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장
“여기에서 지내도 좋아.”
“고맙습니다.”
“아니.”
선재는 미소를 지었다.
“나는 오히려 고마워.”
“네?”
“원희 네가 나에게 그런 부탁을 하지 않고 혼자서 그런 것을 가지고 고민을 했다면 나는 더 싫었을 거야.”
“그래도.”
“아니.”
원희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자 선재는 고개를 저었다. 원희도 그런 선재를 보며 싱긋 웃었다.
“그만 둬.”
“네?”
“그만 두라고.”
미선의 말에 아정은 미간을 모았다.
“무슨?”
“그 사람 네가 무엇을 하건 너를 망칠 수 있는 인간이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인간에게 네가 왜 그렇게 끌려다녀야 하는 거니? 말도 안 되는 거지. 그 인간 최악이고. 너는 그런 인간과 마주할 이유 없어.”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에요.”
아정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마치 자신이 학교를 관두는 것은 도망이라도 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그래요?”
“늘 잘못해야 하는 거야?”
“당연하죠.”
“아니.”
아정의 대답에 미선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때로는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아도 물러나야 할 때가 잇는 거야. 그리고 지금은 너에게 그런 상황이 온 거고.”
“아니요.”
“아정아.”
아정이 단호히 말하자 미선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왜 그러니?”
“뭐가요?”
“내가 너에게 무슨 잚소을 했어?”
“안 했어요.”
아정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미선이 왜 또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가면서도 가지 않았다.
“지금 보시니까 그저 다른 구설수. 더 큰 문제 같은 것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그러시는 거 같아요.”
“아니야.”
아정의 지적에 미선은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자신에게 아정은 중요했다.
“내가 너를 그 동안 지키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렇지는 않아. 믿어.”
“아니요.”
아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엄마는 믿을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이건 제가 알아서 해요.”
“어떻게?”
“뭐든요.”
아정의 말에 미선은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 나가려는 거야?”
“네.”
“아니.”
엄마는 멍하니 원희를 응시했다.
“왜 이러니?”
“뭐가요?”
“이런 식으로 행동을 하면 네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해지니? 네 엄마 가슴에 못을 박고 좋아지니?”
“아니요.”
원희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이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을 리가 없었다. 아프지 않을 수가 없는 거였다.
“어떻게 제가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시는 건데요?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런데 왜 이래?”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요.”
“뭐?”
“이게 제가 할 방법이니까.”
원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지금 이 순간은 엄마의 눈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렸다.
“엄마도 저에게 뭐든 다 해주지 못하는 것. 이것에 대해서 미안함을 느끼시는 거 아니에요? 맞잖아요.”
“당연하지.”
“그러니까요.”
원희는 부러 더 밝은 표정으로 웃었다.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엄마가 지금 할 수 있는 것. 우리 두 사람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는 거예요. 지금 저는 그러기 위해서 일단 집을 나가는게 우선이라고 생각을 하는 거고요.”
“절대로 그건 답이 아니야.”
“왜요?”
“왜라니?”
엄마는 아랫입술을 단호히 물고 고개를 저었다.
“너 그 사람 믿어?”
“네?”
“아무리 사장이래도 조금 그렇잖아.”
선재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에게는 가장 커다란 것이었고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세상이 무너져도 믿어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실제로도 그래도 되는 사람이고요.”
“아니야.”
엄마는 다시 한 번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아는데 세상에 그런 사람이라는 건 없어.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왜요?”
“왜라니?”
“그건 엄마의 세상이에요.”
원희의 말에 엄마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원희는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대체 왜?”
“너 정말.”
“됐어요.”
원희는 그대로 돌아섰다. 더 이상 이런 엄마와 다른 이야기를 한다는 게 더 우스운 일이었으니까.
“싫어요.”
“왜?”
“무슨.”
태훈의 말에 서정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아정이가 직접 결정을 할 일이에요. 제가 뭔가를 할 수 없는 건데 도대체 왜 그러세요?”
“너는 그 애 오빠다.”
“그렇죠.”
서정은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는 아시는 거죠?”
“뭐라고?”
“제가 오빠라면. 아버지세요.”
서정이 잠시 멈췄다가 말하자 태훈은 인상을 구겼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서 내 탓이라는 거냐?”
“그럼 아니라는 겁니까?”
“아니다.”
“아니라고요?”
“네 어머니 탓이지.”
“무슨.”
지금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탓이 아니라 결국 미선의 탓. 태훈은 더 이상 대화를 할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 저를 부르신 이유가 이건가요?”
“그래.”
“그럼 다시 연락하지 마세요.”
“뭐?”
태훈은 눈앞에서 휴대전화를 켰다. 그리고 바로 차단하는 것을 보여주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다행이네요.”
“뭐라고?”
“저는 지금 아버지께서 아주 조금이라도 달라지셨을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럴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다행입니다. 이제 저는 혼자서 알아서 살아도 되는 거니까.”
“그게 무슨?”
“그 동안 고마웠습니다.”
태훈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했지만 서정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더 이상 끌려 다닐 이유는 없었다.
“정말 다행이다.”
“뭐라고?”
“고맙습니다.”
서정은 씩 웃었다.
“오빠는 그럴 이유 없잖아.”
“왜?”
“왜라니?”
아정은 머리를 뒤로 넘기고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서정이 자신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는 건 싫었다.
“그러지 마.”
“뭘 그러지 마?”
“오빠. 제발.”
“아정아.”
서정은 아정의 눈을 보고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나도 당연히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에 동조할 수 없는 거지.”
“그래도 아버지니까.”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아니.”
서정의 말에 아정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은 아니었다. 자신은 단 한 번도 태훈의 딸인 적이 없었다.
“나를 그런 식으로 대한 적이 없는 사람인데 내가 도대체 그 사람에게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 건데?”
“아정아.”
“나 설득하지 마.”
“안 해.”
서정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럴 리가.”
“고마워.”
“학교는?”
“모르겠어.”
태훈이 아니더라도 더 이상 학교를 다니고 싶지 않았다. 학교에 정이 전혀 붙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들 결국 하나라는 거였으니까. 나를 제외하고는 이게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을 한다는 거니까.”
“그렇지.”
서정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놀랐어.”
“오빠는 몰랐어?”
“오빠 때도 있었지?”
“그거야.”
서정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있었지.”
“왜 그랬어?”
“어?”
“왜 그냥 넘어간 거야?”
“아니.”
“정말.”
아정은 머리를 뒤로 넘기고 한숨을 토해냈다.
“마찬가지네.”
“뭐가 마찬가지야?”
“그럼 아니라고?”
“아니야.”
“아니긴.”
아정의 표정에 서정은 미간을 모았다.
“갑자기 왜 이래?”
“실망이야.”
“뭐?”
서정은 침을 삼켰다.
“윤아정.”
“도대체 왜?”
아정은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한숨을 토해냈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을 그냥 넘어가는 거야? 결국 오빠도 그 안에 그대로 있다는 거 아니야? 맞잖아.”
“아니야.”
서정은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 아정과 다투는 것은 원하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이러지 말자.”
“뭘?”
“우리 싸우지 마.”
“아니.”
아정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가.”
“윤아정.”
“가라고.”
“무슨.”
“아무 말도 더하고 싶지 않아.”
서정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
“우리도 안 보는 거 아니야?”
“뭐?”
서정은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무슨 말이야?”
“이제 배우를 하고 나면 우리도 다시는 볼 일이 없는 거 아니야? 우리가 보는 일 점점 줄 거야.”
“아무리 그래도 나는 네 오빠야. 내가 네 오빠인데 너는 도대체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오빠.”
아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오빠라고 해서 그 모든 것을 다 이해만 할 수는 없는 거였다.
“희건 선배도 그래.”
“뭐가?”
“그거 나를 위한 거야?”
“그럼.”
“웃기네.”
아정은 미간을 찌푸렸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결국 그 모든 것은 자신과 관련이 없는 거였다.
“그만 둬.”
“뭐라고?”
“나는 갈게.”
“아정아.”
아정은 서정을 두고 돌아섰다.
“그래서 싸운 거야?”
“응.”
“하여간.”
“어?”
원희의 말에 아정은 미간을 모았다.
“무슨 말이야?”
“뭐가?”
“방금.”
“어?”
“하여간이라는 거.”
“아.”
원희는 아차 싶었다.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것도 아니긴?”
아정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떻게 그게 아무 것도 아닐 수가 있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데? 지금 뭐라고 하는 건데?”
“뭐가?”
“내가 한심하니?”
“아니야.”
원희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괜히 아정을 이런 식으로 흔들고 아프게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너 지금 그렇잖아.”
“아니야.”
원희는 다시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정말.”
“아니.”
아정은 한숨을 토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 지금 나를 이해 못 하는 거네.”
“뭐?”
“그런 거잖아.”
“그러니까.”
원희는 침을 삼켰다.
“그래.”
“어?”
“그렇다고.”
원희는 아정을 응시했다.
“그렇다고.”
“이원희.”
“내가 뭘 해야 하는 건데?”
“뭐라고?”
아정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더 이상 너에게 뭘 해야 하는 건지. 너에게 더 이상 무슨 말을 더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
“나랑 사귀잖아.”
“그런데?”
“뭐?”
아정은 머리가 멍해졌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너만 힘든 거 아니야.”
“뭐라고?”
“나도 힘들어.”
“그럼 말해.”
“아니.”
원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이 힘들게 느끼는 거. 그것 모두 다 말을 하는 건 아니었다.
“너를 걱정하니까.”
“뭐라고?”
“너를 좋아해서 안 하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배려하는 거.”
“하지 마.”
아정은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바란 적 없어.”
“없다고?”
“그래.”
“거짓말.”
“뭐라고?”
원희의 표정은 그 어느 순간보다도 차가웠다.
“무슨 말이야?”
“너는 단 한 번도 나에게 너는 요즘에 어떻게 지내느냐고. 그런 것에 대해서 물은 게 없어. 그렇지 않아?”
“그거야.”
아정은 침을 삼켰다.
“그러니까.”
“나는 없으니까.”
“아니야.”
“아니긴.”
“원희야.”
“그만 두자.”
“뭐?”
아정은 미간을 모았다.
“무슨.”
“우리 그만 두자고.”
“뭐라고?”
“끝을 내자.”
“원희야.”
“싫어.”
원희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우리 두 사람 이러는 거 우스운 거잖아.”
“뭐가 우스운 건데?”
“자꾸 싸우는 거.”
“아니.”
아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렇게 헤어지는 거. 이런 거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이러면 안 되는 거였다.
“우리가 어떻게 그래?”
“왜 못 그래?”
“왜 그래야 하는 건데?”
“아니니까.”
“뭐가?”
“모두.”
“이원희.”
“지쳤어.”
원희는 덤덤히 답했다.
“너무.”
원희의 냉정한 말에 아정은 침을 삼켰다. 이제 모두 다 끝이라는 것. 이제 더 이상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
“지금 네가 끝이라고 하면 우리 두 사람 끝이야. 나도 지금 지쳤어. 나도 더 이상 너를 달래지 않아.”
“알아.”
원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말하는 거야.”
아정이 무슨 말을 더 하기 전에 두 사람의 시간은 끝났다. 원희는 일어나서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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