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장
“들어왔네.”
허무했다.
“돈.”
진작 보낼 걸. 내용 증명의 힘이란 대단했다.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 동안 고마웠어요.”
“아.”
서울의 인사에 세인은 턱을 만지작거리면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까칠한 턱수염이 그의 마음 같았다.
“그럼 식사라도 할래요?”
“네?”
“이제 해나도 불러서.”
“아.”
“아직 불편한가요? 화해는 해야죠.”
화해를 해야 하는 걸까? 굳이 불편한 상황에서 그런 것을 통해서 애써 넘기려는 이유 같은 것은 없어도 될 거 같았다.
“싫은 거예요?”
“모르겠어요.”
서울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짧은 헛기침. 자신도 어떤 게 옳은 건지 어려웠다.
“사실 해나랑 저. 이미 그렇게 싸운 건데. 굳이 다시 친하게 지내자고 억지로 만날 이유도 없는 거 같아요.”
“나 때문이잖아요.”
“아니요.”
세인의 말에 해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래도.”
“제 탓이에요.”
세인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건 결국 자신의 문제인 거였다.
“해나가 저를 제대로 생각을 하지 않는 것. 이것 자체를 부정할 수 없다는 건 세인 씨도 아는 거잖아요.”
“그래도 그 가운데 제가 있지 않았더라면 두 사람 사이에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그건 가짜죠.”
늘 느끼고 있었다.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아.”
“서울 씨.”
“잘 모르겠어요.”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세인은 다른 말은 더 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아니요.”
이런 상황에도 세인은 아침을 차렸다.
“이러지 마요.”
“네?”
“바로 나갈 것도 아니고.”
“괜찮아요.”
세인은 싱긋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한서울 씨가 아니었으면 저는 굳이 식사를 할 생각을 안 했으니까요. 저 한서울 씨가 있어서 많이 건강해졌어요. 조금 더 괜찮아졌고. 이건 누가 뭐라고 해도 한서울 씨가 있어서 가느한 겁니다.”
“에이.”
서울은 입술을 쭉 내밀면서 자리에 앉았다. 자신이 도대체 뭐라고 그런 모든 것들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세인 씨가 자꾸만 그러게 비행기를 태워주면. 저는 정말로 모든 게 제 덕이라고 생각을 할 거예요.”
“사실인 걸?”
“뭐라고요?”
세인의 대답에 서울은 웃음을 터뜨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자신이 도대체 뭐라고 그게 가능한 걸까?
“그러지 마요.”
“네?”
“나 자꾸 기대를 하게 돼.”
“무슨?”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좋은 사람 맞아요.”
서울은 싱긋 웃으며 국을 한 숟갈 먹었다. 따뜻했다. 온 몸에 가득 온기가 퍼지는 기분이었다.
“무슨 공사에요?”
“제가 제안했습니다.”
“네?”
역장과 부장이 굳은 얼굴로 서울을 보더니 그대로 사무실을 나섰다. 서울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무슨 말인 건지.
“뭐예요?”
“제가 제안을 한 거라고요.”
“아.”
용준의 말에 서울은 미소를 지었다. 지금 보니 지금 고치고 있는 곳은 숙소가 있는 공간이었다.
“왜 이런 거예요?”
“아. 야근을 하기 싫었던 건데.”
“아니. 그 말이 아니라.”
용준의 놀란 얼굴을 보며 서울은 살짝 입을 내밀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네? 그럼.”
“나중에 승진하기 어려울 수도 있어요.”
“뭐.”
서울의 말에 용준은 바로 미소를 지으며 씩 웃었다.
“그런 건 괜찮습니다.”
“싫다. 미안하게.”
“그러지 마요.”
서울은 어색하게 웃었다. 너무나도 고마운 사람이었지만 자신으로 인해서 흔들리는 건 원하지 않았다.
“용준 씨도 아는 것처럼. 용준 씨는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인데 이런 일에 나서지 마요.”
“어차피 내가 이런 일에 나서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 저는 승진 같은 거 별로 생각은 없습니다.”
“네? 왜요?”
“저는 저렇게 못해요.”
용준이 턱짓으로 부장의 자리를 가리키자 서울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자신에게도 기회가 있다고 하더라도 저렇게 열심히. 무언가를 성실하게 하지는 못할 게 분명했다.
“대단한 분이기는 하죠.”
“한서울 씨.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도울 수 있는 거면 말해요.”
“알았어요.”
서울은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로 갈 건데?”
“아직 몰라.”
“어?”
해나는 멍하니 서울을 응시했다.
“그러니까.”
“왜?”
“아니.”
서울은 곧바로 미간을 구겼다. 지금 이런 식으로 본다고 해서 바로 방을 뺄 거라고 생각을 한 걸까?
“내가 있는 게 싫니?”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런데 왜?”
서울은 침을 꿀꺽 삼키고 한숨을 토해냈다. 해나와 어색한 순간. 이 모든 것은 사라지지 않을 거였다.
“모르겠어.”
해나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의 입술이 하얗게 질리는 것을 보니 서울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세인 씨 실수에요.”
“어? 아니.”
서울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옷을 들었다. 자신이 굳이 여기에 더 있을 이유는 없는 거였으니까.
“그럼 둘이 식사해요.”
그리고 집을 나왔다.
“저기.”
세인이 바로 따라 나왔다.
“왜 그래요?”
“왜라뇨?”
이걸 모르는 걸까? 아마 모를 수도 있겠지.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다정하게 보이는 선한 사람이니까.
“내가 왜 이러는 거 같은데요?”
“네?”
“몰라요?”
“아니. 모르는 건 아니지만.”
세인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 서울은 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그런 세인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아마 그와 자신의 입장이 다른 만큼. 서로 지금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다를 거였다.
“저거 보라고요.”
“그냥 궁금해서 물은 걸 수도 있잖아요.”
“내가 싫은 거야.”
“그건 아닐 겁니다.”
세인은 곧바로 대답했다.
“그럴 리 없어요.”
“아니요.”
해나는 자신을 싫어했다. 늘 걱정하는 것 같으면서도 자신의 불행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런 거 아니야.”
“한서울 씨.”
“저녁 먹고 올게요.”
“그러지 마요.”
“해나 가라고 하지 마요.”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사이가 나빠졌다고 해서 그렇게 유치하게 행동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럼.”
서울은 그대로 돌아섰다. 세인은 감히 그를 붙잡지 못했다.
“잘 생각한 거야.”
“뭐라고 안 해?”
“내가 왜?”
“그런 건가.”
서울의 반응에 부산은 간단히 대답하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애써 미소를 지으며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나는 그럴 자격 없어.”
“그러네.”
“이건 어차피 네 일이야.”
“그렇지.”
부산은 싱긋 웃었다.
“고맙네.”
“뭐가?”
“누나가 그래도 대답해줘서.”
“무슨.”
부산은 순간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푹 숙였다.
“너에게 있어서 내가 어떤 의미일까?”
“어?”
“좋은 누나이기는 할까?”
“당연하지.”
부산은 바로 고개를 들어 서울을 응시했다.
“무슨.”
부산의 대답에 서울은 미소를 지었다. 뭐가 되었건 동생에게 자신은 그다지 좋은 누나는 아니었다.
“무조건 네 편이라는 거 알지?”
“응.”
“무슨 일이 있어도?”
“응.”
부산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이를 드러냈다. 누군가가 무조건 자신의 편이라는 거. 이건 꽤나 고마운 일이었다.
“혹시라도 무슨 문제나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해도 돼. 엄마에게 하지 말고.”
“그래.”
부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서울의 편이 진작 되어주지 못했던 것. 이게 너무 고마웠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말은 더 하지 않고 묵묵히 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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