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장
“김영준.”
“어?”
사무실에 돌아와서 영준을 부르던 동선은 그 자리에 굳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하니 영준을 응시했다. 그의 몸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런 동선을 영준은 전혀 보지 못하고 있었다.
“너 뭐야?”
“어?”
“지금.”
동선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아니라고, 그렇지 않다고 말을 하고 싶지만 영준은 아무 것도 보지 않았다.
“너 지금 내가 안 보이는 거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동선의 말에 영준은 침을 삼키면서도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부러 더 밝은 목소리를 내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는 그만 좀 하지 그래?”
“안 보이네.”
동선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지금 와서 서혁에게 단호하게 말한 것을 후회하는 중이었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그만 하자.”
“멀 그만해?”
“일.”
“무슨 일.”
“지금 일.”
“왜?”
동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 이 상황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거였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나는 너랑 오래 있고 싶어.”
“그럼 이미 늦은 거야.”
“뭐?”
“이미 끝이 난 거니까.”
영준의 미소에 동선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가 있는 걸까?
“알잖아. 나 죽는 거.”
“아니 그걸 모른다는 게 아니잖아.”
동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더 이상 해야 하는 건데. 자신의 행동은 그 어떤 것도 바꾸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나 그만 둘게.”
“그래.”
“그만 둬도 된다고?”
“응.”
영준은 이를 드러내고 밝게 웃었다. 그런 그를 보며 동선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끝까지 자신을 아프게 하는 주이었다.
“그래.”
“너 도대체.”
“너 못 그러는 거 알아.”
동선이 다른 말을 하기도 전에 영준은 먼저 말을 꺼냈다. 그 말에 동서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영준에게 다가가서 가만히 그를 안았다. 이 모든 순간이 주는 답답함. 그것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 서로가 있다는 거였다.
“내가 얼마나 무기력하게 느껴지는지 알아?”
“미안해.”
“사과 말고.”
“증명하고 싶어.”
“뭘?”
“나를.”
자신을 증명하고 싶다는 그 말에 동선은 침을 삼켰다. 영준이 어떤 감정인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해야 하는 거야.”
“응.”
동선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
“안 보여도 할 거야?”
“보여.”
“김영준.”
동선이 다시 엄한 목소리로 말하자 영준은 씩 웃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자신의 체중을 실었다.
“정말로 보여.”
“아니.”
“명암만.”
“언제부터 그런 거야?”
“아니 정말 지금 처음이야. 그래서 나도 놀랐어.”
“처음.”
아마 영준의 말이 사실일 거였다. 처음. 그 말을 믿어야만 하는 거였다. 그게 아니라면 그 동안 자신이 몰랐다는 거였으니까. 동선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런 영준을 더욱 꽉 안았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자신의 체온을 영준에게 건네는 것이 전부였다.
“다른 사람이요?”
“네.”
“그건 저도 잘.”
동선의 물음에 기민은 미간을 모았다.
“사실 저도 영우 사장님의 일만 하다가 이리로 온 거여서. 정확히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건진 모르겠습니다.”
“앞이 안 보여요.”
“네?”
“그 녀석.”
“아.”
기민의 입에서 작게 탄식이 나오자 동선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싫어도 이 사람은 정말로 영준을 걱정하는 사람이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영준을 위해서 움직이는 사람인 거였다. 그 나름의 방식으로 위로를 하는 거. 그런 자신이 못 하는 일을 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일 거였다.
“지금 그렇게 심각하십니까?”
“네. 심각하네요.”
동선은 애써 덤덤한 척 하기 위해서 턱을 긁적였다.
“설마 바로 가서 말할 건 아니죠?”
“당연히 아닙니다.”
“그냥 해본 말이에요.”
동선은 더 밝은 미소를 지었다.
“뭔가를 바꾸고. 증명하고 싶어하는 거 같기는 한데 그게 그리 쉽지는 않은 거 같아서요. 도와야 할 거 같아요.”
“알겠습니다.”
기민은 잠시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내일까지 해보겠습니다.”
“좋아요.”
기민의 대답에 동선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민으 그런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짧게 고개를 숙였다.
“계속 그런 거예요?”
“아니요.”
은수의 물음에 동선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정말이죠?”
“네.”
“정말.”
은수는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망할 자식.”
“그러게요.”
은수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래도 다행이에요.”
“네?”
“그쪽이 있어서.”
“뭐.”
정말로 자신이 있어서 다행인 건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 것인지는 아직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통증은 크게 느끼지 않는 모양이에요. 몸이 그런 상황인데. 그래도 그런 거라면 다해이죠.”
“아픈 거 같아요.”
“네?”
“많이.”
동선은 짧게 헛기침을 하고 미소를 지었다.
“아침마다 못 일어나요.”
“아.”
“몸을 둥글게 말고 떨어요.”
“아프구나.”
“아픈 거 같습니다.”
은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애초에 그렇게 몸이 망가지는 상황에서 아프지 않다는 게 더 우스운 거였다.
“제가 더 지킬 겁니다.”
“그렇게 해줘요.”
“부러워요.”
“네?”
“서은수 씨 같은 친구.”
“무슨.”
은수는 입을 내밀고 앞치마에 손을 넣었다.
“제가 얼마나 이기적인데요?”
“보통은 그런 이기적인 친구도 없죠.”
“그럼 우리 친구 하죠.”
“네?”
“어때요?”
“뭐.”
은수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동선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하죠.”
둘은 서로의 손을 잡고 더욱 밝게 웃었다. 그래도 영준 덕에 뭔가 인연이 이어지는 기분이었다.
“카페는 잘 되어가?”
“응. 잘 되어가.”
집에 들어오는 동선을 영준이 기다렸다는 듯 맞았다.
“호텔에 안 가?”
“여기에 있을래.”
“김영준.”
“좋아.”
“아니.”
동선은 한숨을 토해냈다.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병원에 가야 하는 건 서로 잘 알고 있었다.
“여기 병원 멀어.”
“이미 가도 할 거 없어.”
“야.”
“사실이야.”
동선의 낮은 경고에도 영준은 싱긋 웃었다. 영준의 대답에 동선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해도 여기에서 이러고 있는 거. 이건 아닌 거 같은데?”
“왜?”
“나 힘들어.”
“그래?”
“응.”
동선의 대답에 영준은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사과를 바란 게 아니야.”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왜?”
“그럼 벌써 죽은 거 같거든.”
“뭐?”
“여기에 있어야 산 거 같거든.”
영준은 조심스럽게 동선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가만히 그의 손을 잡고 거기에 자신의 볼을 가져갔다.
“이런 온기가 느껴져야지만 나는 살아있는 것처럼. 정말로 내가 살아있다고 느껴져. 그래서 어쩔 수가 없어.”
“내 생각은 안 해?”
“그러게.”
영준은 동선을 올려다봤다.
“사랑해.”
“정말.”
동선은 허리를 숙였다. 서로의 온기가 더해지고 조심스럽게 서로의 입술을 찾았다. 거칠하면서도 여전히 무언가를 갈구하는 영준의 입술이 거칠게 동선을 헤집었다. 동선은 조심스럽게 영준을 바닥에 눕혔다.
“나도 내가 미친 새끼 같다.”
“그래서 네가 더 좋아.”
영준은 씩 웃으며 장난스럽게 동선의 목에 팔을 감았다. 동선은 한숨을 토해내면서도 조심스럽게 영준의 몸에 입을 맞췄다. 하나씩 영준의 몸에서 꽃이 피어나고 영준의 허리가 뒤로 젖혀졌다. 동선은 그런 영준을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조심스럽게 만졌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한 입 가득 영준을 머금었다. 조금씩 영준의 입에서 빠르게 신음이 흘러나왔고 동선의 방은 열기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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