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장
“재미있어요?”
“네?”
영우의 물음에 동선은 미간을 모았다.
“무슨?”
“아니.”
영우는 느릿한 말투로 물으며 씩 웃었다.
“그냥 뭔가 시키는 대로 하는 거 같아서.”
“아.”
다행히 영우가 와서 여기에서 무슨 말을 하려는 거. 이건 그저 시비를 걸기 위해서 온 거였다.
“그런 거 같으십니까?”
“그러네요.”
영우는 사무실을 둘러봤다. 그리고 바로 밝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의 뜻대로 되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회사에서 일을 할 사람을 찾는다고 해도 여기에서 같이 일을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래요?”
“물론이죠.”
“그쪽이군요.”
“무슨?”
“막은 거.”
“아니.”
꽤나 단순한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한 회사를 앞으로 이끌어 간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나저나 이런 곳에까지 다 오실 정도로 한가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안 그러십니까? 사장님?”
“저는 그저 일을 잘 하느라 보러 온 겁니다. 그런데 제 사촌이 바쁜 모양이군요. 사무실에 없고.”
“사촌이 아니라 부회장님입니다.”
동선의 말에 영우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무슨.”
“아닙니까?”
영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영준이 자신보다 높은 직급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거였다.
“그런 식으로 나를 대해서 그쪽이 얻을 수 있는 게 도대체 뭐가 있다고 그렇게 행동을 하는 거죠?”
“바라는 게 없으니까요.”
동선의 말에 영우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어떻게 바라는 게 없을 수가 있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지금 당신이 손에 쥐고 있는 그거. 그거 모두 다 내가 없앨 수 있는 거라는 거 모르는 겁니까?”
“내가 뭘 가지고 있죠?”
“뭐라고요?”
그때 사무실로 돌아온 기민의 얼굴이 굳었다.
“아. 사장님.”
“나에게 오지.”
“네?”
“여기는 미래가 없어.”
영우는 동선이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어차피 죽을 새끼. 그런 새끼 밑에서 자기가 일을 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을 거야. 그러니까 그런 새끼를 버리고 나에게 오라고. 그게 훨씬 더 간단한 일일 테니 말이야.”
“싫습니다.”
영우는 자기에 취해 말을 하다 얼굴이 굳었다. 그리고 굳은 얼굴을 감추지 못한 채 기민을 응시했다.
“무슨?”
“전에도 말씀을 드린 거 같습니다. 분명히 돌아가실 부회장님이 앞으로도 살아계실 사장님보다 더 많은 것을 하시려고 합니다. 누가 진짜 살아있는 거냐고 묻는다면 저는 부회장님이라고 봅니다.”
“미친.”
영우가 손을 들자 영우가 잡았다.
“뭐 하는 겁니까?”
“이거 놓지.”
“이봐요.”
동선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여기는 사무실입니다. 그리고 제 동료를 이러는 거 못 봅니다.”
“동료?”
동선의 말에 영우는 잠시 멈칫하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왜 그러는 겁니까?”
“이 새끼 내 사람이야.”
“아닙니다.”
“뭐?”
“이쪽 사람입니다.”
“무슨.”
“맞습니다.”
기민은 물끄러미 영우를 응시했다.
“저는 부회장님 사람입니다.”
기민은 다시 한 번 힘을 주어 말했다.
“원래도 그런 짓을 잘 하는 사람입니까?”
“나쁜 분은 아닙니다.”
“아니.”
기민의 대답에 동선은 무슨 말을 더 하려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쪽도 좋아하네요.”
“네?”
“이 집안 사람들 좋아하네.”
“아니.”
기민이 무슨 변명을 하기도 전에 동선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무엇이 되었건. 지금 잘 하고 있는 겁니다. 그쪽. 그리고 영준이에게 있어줘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기민의 인사에 동선도 싱긋 웃었다.
“손님이 줄었어.”
“혼자서 이 정도면 장하지 않니?”
“그런가?”
은수의 말에 영준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은수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람들 관심도 많이 줄었어. 글고 이 정도 그림 같은 거 다른 곳에서도 이제 제공하니까. 안 그래?”
“그렇구나.”
은수의 말처럼 이 정도를 하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었다. 곧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할 거였다.
“너는 안 힘들어?”
“응.”
은수의 물음에 영준은 잠시도 고민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걱정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괜찮아.”
“안 괜찮아 보여.”
“그래?”
은수의 지적에 영준은 혀를 내밀고 씩 웃었다.
“그렇구나.”
“아니.”
“서은수.”
은수가 다른 말을 더 하려고 하자 영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마.”
“뭘?”
“동정.”
“동정이 아니라.”
“부탁이야.”
영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안 그래도 나 요즘에 동선이랑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그 녀석에게 동정을 받는 것으로도 힘들어. 그런데 너까지 이러면. 나 정말로 부담스럽다. 나 정말로 아프고. 너무나도 힘들고 그래.”
“힘들다니.”
은수는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입술을 쭉 내밀고 그런 영준을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김영준. 너 너무나도 잘 하고 있어. 그런데 너무 빠르게 달리려고 하는 거. 그게 문제인 거야.”
“내가 안 그러면?”
“어?”
“나에게는 시간이 없잖아.”
“그런 말이 아니라.”
“알아.”
은수가 당황하자 영준은 씩 웃었다. 죽어가고 나서 유일한 장점은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놀리는 거였다.
“네가 그런 의미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 다만 내 입장도 한 번 생각을 하라는 거야.”
“하고 있어.”
“거짓말.”
“진짜로.”
영준의 말에 은수는 입을 내밀었다.
“동선 씨는 바빠?”
“응.”
영준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바빠.”
“잘 하는 모양이야.”
“그러게.”
처음에 동선이 그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다행히 잘 해주고 있는 중이었다.
“나 같은 녀석이 그런 식으로 막무가내로 행동을 하는데 이 모든 것을 다 받아준다는 게 다행이야.”
“그러게.”
은수는 영준의 손을 잡았다.
“영준아.”
“응?”
“뭐든 나에게 말해야 해.”
“알았어.”
영준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안 당연한 거 같아서 그래.”
“왜 그래?”
“아니야.”
영준이 다시 묻자 은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동선이 굳이 말을 해준 것을 다시 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그냥 어딘지 모르게 너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어서 그래. 너랑 자꾸만 멀어지는 거 같아서 그래.”
“미안해.”
“아니야.”
영준의 사과에 은수는 고개를 저었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이용할지는 자신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영준 스스로 정해야 하는 거였다. 그리고 자신은 그저 그런 그를 응원하는 것이 전부였다.
“뭐 마실래?”
“아니.”
“그래도.”
“힘들어. 뭐든.”
은수의 얼굴이 굳었다. 모든 것이 다 힘들다는 것. 이건 그저 가볍게 하는 말이 아닐 거였다.
“사실 나는 지금 너랑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 이것도 너무나도 힘들어서 금방이라도 지쳐.”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거니?”
“그러게.”
영준은 혀로 입술을 축이고 한숨을 토해냈다.
“그런데도 해야 해?”
“응.”
“왜?”
“나의 증명.”
“증명.”
은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정말.”
“왜?”
“미련해서.”
“그래?”
“그런데 멋있어.”
은수의 말에 영준은 싱긋 웃었다. 자신을 멋있다고 해주는 여자는 아마 은수가 유일할 거였다.
“네가 있어서 산다.”
영준의 장난과도 같은 말에 은수는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런 영준의 손을 꼭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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