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장
“그 모든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건가?”
“당연하지.”
영우의 대답에 영준은 싱긋 웃었다. 처음에 영준을 당황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의 방에서 기다리던 영우는 오히려 난처한 기색이었다.
“왜 이러는 거야?”
“어?”
영우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무슨 말이지?”
“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
“그쪽의 행동으로 인한 일이랄까?”
“뭐?”
“난 그저 재미있는 일을 하려는 거야.”
영우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저 재미있는 일을 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게 재미있어?”
“너는 아니야?”
“아니야.”
영우의 대답에 영준은 가만히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너는 아닌 모양이네.”
“아니.”
“나는 이게 즐거워.”
영준은 손가락을 ㅗ책상을 어루만졌다. 손 끝에 닿는 어떤 차가움 같은 것. 이게 묘한 느낌이었다.
“내가 이러는 걸 불편하게 생각을 하는 것을 보니. 분명히 너는 그다지 좋은 일을 하지 않는 모양이야.”
“무슨 말이야?”
“그게 아니라면 이럴 이유가 없잖아.”
영준은 씩 웃으면서 혀로 입술을 축였다.
“김영우. 너는 말이야. 보면 너무 간단하게 모든 게 다 드러난단 말이야. 이상할 정도로 말이야.”
“너도 마찬가지야.”
“알아.”
영우의 반응에 영준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생각해도 두 사람은 꽤나 닮았다. 다른 누가 보더라도 그들이 형제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서혁 역시 자신의 감정을 못 숨기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을 보면 어쩌면 이것은 집안의 내력 같은 것이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상황이 달라.”
“뭐?”
“나는 이제 끝이니까.”
영준의 덤덤한 고백에 영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무슨 말이야?”
“정말 제대로 회사를 뒤집으려고.”
영우의 반응에 영준은 더욱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은 지금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지금 KJ와 할아버지가 만든 회사는 전혀 다른 회사라는 거. 그런 거 너도 이미 알고 있는 거 같은데. 아니야?”
“그래서?”
“싹 바꾸려고.”
“그래서 네 애인을 지킬 거 같아?”
“아.”
영준은 웃음을 터뜨렸다. 여기에서 갑자기 왜 동선의 이야기가 나오는 건지. 영준은 머리를 뒤로 넘겼다.
“무슨 말이야?”
“너 이러면 아무 것도 못 넘겨줘.”
“뭐?”
“네 애인 빈털터리라고.”
“아. 그거.”
영준은 한 번 헛기침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녀석은 내가 뭐라고 하건 여기에 남지 않을 거야.”
“그래?”
“물론이지.”
영준의 완벽한 확신에 영우는 주먹을 쥐었다가 풀었다.
“그래서 뭘 하려는 거야? 계속 하려는 거야?”
“당연하지.”
“미친.”
“왜?”
“너 미친 거야.”
영우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영준을 노려봤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런 행동은 하면 안 되는 거였다.
“정말.”
“재미있네.”
영준은 자신의 턱을 문지르더니 씩 웃었다. 그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미친 것 같은 그 웃음에 영우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빠르게 방을 나갔다. 그가 나가고 영준은 미간을 모았다.
“젠장.”
자신이 하는 모든 일. 이게 결국 동선에게 위험이 될 수도 있다는 거. 이런 걸 생각도 하지 않은 거였다.
“백동선.”
그를 지켜야 했다. 그의 모든 사랑. 자신을 걸어서라도 지켜야만 하는 사람. 그게 가장 중요한 거였다.
“괜찮아.”
“걱정이야.”
“아니.”
영준의 말에 동선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 이미 공기업에도 취업한 몸이야.”
“그런 말이 아니라.”
“알아.”
영준이 다른 말을 더 하려고 하자 동선은 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영준은 미간을 모았다.
“내가 괜한 짓을 하는 거 같아.”
“뭐가?”
“너에게 살자고 한 거.”
“머라는 거야? 지금.”
동선은 웃음이 석인 목소리로 고개를 저었다. 다른 사람들 같은 연인은 아니지만 같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네가 이 상황에서 나를 잡아줘서 고마워. 그리고 이런 세상이 있는 것도 알려줘서 좋고.”
“그래도.”
“아니라고.”
동선은 영준을 가만히 품에 안았다. 나날이 더 여위어가는 그의 몸을 만지는 것은 마음이 쓰렸지만 다행이기도 했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그를 자신의 품에 안아서 보듬을 수 있었다.
“만약에 뉴스에서 네 일을 알게 되었다면 나는 서운했을 거야.”
“뉴스나 났을까 몰라.”
영준은 웃음을 터뜨렸다.
“너를 다시 만나기 전이니까. 아마 나지 않았을 거야. 나는 지금 네가 아니었으면 이런 일들 하지 않았을 거니까.”
“그럼 아무도 모를까?”
“사라졌겠지.”
“잔인하네.”
“그러게.”
동선은 영준의 목덜미를 물끄러미 봤다. 그리고 거기에 작게 입을 맞췄다. 그 온기에 영주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왜 그래?”
“네가 다시 잘 보이는 게 고마워.”
“그러게.”
완벽하게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적어도 빛만 보는 상황에서는 벗어났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그 일은 반드시 일어날 거라는 거. 아무리 모르는 척을 해도 그럴 거라는 걸. 그저 두 사람은 지금 이 순간 그 이야기를 피하고만 있는 거였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내라고 하시죠.”
“뭐라고?”
서혁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뭐라는 거냐?”
“어차피 제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다 날 겁니다. 다들 알고 있으니까요. 그냥 기사가 나는 게 간단할 겁니다.”
“막을 거다.”
“왜요?”
영준은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께서 숨기셔도 저 스스로 알릴 겁니다. 이걸 가지고 도대체 왜 숨기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회사의 이미지. 그런 건 생각도 하지 않는 거냐?”
“회사 이미지요?”
영준은 테이블을 두드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곧바로 미간을 모은 채로 모든 표정을 지웠다.
“그런 걸 제가 왜요?”
“뭐라고?”
“이 회사 제가 분명히 바꿀 거라고. 몇 번이나 말씀을 드리는데 아버지께서는 제가 하는 말을 듣지 않으시는 거군요. 저는 이미 이 회사를 위해서 뭐든 다 하려고 하고. 그걸 위해서 저의 희생도 필요합니다.”
“뭘 하려는 거냐?”
“다 터뜨릴 겁니다.”
“미친 것 아니냐?”
서혁은 고함을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영준은 씩 웃으면서 그를 응시했다. 그의 이런 반응을 보니 꽤나 즐거운 것도 사실이었다. 자신은 잘 하고 있는 거였다. 자신의 모든 행동은 옳았다.
“재미있으시네요.”
“뭐라고?”
“지금 그거.”
영준은 웃음을 터뜨렸다. 서혁은 그런 그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
“무슨 모습이신지.”
“너는 회사 직원들은 생각도 안 하는 거냐?”
“그런 것 생각을 하시는 분게서 그런 식으로 회사의 자산을 아버지의 통장으로 옮기신 겁니까?”
“뭐라고?”
“정말!”
여준은 고함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가 왕왕 울렸다. 이런 식의 행동보다 더 극적인 걸 찾아야 했다.
“제가 정말로 회사 사람들ㅇ르 지키기 위해서 하는 거. 그게 뭔지. 그들을 가족으로 생각을 하면 뭘 해야 하는 건지. 그걸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버지께서 하시지 않던 모든 것들 말입니다.”
영준은 이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서혁은 그런 그를 붙들지도 않았다. 영준은 방에서 나오기가 무섭게 주저앉았다. 온 몸에 힘이 빠졌다.
“괜찮아?”
“응.”
기다리던 동선이 그를 안았다.
“이러지 마.”
“왜?”
“회사야.”
“부끄러워?”
“그런 게 아니라.”
“그럼 됐어.”
영준은 미소를 지으며 동선의 목에 팔을 감았다. 동선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라셔?”
“말도 안 통하지.”
“그렇군.”
사무실로 돌아와서 소파에 눕혔다. 그리고 그 옆에 앉아서 가만히 다리를 주무르며 동선은 미소를 지었다.
“왜 그래?”
“뭐가?”
“그 표정.”
“어?”
“내가 바보도 아니고.”
“아.”
동선은 어색하게 웃었다. 자신의 모든 걱정이 다 고스란히 드러나는 거 같아서 오히려 미안했다. 이럴 때는 살짝 숨기기도 하고. 그래서 오히려 더 위로가 되는 것이 있는데 그러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너에게 뭘 더 해줄 수가 있는 건지. 그리고 뭘 더 해야 하는 건지 너무나도 어려워. 정말 어려워.”
“그러지 마.”
영준은 자세를 바로 잡아서 동선의 뺨을 만졌다.
“사랑해.”
“여기 회사야.”
“왕자님 안기를 하고서.”
“그거야.”
동선이 무슨 변명을 하려고 하자 영준은 그대로 동선의 목을 끌어당겼다. 두 사람의 입술이 부드럽게 포개졌다. 서로의 눈을 보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누가 되었건 지금 이 순간 서로가 있는 것으로 충분했다. 두 사람이 이 자리에 있다는 것. 그리고 이 공간에 있다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 거였다. 두 사람은 서로를 갈구하듯 서로의 입술을 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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