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장
“애초에 우리 두 사람 이러는 거 우스웠어.”
“뭐가?”
“저리 가라고.”
영준이 아침에 일어나기가 무섭게 짜증을 내자 동선은 그를 뒤에서 안으려고 했다. 하지만 영준은 이런 그를 밀어냈다.
“저리 가.”
“김영준.”
“가라고.”
몸을 떨면서도 밀어내려는 그를 보며 동선은 한숨을 토해냈다.
“정말.”
동선은 그런 영준을 힘으로 제압하고 품에 안았다. 그가 가만히 팔을 문지르자 천천히 떨리던 영준의 몸이 진정하기 시작했다. 동선은 가볍게 영준의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모든 건 익숙해져야만 할 거였다.
“점점 더 심해질 겁니다.”
“그래요?”
의사의 말에 영준은 그저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이 모든 것은 자신에게 오는 현실일 거였다. 다만 아팠다. 너무나도 아팠다.
“더 강한 진통제는 없습니까?”
“이제 효과가 없을 겁니다.”
“아니.”
자신이 직접 말하는 건데 도대체 왜 의사가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영준은 침을 꿀꺽 삼켰다. 온 몸에 느껴지는 통증. 하지만 이런 걸 무조건 견디기만 하는 거. 이건 정말로 아니었다. 이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미치겠다.”
영준은 고개를 푹 숙였다. 의사의 진지한 눈빛에 정말로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안합니다.”
“아니요.”
의사의 거듭된 사과에 오히려 정신이 더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정말로 자신에게 아무 것도 없었다. 이 상황을 피하게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고, 이 상황에서 자신을 낫게 해줄 것도 없었다.
“이걸 다 준 거라고?”
“응.”
동선의 대답에 영준은 미간을 모았다.
“왜?”
“그러니까.”
동선도 긴장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영우가 왜 이런 것을 그냥 준 것인지. 왜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것인지 오히려 이쪽이 더 복잡해졌다.
“다른 건 더 없고?”
“응.”
“이상하네.”
“이상하지.”
영준은 아랫이붓ㄹ을 내밀었다. 동선은 가늘게 눈을 뜨고 어깨를 으쓱했다. 이건 복잡한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서로 수를 내는 거였고, 그 수의 끝에 뭐가 있는지 지금 당장은 알 수 없었다.
“기민 씨 눈에 보이는 거 없어요?”
“아 그러네.”
“그래도 같이 일을 했으니까.”
“제가 가보겠습니다.”
기민의 말에 영준은 순간 멈칫하며 턱을 긁적였다. 너무 대놓고 그쪽으로 가는 건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위험해.”
“할 수 있습니다.”
기민의 말에 영준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민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선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무슨 말을 하려다가 가만히 영준의 손을 잡고 기민을 응시했다.
“단순하네.”
“네?”
“이렇게 바로 오고.”
“제가 온 겁니다.”
기민의 빠른 대답에 영우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생각처럼 저쪽은 꽤나 당황하는 모양새였따.
“다 보여.”
“네?”
“기민 씨.”
“아닙니다.”
영우는 기다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그냥 nws 거야.”
“네?”
“그거.”
영우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정말로 아무 뜻도 없다는 그의 말을 믿어도 되는 건지 기민은 인상을 구겼다.
“그래도 형제니까 준 거라고.”
“아 그렇습니까?”
기민의 대답이 꽤나 덤덤하게 이어지자 영준은 씩 웃었다. 말과 다르게 전혀 자신을 못 믿는 거였다.
“안 믿겨?”
“네.”
“왜?”
“싫어하시니까요.”
“정답.”
영우는 바로 손가락을 튕기고 씩 웃었다.
“싫어하지.”
“그런데 왜?”
“싫어하니까.”
기민은 눈을 가늘게 떴다. 영우의 말이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하려고 했지만 그리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그게 무슨?”
“그거 다 좋아할 거라고 봐?”
“네?”
“회사의 사람들.”
“아.”
기민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은 곧 사라질. 어쩌면 갑자기 힘을 얻은 영준의 행보를 모두 다 보고 있을 거였다. 그게 그리고 회사 안으로 오는 칼이라면 불만들이 생길 거였다.
“그럼 잘 해봐.”
영우는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기민은 다른 말을 더 하지 않고 덤덤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짧게 숙였다.
“다른 사람?”
“응.”
“안 돼.”
동선의 말에 영준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무슨?”
“왜?”
“안 그래도 많아.”
“아니.”
“싫어?”
“어?”
“기민 씨.”
“아니야.”
영준의 물음에 동선은 미소를 지은 채 가볍게 그의 손을 잡았다. 어차피 이런 것에 대해서 말을 한다는 게 더 우스운 일이었다. 어른들이었고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도 않은 건데 굳이 말을 할 건 없었다.
“그저 점점 더 네가 피곤해하는 거. 그게 내 눈에 보여서. 그런 네가 걱정이 되어서 하는 말이야.”
“걱정.”
영준은 짧은 한숨을 토해냈다.
“하지 마.”
“어?”
“최대한 할 거야.”
영준은 동선에게 몸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거.”
“김영준.”
“그 동안 너무 놀았어.”
“그렇지.”
동선이 바로 동의하자 영준은 눈도 뜨지 않고 입을 내밀었다. 많이 지친 그를 보며 동선은 인상을 구겼다.
“너 지금 아파.”
“그래.”
“많이.”
“응.”
영준은 부정도 하지 않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네가 있어 다행이야.”
“아니.”
“너로 인해 살아.”
“그런 말을 들으려는 게 아니야.”
동선은 깊은 한숨을 토해내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너로 인해서 내가 죽어가는 건?”
“어?”
“너로 인해서 내가 죽어가.”
“미안.”
“아니.”
동선이 화를 내자 영우는 혀를 살짝 내밀고 어깨를 으쓱했다. 동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서 뭘 하려는 거야?”
“몰라.”
“김영준.”
“정말 몰라.”
영준의 덤덤한 대답에 동선은 미간을 구겼다. 하지만 정말로 괜찮다는 그 말에 마땅히 할 말은 없었다.
“그 녀석은 좀 괜찮나?”
“이래서 허락하신 겁니까?”
“응?”
“그 녀석 감시.”
“아. 머.”
어쩐지 너무 쉽게 자신을 회사에 들어오게 해주는 거였다. 그 뒤에 뭔가 있을 것 같았는데 이렇게 단순한 일이라면 차라리 다행이었다.
“신기하네요.”
“뭐가?”
“보자가.”
“부자라. 그거 의미가 있을까?”
서혁의 덤덤한 대답에 동선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서혁의 태도는 자신이 쉽게 생각하는 아버지의 모습과는 다른 거 같았다.
“그래서 원하시는 게 뭐죠?”
“모르겠네.”
“모른다라니.”
동선은 침을 삼켰다. 자신에게 뭔가 더 원하는 것. 그것을 알아야 하는 건데. 도대체 뭘 바라고 있는 건지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우선이었다. 자신은 영준을 위해서 뭐든 다 할 수 있었다. 이미 그를 위해서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여기에 온 거였다. 이런 상황이라면 뭐라도 더 해야만 하는 거였다.
“그 녀석을 좋아하나?”
“네. 좋아합니다.”
“신기하군.”
서혁은 진심으로 의문이 가득하다는 표정이었다. 아마 동선이 알기에도 그 동안 영준이 사람을 만난 적이 없어 그런 걸 거였다.
“그 이상은 말리게.”
“네?”
“그게 그 녀석을 위한 거야. 일을 더 하면 안 돼.”
“싫습니다.”
“뭐?”
“말리지 않을 겁니다.”
서혀근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녀석 지치고 있어.”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하는 겁니다.”
“그래?”
서혁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 어디에도 온기가 담겨 있지 않고 서늘할 따름이었다.
“그건 자네가 그 녀석을 죽이는 거야.”
“네. 그럴 겁니다.”
“뭐?”
“죽일 거라고요.”
동선의 덤덤한 대답에 서혁은 끙 하면서 작은 신음을 흘렸다. 확실히 만만한 존재는 아니었다.
“그럼 더 하실 말씀이 없는 걸로 알고 가겠습니다.”
“아니.”
“그리고 오늘 이 자리도 모두 말하겠습니다.”
서혁이 다시 무슨 말을 더 하기도 전에 동선은 자리에서 일어나 짧게 고개를 숙였다. 서혁은 멀어지는 그를 물끄러미 보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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