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장. 두 번째 데이트
“미안해.”
“아니야.”
벚꽃은 이미 떨어지고 난지 한참이었다. 원희가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말하자 아정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왜?”
“더 빨리 왔어야 했는데.”
“아니.”
원희의 말에 아정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말도 안 되는 짓을 한 것은 원희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었다. 너무 많은 것들이 한 번에 다 있어서 생긴 모든 스트레스를 그에게 풀었다.
“너로 인해서 내 삶이 바뀌었다고 했잖아. 그래서 나도 너에게 어떤 좋은 의미이고 싶어. 그렇게 되고 싶어.”
“당연히 그랬어.”
아정은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아니었더라면 나 지금까지 아무 것도 하지 못했을 거야. 이렇게 견디는 거 못 했을 거야.”
“그건 아닐 거 같은데.”
원희는 어색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은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뭘 해준 게 있다고.”
“왜? 많지?”
“그냥.”
“너 잘 했어.”
아정은 원희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좋다.”
“그래?”
원희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고마워.”
“뭐가?”
“나랑 이렇게 같이 걸어줘서.”
“뭐래?”
아정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가만히 손을 흔들었다. 가벼운 바람이 좋았다.
“좋다.”
“이제 곧 여름이지?”
“싫어.”
아정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는 싫어.”
“왜?”
“여름 너무 싫잖아.”
아정의 말에 원희는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짧게 심호흡을 했다.
“힘들다.”
“어?”
“아니.”
원희의 말에 아정은 걸음을 멈췄다.
“미안.”
“아니.”
아정의 표정이 굳자 원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니야.”
“그래?”
“응.”
원희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겨우 잘 되려고 했는데 자신이 또 무슨 실수를 한 게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네가 하고 싶은 말 알아.”
아정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희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닐 거였다. 아정의 미소를 보며 원희도 어색하게 웃었다.
“나 참 한심해.”
“왜?”
“네 기분도 하나 모르고.”
“뭐래?”
아정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원희가 자신으로 인해서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싫었다.
“그냥 네가 그런 투정을 하는 것도 좋아. 모든 순간이 다 편하기만 하고 그럴 수는 없는 거잖아.”
“나는 그러고 싶어.”
“아니.”
원희의 말에 아정은 그의 얼굴을 보며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그게 문제였다.
“우리가 멀어진 거 그거 때문이야.”
“어?”
“무조건 괜찮아져야 한다는 거.”
“아니.”
“이원희.”
원희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자 아정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지 마.”
“어?”
“너 지금 충분히 잘 하고 있어. 나를 위해서 좋은 말들 해주고 있고. 너 지금 충분히 멋있다고.”
아정의 말에 원희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이 무거운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내가 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면 너에게 모든 것을 더 해줄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서 너에게 더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해서. 그래서 나는 무거워.”
“아니.”
아정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원희의 손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고마워.”
“어?”
“네가 있어서 돌아간 거야.”
“무슨.”
“정말.”
아정의 말에 원희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으로 인해서 달라진다는 아정의 말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그리고 공부는 더 물어봐.”
“갑자기 또 공부.”
원희는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게 뭐야?”
“너 위지석에게 묻는다며?”
“그거 말했어?”
“어.”
“하여간.”
원희는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차피 아정이 곧 알 거라고 생각을 했지만 이건 다른 거였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이면 좋겠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이야.”
원희는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라도 겨우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거였다. 이건 자신의 일이었다.
“축구만 했다면 이런 삶을 찾지 못했을 거야.”
“다시 하고 싶지는 않아?”
“응.”
원희는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도 없는 것이 바로 운동이었다. 모두가 다 라이벌이었고 그건 너무나도 힘들었다.
“동료라고 같이 훈련을 하는데 막상 경기가 되면 나는 그 아이들을 무조건 다 이겨야만 하는 거였어.”
“이겨야 한다고?”
“응. 적어도 공부는 모두 같은 목적을 향해서 나아가는 게 있더라고. 나는 그게 조금 더 나은 거 같고.”
“그렇지.”
운동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아정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희도 그런 아정을 보며 따라 웃었다.
“미안.”
“아니래도.”
창현의 사과에 원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안 그래도 창현이 자신으로 인해서 같이 학원을 관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는데, 이렇게 다시 학원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다행이었다.
“왜 네가 나 때문에.”
“친구니까.”
“그러니까.”
원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더 안 되는 거지.”
“왜?”
“애초에 너에게 부담이 되는 건 싫으니까?”
원희의 대답에 창현은 입술을 내밀었다.
“그게 뭐야?”
“그러게.”
원희는 어깨를 으쓱했다.
“고마워.”
“뭐가 고마워?”
“학원에 돌아가 줘서.”
“미쳤어.”
창현은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마음이 다소 놓인 모양이었다. 원희에게 미안하면서도 스스로를 위해서 뭐라도 해야 한다는 것. 이것 자체를 부정할 수 없는 게 사실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거였다.
“너는 어떻게 하려고?”
“일단 혼자서 더 하려고.”
“그거 힘들지 않아?”
“힘들지.”
원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재수생의 공부라는 것은 전혀 다른 공부였다. 특히나 같은 공부를 한 해를 더 한다는 것. 이것 자체가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것이고 사람을 힘들게 하는 거였다.
“너도 학원을 다녀.”
“모르겠어.”
“왜?”
“마음이 안 편해서.”
“그래도.”
“나 잘 하고 있어.”
창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희도 이리저리 목을 풀면서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아들 괜찮아?”
“아. 네.”
엄마의 물음에 원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요?”
“너무 집에 있는 거 같아서.”
“아.”
밖에 나가면 하다 못해서 밥이라도 사먹는 돈. 그게 아까웠다. 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이제 아빠가 돈도 제대로 벌고 있고. 너 공부를 하는 돈까지 아낄 이유는 없을 거 같아.”
“그냥 제가 안 맞아서 그래요.”
“어?”
“애초에 내가 공부를 하던 애가 아니니까. 이제 와서 하려고 하니 뭔가 딱 정해진 곳에서 하는 건 힘들더라고요.”
원희의 말에도 엄마는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다른 엄마들 말을 들으니까 그게 혼자서 공부를 하는 것이 너무 힘든 일이라고 하는데. 그러니까.”
“아니요.”
원희는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엄마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곳. 믿는 곳까지는 그냥 하고 싶었다.
“막히면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도 되고. 정말로 도움이 필요하면. 그때는 어머니께 말씀을 드릴게요.”
“그럴 거지?”
“네.”
원희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순간에 무너지지 않았더라면 너는 여전히 운동도 하면서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었을 거야.”
“그거 싫어요.”
원희의 대답에 엄마는 싱긋 웃었다.
“알았어.”
“힘들면 말씀을 드릴게요.”
“응.”
별 것 아니라고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엄마가 자꾸만 자신을 이런 식으로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더 노력을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서관에라도 가서 공부를 하는 게 더 나은 모양이었다.
“그럼 공부해.”
“네.”
엄마가 나가고 나서 원희는 한숨을 토해냈다. 자신은 결국 모든 사람들에게 다 부담이 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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