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장
“너 왜 그러는 거야?”
“뭐가?”
“김영준.”
“미안해.”
동선의 낮은 목소리에 영준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동선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기민 씨 네 사람이야. 영준이 너를 위해서 모든 일을 다 해주는 사람인데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아무리 나를 위해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너에 대해서 그렇게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야.”
“왜?”
“왜라니?”
“왜 안 되는 건데?”
영준의 말에 동선은 미간을 모았다.
“그 말 맞잖아.”
“백동선.”
“불안해하지 마.”
동선은 영준의 손을 꼭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영준은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일단 회의 다녀올게.”
“그래.”
영준의 말에 동선은 그저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내가 싫습니까?”
“네?”
갑작스러운 동서느이 물음에 기민은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그게 무슨?”
“그냥?”
동선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이런 것을 묻는다는 것 자체가 우습기는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기민이 자신을 밀어내려고 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건 그다지 긍정적인 신호는 아니었다.
“지금 기민 씨 보면 조금 그렇게 느껴져서요.”
“아.”
기민은 순간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이런 그의 반응을 보니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건 맞는 모양이었다.
“아닙니다.”
“아니긴.”
동선은 그저 사람 좋은 미소를 짓기는 하지만 그래도 불편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도 다른 말을 더 할 것은 없었다.
“자꾸 자료를 찾는 이유가 뭐냐?”
“그래야 회사를 바꿀 수 있으니까요.”
“바꿔?”
영준의 말에 서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도대체 왜?”
“네?”
“이 회사는 완벽하다.”
“아니요.”
영준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모든 것이 다 허술했고 지금이라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한 거였다.
“다들 우리 회사가 좋은 곳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거. 아버지도 아시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그걸 모두 다 들쑤시면? 다른 이들이 우리 회사가 좋은 회사라고 생각을 하는 거냐?”
“그거야.”
“아닐 거다.”
서혁은 힘을 주어 말하며 단호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그의 반응에 영준은 침을 삼켰다. 무조건적인 응원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이건 다소 강한 느낌의 반대였다.
“왜 그러시는 거죠?”
“너로 인해서 무슨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냐? 다른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할 거라고?”
“네?”
“너의 행동은 회사를 흔든다.”
“흔들 건 흔들어야죠.”
“아니.”
서혁은 팔걸이를 만진 채 엷은 미소를 지었다.
“너무 잔인하지만 너는 없으니까.”
“아니. 그게 무슨.”
이제 자신은 죽을 사람이라서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인가? 영준은 한숨을 토해내며 미간을 모았다.
“저 부회장이에요.”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그 자리에 둔 거다.”
“네?”
“그게 내 부탁이다.”
“아니요.”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거라면 이런 걸 요구하지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뭐라도 하려고 한 거였다.
“이제 겨우 용기가 생겼어요. 그리고 저는 그저 그 용기에 걸맞은 행동을 하려는 게 전부라고요.”
“왜 네가 용기를 낸 것으로 인해서 회사의 많은 이들이 불안을 느껴야 하는 것이냐? 물론 네가 틀렸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때로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모두 다르다는 것도 알아야 할 거다.”
“아니.”
“변명을 들으려는 게 아니야.”
영준이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자 서혁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가봐라.”
“아버지.”
“회장님.”
영우가 느꼈을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영준은 다른 말을 더 하지 않고 짧게 고개를 숙였다.
“숨이 막혀.”
“어?”
“답답하다고.”
영준의 투정과도 같은 말에 동선은 가만히 손을 잡았다.
“아픈 건 아니지?”
“응.”
차라리 미친 통증이 계속 오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다른 생각이 들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그래도 약이 효과가 좋아서 다행이야.”
“그게 무서워.”
“어? 왜?”
“신호도 없이 끝이 날까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동선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가만히 영준을 품에 안아서 그의 머리에 자신의 턱을 기댔다. 영준은 많이 말랐다. 영준이 그의 체중을 온전히 자신에게 실어도 무겁지 않았다.
“내가 이래도 괜찮은 거지?”
“그럼.”
서로의 체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너무 많이 상태가 안 좋아 보이지는 않지?”
“응. 안 그래.”
“흉측할 거 같아.”
“아니야.”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애초에 나란히 앉은 것을 보는 것부터 불편했지만 그것을 피할 이유는 없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거 할 거야.”
“하려는 게 뭔데?”
“네 옆에서 너를 버티고 있는 거.”
“좋은데?”
“당연하지.”
영준은 가만히 눈을 감고 몸을 조금 더 기댔다. 괜찮다고 하지만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게 전부였다. 통증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그 통증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고, 여전히 자신의 몸에 있는 통증은 그를 지치게 만드는 거였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할 정도로 탈진하게 하는 거였다.
“미안해.”
“왜 갑자기?”
“더 빨리 용기를 내지 못해서.”
“아. 그거야 뭐.”
그런 거라면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겁을 내고 제대로 다가서지 못한 거였으니까. 어느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었다.
“때론 사소한 것으로도 싸우고 싶어.”
“그럼 지금부터 하면 되는 거지.”
“그래?”
동선의 말에 영준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얼굴이 아주 조금이나마 편안해진 것 같아서 동선도 미소를 지었다.
“계속 지켜만 보실 거예요?”
“그래.”
“아니.”
서혁의 대답에 영우는 미간을 모았다.
“그건 아니죠.”
“왜 아니라는 거냐?”
“네?”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구나.”
“아니.”
영우는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 모든 것을 참을 수가 있는 건지. 자신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한 가득이었다.
“회사에 안 좋다고요”
“주식이 올랐다.”
“그거야 사냥꾼이죠.”
“사냥꾼?”
영우의 대답에 잠시 멍하니 있던 서혁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영우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신기했다.
“뭐가 되건 우리에겐 낫지.”
“네? 아버지.”
“너는 모를 거다. 아직은.”
영우는 주먹을 세게 쥐었다가 풀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 모든 것들이 이해가 될 수 있는 건지 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가 그래도 허락하셨을 겁니까?”
“그래.”
“거짓말.”
“겁쟁이로구나.”
서혁의 낮은 목소리에 영우의 눈이 거칠게 흔들렸다.
“그럼 저는 가보죠.”
“너를 보여라.”
“아니요.”
그렇게 어수룩하지 않았다. 경영이라는 것. 그것은 모든 것을 다 숨겨야 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그런 거 없습니다.”
“뭇난 놈.”
“아버지도 못나시네요.”
서혁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했지만 영우는 단호히 돌아섰다. 서혁은 그런 그를 보며 혀를 찼다.
“모자란 놈.”
영우는 뒤에서 들리는 말을 무시하고 밖으로 나섰다. 서혁을 어떻게 할 수 없다면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거였다.
“고마워.”
“나도 좋아.”
좁은 욕조. 나란히 앉은 두 사람.
“안 뜨거워?”
“응.”
연인이니까 당연히 같이 씻어야 한다는 핑계이기는 하지만. 이제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거였다.
“좋다.”
“뭐가 좋아?”
“너랑 있는 거.”
동선은 조심스럽게 영준을 안았다. 혹시라도 망가지지 않을까 걱정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조심스러웠다.
“좋다.”
“나도 좋아.”
영준은 조심스럽게 몸을 기댔다.
“너무 무리는 하지 말고.”
“응.”
“그냥 하는 말이 아니야.”
“알아.”
동선의 지적에 영준은 조심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동선은 무슨 잔소리를 더 하는 대신 그저 영준을 품에 꼭 안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거였다. 모든 걸 잊지 않고 그저 여유를 갖는 것. 이게 별 것 아닌 거 같더라도 두 사람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거였다. 영준은 하루가 다르게 죽어가고 있었다. 그에게 남은 생기. 그 모든 것을 다 줄 수 있는 것은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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