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장
“연락 안 받을 거야?”
“어? 응.”
집 앞으로 온 해나를 보며 서울은 여유롭게 대답했다. 굳이 하나하나 다 반응을 해줄 이유가 없었다.
“내가 굳이 모두 다 받을 이유는 없잖아. 안 그래? 그럴 이유 있니?”
“아니.”
“너 너무하지 않아?”
유정까지 갑자기 끼어들자 서울은 인상을 구겼다. 도대체 두 사람이 왜 모두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건지.
“유정아. 이건 나랑 해나 사이의 일이야.”
“우리 셋이 친구잖아.”
“셋이라고?”
서울은 순간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은 이 두 사람 외에 다른 사람이었다.
“무슨.”
“왜 그래?”
“정말 우리 셋이 친구니?”
“뭐?”
“너희 둘만 친하지.”
“무슨.”
서울의 말에 둘은 다소 놀란 표정이었다.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 와서 이런 걸 가지고 다투고 싶지도 않았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나를 찾아오더라도 얻을 건 없을 거야. 이건 나랑 세인 씨가 정한 거니까.”
“그래도 이건 아니야.”
해나의 단호한 대답에 서울은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가 놓았다. 해나는 무슨 자격으로 이러는 걸까?
“왜?”
“어?”
“너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건데?”
“그게 무슨 말이야?”
해나의 태도는 다소 이상할 정도였다.
“세인 씨랑 나랑 괜찮다고 하는 거잖아.”
“안 무섭니?”
“뭐?”
“무슨 말이야?무섭다니?”
유정이 곧바로 끼어들려고 하자 서울은 인상을 구겼다. 이런 건 유정이 알 이유도 없는 거였다. 아니 애초에 자신도 몰랐어도 되는 일을 가지고 해나가 자꾸만 여러 사람에게 옮기는 거였다.
“송해나 그만 둬.”
“뭔데?”
유정이 궁금증을 드러냈지만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유정은 두 사람을 보며 입을 내밀었다.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그대로 두 사람을 지나서 집으로 향했다.
“미안했어.”
“아니야.”
자꾸만 사과할 일이 생겼다.
“엄마가 그럴 줄. 정말 몰랐어.”
“그래.”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현명하게 행동했으면 되는 거였으니까. 이걸 가지고 모두 다 부산의 문제인 것처럼 말을 해야 하는 이유는 없었는데.
“너에겐 뭐라고 안 했어야 하는 건데.”“그거 잘 한 거야.”
“어?”
“나도 엄마에겐 그랬어야 하는 건데.”
“그래도.”
부산은 춘자가 가엽기도 했다. 하지만 누나가 더 가여운 사람이었다. 자신은 둘 주 한 사람의 편을 들어야 하는 거였고. 그런 거라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서울의 편을 들어주는 게 당연한 거였다.
“아직도 어디에 사는 건지 말은 안 할 거지?”
“응. 넌?”
“어?”
“어디에서 살아?”
“친구.”
“그래?”
부산의 대답에 다소 어색한 기색이 흘렀지만 서울은 다른 것은 더 묻지 않았다. 자신은 물을 자격이 없는 거였으니까.
“아프지 마.”
“안 아파.”
부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럴 일 없어.”
“그래도.”
“그리고 내가 아파도 이제 더 이상 엄마가 누나에게 이상한 짓 하게 두지 않아. 그러니까 그러지 마.”
“그런 거 아니야.”
서울은 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부산이 자신의 동생이라는 게 변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내 동생이 아프다는 거. 그거 이쪽에서도 그다지 달가운 일이 아니니까. 편한 일이 아니니 그래.”
“그래?”
“그럼.”
부산은 혀를 내밀고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도 이런 말을 듣게 된다는 것. 이 자체만으로도 고마웠다.
“연극 안 볼래요?”
“연극이요?”
“싫어해요?”
“아니.”
싫어할 것도 없었다. 그저 바쁘게 살다 보니까 단 한 번도 연극 같은 것을 보지 못한 게 전부였으니까.
“그런데 별로 안 좋아하는 거 같아.”
“그러니까.”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용준에게 비밀로 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 이상한 데이트 비슷한 걸 계속 하려면 그도 알아야 했다.
“연극은 본 적이 없어서요.”
“아. 그렇구나.”
용준은 별 것 아니라는 듯 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밝은 거 보죠.”
“보려던 게 있던 거 아니었어요?”
“연극은 다 좋아요.”
“그래요?”
용준은 사랑을 받은 사람이 분명했다. 저런 말을 하면서도 저렇게 해맑게 웃는 사람이라는 것. 신기했다.
“그럼 연극은 이쪽에서 정할게요.”
“그렇게 해줘요.”
신기한 사람이었다. 너무나도 밝은 사람. 자신과 다른 사람. 좋은 사람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거리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돈을 그렇게 밝히니?”
“네.”
서울의 간단한 대답에 철수 모친은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용 증명이라니. 어이가 없구나.”
“고소장 안 보내는 걸 다행으로 아시죠.”
“뭐라고?”
“철수 공무원 공부 때문에 참은 거니까요.”
철수 모친은 물컵을 세게 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금방이라도 서울에게 뿌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돈은요?”
“여기 가져왔어.”
철수 모친은 쇼핑백을 내밀었다. 대충 보니 각종 지폐가 섞여 있었고 정확한 금액도 알 수 없었다.
“계좌로 주세요.”
“뭐?”
“그래야 증거가 남죠.”
“무슨.”
철수 모친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제가 이 돈을 받고 나서 받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잖아요. 아주머니는 그게 걱정도 안 되시는 건가요?”
“뭐라고?”
지금 반응을 보아하니 아마 거기까지는 생각을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서울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럼 전 이만.”
“아니.”
“어차피 이거 전부도 아니시죠?”
얼굴이 굳는 걸 보니 확실히 모자라게 가지고 온 모양이었다. 하여간 모든 게 다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럼 다 받아야 하는 거야?”
“네?”
“살던 집이잖아.”
“무슨.”
쌍에 이런 식으로 계산을 할 수 있는 걸까?
“너도 같이 산 건 까야지.”
“제가 정말 고소장 내기 바라시는 건가요?”
“뭐?‘
“그럼 갈게요.”
서울은 더 밝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철수 모친이 멍하니 있는 것을 보며 서울은 그를 두고 돌아섰다.
“다른 역이요?”
“그래.”
“무슨.”
역장의 말에 서울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갑자기 이런 식으로 자신을 보내는 건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제가 왜 그래야 하는 거죠?”
“야간도 한다며?”
“아니.”
그런 이야기가 왜 여기에서 이런 식으로 나오고. 그게 왜 이런 방식으로 해결을 해야 하는 걸까?
“그런 방식은 아니죠.”
“왜?”
“네?”
“이건 내 권한이야.”
“아니.”
아무리 권한이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처리를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이런 식으로 처리할 수는 없는 거였다.
“노조에 진정을 넣겠어요.”
“그만 좀 해!”
갑작스러운 부장의 고함에 서울은 눈이 커다래졌다. 유난히 둘이 잘 맞는다고 생각하던 이런 일까지.
“무슨?”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뭐라고요?”
이건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안 참아요.”
“뭐라고?”
“안 참는다고요.”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대단한 권한을 가지신 분이. 그 권한을 사용해서 왜 제가 본사에 가게 돕지 못하시는 거죠?”
“뭐라고?”
“그저 귀찮은 일을 떠넘기는 거고 그냥 놀리려는 거잖아요. 저 이런 식으로 물러날 수 없습니다.”
“뭐라는 거야?”
부장이 앞으로 오려고 하자 서울은 그를 노려봤다.
“치졸해.”
“뭐?”
“남자 둘이.”
“무슨?”
“다른 파트 부장님은 안 이러는 거 아시죠?”
서울의 지적에 부장은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부장님. 제대로 생각을 하세요. 역장님. 지금 정년 두 달도 안 남았어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나오시다가. 제가 정말로 이거 언론에도 찌르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혼자 남은 분이 다 책임을 질 수도 있어요.”
“내, 내가 뭘 했는데?”
“아니. 최 부장.”
부장은 서류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역장님도 잘 생각하시죠.”
서울은 차가운 눈으로 역장을 응시했다. 부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 셔츠 단추를 풀었지만 서울은 겁이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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