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장
“여길 왜 자꾸 오시는 건데요?”
“오면 안 되는 거냐?”
“그건 아니지만.”
서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미안하다.”
“네?”
서혁의 사과에 영준은 물끄러미 그를 응시했다. 도대체 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답답한 기분이었다.
“아버지 원래 이런 분이 아니시잖아요. 이런 분이 아니신데 도대체 왜 저에게 이러시는 건데요?”
“나를 원망하는 거냐?”
‘아니요.“
영준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원망을 할 것도 없었다. 애초에 원망을 할 사이도 아니었으니까.
“이러시는 게 낯설어서 그렇습니다.”
“나에게 매달리기라도 해라.”
“왜요?”
“뭐라고?”
“뭘 해주실 수 있죠?”
영준의 덤덤한 고백에 서혁은 침을 삼켰다. 영준은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푹 숙였다. 숨이 막혔다.
“가세요. 힘들어요.”
“진통이라도.”
“아니요.”
영준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싫어요.”
“왜?”
“저로 살고 싶어요.”
“뭐라고?”
“아버지께서 저를 도대체 어떻게 생각을 하고 저를 부정하시려고 하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게 저에요.”
“무슨.”
영준의 말에 서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이 아들을 부정하고 있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영준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듣게 되니 자신이 그런 삶을 산 거 같았다.
“정말 너는.”
서혁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다가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미간을 찌푸린 채 침을 꿀꺽 삼켰다.
“싫어요.”
“왜요?”
“아니.”
정이는 동선을 보며 미간을 모았다.
“이런 식으로 그만 두는 건 아니죠.”
“그만 둬야 합니다.”
“네?”
“이제 이쪽은 끈이 떨어질 테니까요.”
“네?”
정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동선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한숨을 토해내며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뭐가 되었건 이게 현실입니다.”
“현실이라니.”
정이는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이런 것을 하기엔 너무 늦었떤 모양이었다.
“아직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잖아요.”
“바뀔 겁니다.”
“하지만.”
“이정이 씨.”
동선은 낮은 목소리로 정이를 불렀다.
“그 동안 고생했어요.”
“부회장님을 보겠어요.”
“네?”
“그리고 정하죠.”
“아니요.”
동선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영준을 지치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 녀석 안 그래도 많이 아파요. 그래서 회사 일에 있어서 손을 떼게 하려고 하는 겁니다. 미안합니다.”
“손을 떼다니.”
정이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부회장님이 얼마나 열심히 많은 것을 바꾸고 싶어하는지 아시잖아요. 그런데 여기에서 멈춘다고요?”
“안 멈출 겁니다.”
동선은 씩 웃었다.
“저 혼자 할 겁니다.”
“네?”
“이정이 씨 부탁이에요.”
정이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 녀석 없이 제가 여럿을 지킬 자신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제 뜻을 따라 주십시오.”
“저는 같이 할 겁니다.”
“네?”
기민의 말에 동선은 미간을 모았다.
“무슨?”
“정이 씨에게 한 말 하시려는 거죠?”
“그게.”
“저는 괜찮습니다.”
기민의 미소에 동선은 한숨을 토해냈다.
“하여간.”
“왜요?”
“아닙니다.”
동선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모든 걸 다 아는 것 같은 기민이 불편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고마웠다.
“생각을 해보니 이기민 씨는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렇죠?”
“네.”
“그런데 병원은 안 가십니까?”
“못 갑니다.”
“네?”
“시간이 있거든요.”
“아.”
이제 늘 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하루가 다르게 상태가 나빠지는 것. 너무나도 아픈 순간이었다.
“죄송합니다.”
“아니요.”
기민의 사과에 동선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기민 씨가 왜 사과를 합니까?”
“그래도요.”
“아무튼.”
동선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민은 짧게 고개를 숙였다.
“정말로 저 원래 부서로 돌아가요?”
“네?”
“하지만.”
“미안합니다.”
기민의 사과에 정이는 미간을 찌푸렸다.
“저 거기에 다시 돌아가면 귀찮은 일들에 휘말릴 거라는 거 아시는 거죠? 그런데 가라고 하시는 거죠?”
“네.”
“아니.”
“그러니 이걸 가지고 가시죠.”
기민은 서류를 건넸다. 정이는 그것을 살피다가 눈이 커다래졌다. 영준의 비밀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러니까.”
“부회장님과 백동선 씨도 동의한 겁니다.”
“아니.”
두 사람이 연인이고 사무실에서 너무나도 뜨거운 관계라서 불편했다는 말. 그 모든 것을 하라는 거였다.
“이건 싫어요.”
“네?”
“이건 아니죠.”
정이는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으로 처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런 식으로 해결을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도대체 어떻게 그래요? 내가 아무리 이기적이라고 해도 이건 아니에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 처리를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해결이 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가지고 가요.”
“그래도.”
“두 분의 뜻입니다.”
정이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두 사람의 뜻이라는 거 너무나도 아픈 말이었다. 자신은 아무 힘이 되지 못하는 거였다.
“뭔가 바꾸고 싶었어요.”
“바꾼 겁니다.”
“하지만.”
“잘 한 겁니다.”
기민의 말에 정이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안 힘들어?”
“응.”
동선은 영준의 머리를 쓸어 넘겼다.
“네 걱정이지.”
“나는 괜찮아.”
“정말?”
“응.”
영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선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동선의 거칠어진 손에 한숨을 토해내며 미간을 모았다.
“너 정말 고생이네.”
“뭐가?”
“일 많지?”
“아니.”
“거짓말.”
“뭐가?”
“다시 회사에 갈 거잖아.”
“어?”
“옷.”
“아.”
갈아입지 않은 것을 보고 안 모양이었다.
“그러네.”
“너무 그러지 마.”
“응?”
“무리하지 말라고.”
“아니야.”
동선의 대답에 영준은 한숨을 토해냈다. 자신을 위해서 동선이 너무 열심히 일을 하는 모양새였다.
“나는 네가 지치는 거 싫어.”
“널아 볼 수 없는 시간에는 일이라도 해야지 네가 없다는 것. 그런 것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어.”
“하지만.”
“알잖아. 나 친구도 없고 취미도 없는 거.”
“알지.”
영준의 대답에 동선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영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고개를 저었다.
“사랑해.”
“자꾸만.”
“왜?”
“같은 말.”
“너는 아니야?”
“아니.”
동선은 영준의 손을 꼭 잡았다.
“김영준 견뎌.”
“응.”
“버텨.”
“응.”
영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이제 점점 더 이 시간이 끝이 나고 있다는 것. 이 시간의 마지막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이 보였다.
“정말 사랑해.”
“네가 있어서 사는 거야.”
영준은 동선의 품으로 파고 들었다. 그리고 가만히 그의 체취를 맡았다. 짙은 남자의 냄새.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냄새.
“좋다.”
서로의 모든 시간을 같이 공유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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