
“네?”
서정은 원희에게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멀어졌다. 원희는 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여간 신기한 사람이라니까.”
그러면서도 대화를 하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원희는 미소를 지으며 커피를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사직서?”
“네.”
서정의 가벼운 대답에 태훈은 미간을 구겼다. 도대체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 것인지.
“이걸 왜 주는 거지?”
“아버지께서 아정이를 더 이상 쥐고 흔드실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이제 저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죠. 제가 여기에 있는 거. 아버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정이를 위한 거였으니까요.”
서정의 단호한 말에 태훈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누가 뭐라고 해도 서정은 자신의 아이가 분명했다.
“멍청하구나.”
“네.”
서정은 이를 드러내고 씩 웃었다. 무슨 말을 듣더라도 지금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하는 게 우선이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태훈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내가 어쩌면 아정이에게 무슨 짓을 더 할 수도 있다는 것. 그것 정도는 알아야지. 안 그러냐?”
“아니요.”
서정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태훈은 절대로 그러지 못할 거였다. 자신에게도 아정이라는 약점이 있다는 것을 알지 않았더라면 아무 것도 하지 못했을. 인연도 닿지 않았을 사람이 분명했다. 서정의 여유로운 대답에 태훈은 인상을 구겼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없었다. 이미 서정은 너무나도 완벽하게 자신을 파악하고 있었다. 아들이었따. 부정할 수 없을 만큼.
“후회를 할 거다.”
“네.”
서정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려고요.”
“미안해.”
“됐어.”
아정의 사과에 지수는 입을 쭉 내밀었다.
“아니 어떻게 너는 나보다 이원희가 먼저일 수가 있어? 아무리 두 사람이 연애를 한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
“왜?”
지석은 전을 먹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두 사람이 뭔데?”
“절친.”
“절친?”
지석은 젓가락으로 지수를 가리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수는 그런 지석의 발을 세게 밟았다.
“악. 미, 미쳤어.”
“미안.”
지수는 손을 들고 씩 웃었다.
“그래서?”
“어?”
“학교는?”
“그냥 기숙사.”
“기숙사?”
아정이라면 거기에서 나와도 될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아정의 결정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오히려 다른 곳에 있으면 그 사람이 더 관심을 갖고 나를 괴롭힐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럴 수도 있겠네.”
아정의 말에 지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정의 지금 상황은 그냥 보통의 상황과는 다른 거였으니까.
“그런데 얘는 왜 이렇게 안 와?”
“그러게.”
“늦는데.”
지석은 이제야 겨우 울상을 지으며 일어났다.
“이지수. 너 이거 폭행이야.”
“뭐가?”
“발.”
“나는 이미 사과를 했잖아.”
열심히 고기를 먹는 지수를 보며 지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정은 그런 둘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알았다.”
“고맙습니다.”
서정의 부탁에 미선은 미간을 모았다.
“그런데 그래도 되겠어?”
“네?”
“나는 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너를 배우가 하는 게 좋다고 말을 한 거지만. 사실 내가 엄마라는 입장에서 생각을 하면 네가 그 일을 하는 거. 그게 너를 위해서 더 나은 선택일 거야.”
미선의 말에 서정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더 나은 결정. 그건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다.
“제가 우리나라 최고의 배우가 될 수도 있는 건데. 그런 곳에서 그냥 시간을 보내면 안 되는 거죠.”
“아들.”
“어머니. 부탁이에요.”
서정의 간절한 대답에 미선은 한숨을 토해냈다. 이걸 가지고 자신은 태훈과 다시 부딪칠 수도 있었다.
“네 아버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
“네.”
이미 알고 있었다.
“정말.”
미선은 머리를 만지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아들이 자신과 같은 일을 한다는 것. 이것 자체가 즐거운 모양이었다.
“고맙습니다.”
“아니.”
서정의 인사에 미선은 손을 내저었다. 아들과 어느 정도 사이가 가까워지고 싶었지만 그건 요원한 일이었다. 결국 그건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니었다. 모든 건 시간이 허락을 해야만 가능한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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