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보편적 연애 [완]

[로맨스 소설] 보편적 연애 2018 [28장]

권정선재 2019. 1. 13. 01:46

28

일찍 왔네요?”

. .”

세인이 없었으면 했는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뭐 세인의 집이었으니까 이런 게 당연한 것이기는 했지만.

같이 밥 먹어도 돼요?”

?”

아니.”

괜한 말을 한 걸까?

그러니까.”

같이 먹어요.”

세인의 밝은 목소리. 자신을 보면서 그 어떤 사람보다도 밝게 웃는 그를 보며 서울은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고마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럼 앉아도 되는 거죠?”

당연하죠.”

옷 갈아입고 나올게요.”

.”

자신이 생각을 하는 가족이라는 것. 지금 가짜이기는 하지만. 아니 이상한 관계이기는 하지만 지금 여기에서 느껴지는 거였다.

 

안 물어봐요?”

?”

밥 먹고 온다고 했으니까.”

.”

서울의 말에 세인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엷은 미소를 지으며 별 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물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물어야 해요?”

? 그건 아니지만.”

한서울 씨도 내가 우울증을 앓았다는 것을 알고 그것에 대해서 다른 것을 더 묻지 않았잖아요.”

그거야.”

물론 묻고 싶은 마음도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물을 이유는 없는 거였다. 세인이 직접 자신에게 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었고 세나에 의해서 알게 된 거였으니까.

무슨 자격으로 내가 물어요?”

안 무서워요?”

. .”

무서울 것도 없었다. 특히나 본인이 스스로 우울증으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이유도 없었다. 가벼운 감기 같은 것이라고 알고 있었고 세인에게 이상한 무언가는 느끼지 못했으니까.

그건 세인 씨의 잘못이 아니니까. 그리고 그냥 다들 감정의 감기 같은 거라고 하는 거 아니에요?”

감기라.”

세인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턱을 만지작거렸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해주는 게 처음이라서 신기했다.

고마워요.”

아니요. 무슨.”

세인의 인사에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걸 가지고 고맙다는 말을 들을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냥 생각인데요.”

그래도요.”

맛있다. 이거.”

서울이 부러 더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 음식을 먹자 세인은 그를 따라 웃었다. 서울도 고개를 끄덕이며 더 맛있게 먹었다.

 

미안해.”

아니야.”

부산의 사과에 서울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줄을 몰랐어.”

몰랐니? 정말?”

?”

몰랐냐고.”

그래도.”

부산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행동을 할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진심으로 병원에서의 일에 대해서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너 정말 그렇게 믿은 거야?”

그거야 당연하지.”

정말 믿은 거라고?”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도 춘자를 믿을 수가 있는 건지.

아무튼 이제 그러지 마.”

?”

너도 연락하지 말고.”

무슨.”

널 보면 나 너무 불편해.”

?”

부산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불편하다는 말. 자신의 실수이기는 하지만 너무 잔인한 말이었다.

옛날 사람이잖아.”

뭐라고?”

서울은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것을 무슨 변명이라도 되는 것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는 건지. 아무리 춘자가 옛날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거였다.

네 눈에는 내가 안 보이니?”

어떻게 그래?”

안 보이냐고!”

서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더 이상 이런 녀석과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부산도 그를 따라 일어났다.

누나 일단 흥분 하지 말고 들어봐.”

너도 똑같아.”

?”

너도 마찬가지라고.”

아니.”

서울의 말에 부산은 미간을 모았다. 지금 자신은 이 상황을 바꾸려고 하는데 서울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건데?”

뭐라고? 그걸 몰라서 묻는 거니?”

나는 다르지.”

아니. 너는 안 달라.”

서울은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부산도 하나 다르지 않았다. 결국 부산 역시 마찬가지인 거였다.

그 사람은 나를 모두 망치고. 너까지도 흔들었어. 그런데 너는 그것에 대해서 문제를 모르잖아.”

무슨.”

부산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춘자가 밉다고 하더라도 엄마인데 이런 식의 말은 말도 아 되는 거였다.

그래도 엄마잖아.”

엄마라고? 아니.”

서울은 어이가 없어서 우슴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나에게는 아니야.”

서울은 다른 말을 더 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부산은 그런 그를 붙잡지 못한 채 한숨을 토해내며 머리를 긁적였다.

 

제가 너무 바빴죠?”

아니요.”

용준의 사과에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도 영화를 보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영화 이거 좋아요.”

그래요?”

. 개봉한지 좀 되기는 했는데. 의미도 있고요. 나름 시의성 같은 것도 있다고 생각을 해서요.”

의미.”

비치 온 더 비치. 술 이름을 닮기도 하고 어딘지 모르게 애매한 느낌을 주는 영화였다. 우리나라 영화라는데 낯설었다.

술 이름 아닌가?”

중의적이더라고요.”

.”

영어 제목을 보니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욕설을 할 때 쓰는 단어인 비치를 쓴다는 게 특이했다.

그런데 이미 본 영화인데 또 봐요?”

좋아해서요.”

그래도 조금 지루하지 않나?”

아니요. 한서울 씨랑 같이 보고 싶은 영화이기도 하고요. 나름 의미도 있고 재미도 놓치지 않고요.”

서울은 입술을 내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용준이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영화라서 흥미로울 것 같았다.

 

재미없었죠?”

아니요.”

용준의 물음에 서울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영화였다.

재미있었어.”

그래요?”

용준이 다행이라는 표정을 짓자 서울은 웃음을 터뜨렸다.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 그래도 좋았다.

지금 그게 뭐야?”

왜요?”

아니.”

서울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밥은 내가 살게요.”

오케이.”

서울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한 사람이었다. 같이 있는 것. 이것 하나로도 좋았다.

 

한서울.”

해나야.”

데이트라고 해도 될지 모를 것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순간. 해나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무슨 일이야?”

얘기 좀 해.”

아니.”

해나랑 할 이야기는 없었다.

너나 나나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거 아니야? 그런데 뭐 이런 걸 가지고 다른 말을 더 하려고 하는 건데?”

그러니까.”

해나는 혀로 입술을 축이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이건 다르지.”

뭐가?”

아니.”

송해나.”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며 머리를 뒤로 넘겼다.

정말.”

부탁이야.”

?”

부탁 좀 할게.”

해나의 말에 서울은 침을 꿀꺽 삼켰다. 부탁이라는 말. 정말 별 것 아니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말을 하니 더욱 무겁게 다가왔다. 부탁이라는 것. 이건 해나가 쉽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왜 그러는 건데?”

뭐가?”

지나치잖아.”

그러게.”

해나의 별 것 아닌 것 같은 미소에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푹 숙였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송해나 너 정말.”

정말 부탁이야.”

아니.”

누군가와 편한 시간을 보내고 와서 이런 이야기를 마주한다는 것은 편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이 모든 것이 결국 자신의 문제인 것 같아서 너무나도 미안하고 답답했다. 결국 자신의 문제였다.

나도 있고 싶어 있는 거 아니야.”

그럼 돈 생기면 나갈 거지?”

그래.”

해나는 그제야 조금이라도 만족한 표정이었다.

정말 나갈 거지?”

그래.”

서울은 다른 말을 더 하지 않고 해나를 밀치고 집으로 들어갔다. 해나는 더 이상 그를 쫓지 않았다.

 

미치겠네.”

이제 철수는 자신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김철수.”

서울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