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완결/너는 없었다 [완]

[퀴어 로맨스] 너는 없었다. [70장]

권정선재 2019. 1. 10. 23:51

70

이제 아예 안 나오시는 겁니까?”

그럴 거 같습니다.”

그렇군요.”

기민의 건조한 대답에 동선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굳이 이런 것으로 다른 말을 더 할 것도 없지만.

미리 말을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되죠?”

그러게요.”

정이의 물음에 동선은 혀로 입술을 축이고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겁니까?”

계속 가실 겁니까?”

.”

동선은 입에 담배를 물었다.

일단 그 녀석이 하고 싶다고 한 일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압니다.”

기민의 물음에 동선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이정이 씨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내시죠.”

?”

그러셔야 합니다.”

기민의 단호한 말에 동선은 가만히 그런 기민의 눈을 응시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이기민 씨는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

김영우 씨를 위해서입니까?”

무슨.”

이상하네요.”

동선은 난간에 기대서 연기를 뿜었다.

이상해.”

위험합니다.”

지금 죽기 바라요.”

?”

나는.”

동선의 대답에 기민은 미간을 모았다. 동선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넥타이를 살짝 풀었다.

나도 내가 영준이 녀석을 이렇게 좋아할 거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그 녀석이 이 세상에서 사라질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런 생각을 하니까 나는 살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말을 부회장님이 들으시면 어떻게 생각을 하실 거라고 생각을 하시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그러게요.”

영준의 생각.

그러네.”

동선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이기민 씨는 안 가고 싶어요?”

?”

지금이라도 가야지.”

아니요.”

기민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싫습니다.”

왜요?”

?”

가야 하는 거 아닌가?”

무슨.”

어차피 여기에서 일을 하는 것도 김영우 씨를 위해서 일을 하는 거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 더 이상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될 겁니다. 여기에 오래 있는 거.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닐 겁니다.”

동선은 차분히 말하고 연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가슴을 가득 채우는 연기. 조금이나마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살겠네.”

부회장님이 암인데.”

?”

그렇게.”

.”

동선은 씩 웃었다.

그럼 더 빨리 가겠네.”

저기.”

알아요.”

동선은 남은 연기를 모두 뿜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 누군가가 듣기에는 허무한 말일 수도 있었다.

그냥.”

죄송합니다.”

?”

죄송합니다.”

기민의 사과에 동선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라서 고개를 숙였다. 발치에 눈물이 툭 하고 떨어졌다.

쪽팔려.”

죄송합니다.”

동선은 고개를 푹 숙였다.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이제 더 이상 그가 없다는 사실이 점점 더 다가오는 기분이었다.

 

선생님!”

간호사의 목소리.

여기!”

영준은 눈을 감았다.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왜 아무 것도 못 해!”

죄송합니다.”

무능한.”

서혁의 말에도 주치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회사에서 지금 돈을 얼마나 주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런 것 하나 제대로 치료를 못한단 말이야.”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더 이상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다는 거. 아실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아니.”

서혁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래도 아프지는 않게 해야지.”

그럼 의식이 없을 겁니다.”

?”

본인이 바라지 않으십니다.”

아니.”

아프지 않은 대신 의식이 없다는 것.

그래도.”

안 뒵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동선.

그 녀석이 바라지 않아요.”

자네가 뭘 아나?”

저에게 말했습니다.”

동선은 숨을 고르고 자세를 바르게 했다. 모든 일에 다 동선이 있다는 사실에 서혁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도대체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그 아이는 내 아들일세.”

압니다.”

동선의 미소에 서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그냥 둔다고?”

.”

미친.”

서혁은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안 되네.”

그 녀석 부탁입니다.”

아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약을 먹으면 그래도 이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건데 도대체 왜 이 모든 고통을 스스로 감당한다고 하는 걸까?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런 식은 아니었다. 이러면 안 되는 거였다.

저 녀석을 위해서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할 거야. 내가 그러려고 돈이 있는 거야.”

그럼 저 녀석은 자신을 잃습니다.”

뭐라고?”

저 녀석은 스스로를 잃게 될 거라고요.”

아니.”

서혁은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부탁드립니다.”

동선은 고개를 숙였다.

제발.”

서혁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미안해.”

?”

그냥.”

영준의 사과에 동선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영준의 손을 꼭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아프지?”

.”

미안해.”

아니야.”

동선은 영준의 옆에 앉았다. 더 마른 영준. 더 마를 수 없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는 마르고 있었다.

나 별로지.”

?”

못 생기고.”

너 원래 못 생겼어.”

뭐래?”

동선의 장난스러운 말에 영준은 입술을 내밀었다. 동선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너를 잘 생겨서 좋아하는 거 아닌데. 그냥 너라서. 김영준이라는 사람이라서. 그래서 좋아.”

나 감동을 하면 되는 건가?”

.”

좋아.”

영준은 동선의 품을 파고들었다.

좋아. 정말.”

.”

동선은 영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거친 그의 머리카락. 어느새 조금 더 자란 상태였다.

내가 항암치료 안 한 게 참 다행이야.”

?”

나 두상이 안 예뻐서.”

뭐래?”

이거 봐.”

영준은 동선의 손을 이끌어서 자신의 뒤통수를 만지게 만들었다. 납작한 뒤통수를 동선은 가만히 만졌다.

이상하지?”

아니.”

원래 부잣집 아들은 머리가 예쁘다고 하던데. 우리 엄마는 나로 인해서 너무 바빠서 나를 늘 내려놓아야 했대.”

그래.”

정말.”

영준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나는 태어나서 축복을 못 받아서 이렇게 죽는 건가봐. 내가 태어나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서. 모두 다 나를 피하려고 해서. 그래서 이렇게 그냥 죽는 건가봐. 이렇게 아프게 죽는 건가봐.”

내가 있잖아.”

동선은 영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있잖아.”

나 죽기 싫어.”

그래.”

나 정말로 살고 싶어.”

그래.”

나 너무 무서워.”

그래.”

동선은 한숨을 토해내며 영준을 품으로 꾹 안았다. 아팠다. 너무나도 아팠다. 마음이 너무나도 아렸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을 리가 없었다. 이런 게 괜찮을 수는 없는 거였다. 이런 순간이 괜찮아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