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장
“우리에게 도대체 뭐가 있는 건데?”
“갑자기 왜 이래?”
“아니.”
은주는 스스로 머리를 때리고 한숨을 토해냈다.
“답답해.”
“서은수.”
“우리가 친구이기는 하니?”
“당연하지.”
“거짓말.”
은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자신과 다르게 영준은 자신을 친구로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이런 식으로 행동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나 지금 단발이야.”
“어?”
“단발. 귀도 안 오는.”
“아.”
영준의 반응에 은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머리를 뒤로 넘기고 물끄러미 영준을 응시했다. 영준의 눈동자는 분명히 이쪽을 보고 있었지만 거기에는 어떤 것도 없었다. 그저 멍할 따름이었다.
“나는 네가 그저 시야가 좁아지는 거라고만 생각을 했어. 그렇게만 알았다고. 그런데 이렇게 앞이 보이지 않는 건 아니잖아. 말도 안 되는 거잖아. 어떻게 지금 나에게 이걸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있어?”
“보여.”
영준은 한숨을 토해내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조금이라도 은수를 달래려는 시도였지만 통하지 않았다.
“다만 조금은 달라.”
“뭐가?”
“흐려.”
“아니. 그런 거라면.”
“안경도 안 되고 뭐도 안 돼.”
“안 된다고?”
은수는 눈을 꼭 감았다. 긴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 무엇도 그를 도울 수 없는 걸까? 결국 이 순간 모든 걸 다 잃어야만 하는 걸까?
“싫다. 정말.”
“은수야.”
“알아.”
아마 더 심해진 걸 동선에게 말을 하지 말라는 것. 정말 말도 안 되게 잔인한 거였다. 이런 부탁을 하면 안 되는 거였다.
“동선 씨가 모를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니?”
“응.”
“어떻게 몰라?”
“나 연기 잘 해.”
은수는 울음을 삼켰다. 그리고 영준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안았다. 영준은 그런 은수의 팔을 토닥였다.
“우리 은수 착하다.”
“너는 나빠.”
“응.”
“정말 나빠.”
“응.”
너무 나쁘다는 말을 듣는데 하나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저 이런 친구가 있다는 거. 이게 다행이었다.
“혹시 영준이 좋아해요?”
“네?”
순간 기민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는 바로 헛기침을 하면서 감정을 다스리려고 했지만 동선은 멍해졌다.
“무슨.”
“맞구나.”
동선은 허탈했다. 왜 자신이 이런 걸 묻는 건지는 몰랐는데. 그 동안 스스로 알아차리지 모한 것이 더욱 한심했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한 걸까? 세상에 게이가 이렇게도 많았다는 거야?
“도대체 어떻게 그래요?”
“사장님에게는 말하지 말아주십시오.”
“젠장.”
그 동안 묘하게 기민이 자신을 밀어내려고 하던 것들. 그 모든 경계. 이런 것일 수도 있었다. 이제 알았다.
“그러니까.”
“아닙니다.”
동선이 무슨 말을 하기 전에 기민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지금 생각하시는 그런 거 아닙니다.”
“아니.”
“정말 아닙니다.”
기민의 거듭된 반응에 동선은 미간을 모았다. 기민은 아차 싶었다. 너무 지나치게 아니라고 부정한 거였다.
“사장님께는.”
“안 해요. 말.”
동선의 말에 기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동선은 혀로 이를 훑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말도 안 되는 거였다.
“기민 씨를 생각해서 말을 하지 않으려는 건 아닙니다. 그저 이걸 알면 그 녀석이 놀랄까 그렇습니다.”
“고맙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무슨 말을 더 해야 하는 거였지만 거꾸로 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어차피 자신이 무슨 말을 더 한다고 해서 달라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모든 것은 이미 정해진 거였고. 이건 부정할 수 없는 거였다.
“기민 씨가 그 동안 영준이를 신경을 쓴 거. 그거 정말로 좋은 친구로 그렇다고 생각을 합니다.”
“좋은 사장님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거기까지.”
동선은 검지로 선을 그었다.
“딱 거기까지.”
“네.”
기민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겁니다.”
그때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봤다. 기민은 심호흡을 하고 수화기를 들었다.
“그 녀석은 좀 어떠한가?”
“직접 물으시죠.”
“아니.”
동선의 대답에 서혁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직접 묻는다는 것. 그건 그다지 현명한 일이 아니었다.
“그 망할 녀석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데.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는가? 문제가 될 거야.”
“세상에 아들을 그렇게 불편하게 느끼는 아버지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겁니다.”
“그 녀석도 마찬가지야.”
“아버지시잖아요.”
동선의 간단한 말에 서혁은 물끄러미 그를 응시했다. 자신과 다른 생각. 이런 아이를 아들이 좋아하는 거였다.
“내가 뭘 하건 그 녀석은 싫어할 테지.”
“아니요.”
서혁의 대답에 동선은 미간을 모았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식의 말을 할 수가 있는 걸까? 세상에 그런 존재는 없었다.
“그저 조금 더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것을 가지고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 녀석은 나에게 아무 것도 말을 하지 않아. 이런 상황에서 내가 알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아.”
“그거야.”
“그런 말을 듣자고 부른 게 아니야.”
동선의 말이 길어질 것 같자 서혁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자신이 원하는 대답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그 녀석이 조금이라도 더 현명하게 행동하기를 바라네. 나를 꺾고 자기만을 생각하지 않기를 말이야.”
“그러면 안 되는 겁니까?”
“뭐라고?”
서혁은 지금 동선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미간을 모은 채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 그 녀석이 그리 말도 안 되는 것들을 하려고 하면 자네가 옆에서 말려야 하는 것 아닌가?”
“제가요?”
“그래.”
“아니요.”
동선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왜 영준이 자신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 이제 확실하게 알았다. 이 회사에서 제대로 된 그의 편은 없었다. 아주 약간이나마 그의 편이라고 믿었던 이도 아니었다.
“영준이 많이 외롭습니다.”
“뭐라고?”
“제가 도우려고요.”
“지금도 하고 있는 것 아니야?”
“아니요.”
동선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 동안은 그저 수동적으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만 찾았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정말로 해야 하는 일을 해야만 하는 거였다.
“그 녀석이 그 동안 왜 저에게 제대로 된 도움을 청하지 않았던 것인지 원망스럽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죠. 거기엔 제가 제대로 행동을 하지 못했던 것도 이유가 되었을 테니 말입니다.”
“뭐라는 건가?”
“앞으로 보십시오.”
“뭐?”
“제대로 하겠습니다.”
동선의 대답에 서혁은 미간을 모았다.
“그럴 자격이 어디에 있습니까?”
“부회장실입니다.”
동선의 말에 감사실 직원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으로 회사 자료를 모두 다 뒤지는 건 안 되는 거죠. 그거 문제가 될 겁니다.”
“그냥 주세요.”
“아. 사장님.”
영우가 나타나자 직원들의 태도가 변했다. 아마 공식적으로 지금 이 그룹의 후계자라 그런 걸 거였다.
“어차피 곧 떠날 사람인데 다 줘서 뭐할까요?”
“네?”
“그게 무슨?”
직원들의 반응에 영우는 싱긋 웃었다.
“몰라요?”
“그만 두시죠.”
“네?”
동선의 말에 영우는 미간을 모았다.
“무슨?”
“지금 그 말을 하시는 거. 분명히 선전포고라고 생각을 할 겁니다. 그럼 이쪽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가만히 있지 않으면요?”
영우는 씩 웃으면서 턱을 긁적였다.
“궁금하네.”
“부회장님이 하실 수 있는 것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이 하지 않으실 일까지 모두 다 할 겁니다.”
“아.”
영우는 부러 더 감탄하는 시늉을 하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내 입술을 내밀고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그게 될 거라고 생각을 하는 겁니까?”
“네?”
“그쪽이 바라는 거 안 될 겁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십니까?”
“물론이죠.”
“두고 보시죠.”
영우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다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이게 더 중요할 거였다.
“아무튼 이족에서 달라고 하는 자료 모두 다 주십시오. 그게 어려운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고맙습니다.”
동선은 싱긋 웃었다. 뭐가 되었건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그걸 하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들었죠?”
“아니.”
“얼른 주시죠.”
“모두 줘!”
영우가 갑자기 고함을 지르자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동선은 그런 그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분명히 외로운 사람이었다. 동선은 더 이상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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