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보편적 연애 [완]

[로맨스 소설] 보편적 연애 2018 [40장]

권정선재 2019. 1. 29. 18:05

40

어느 순간부터 이런 식으로 라이브로 전시하는 것들이 경향 같은 게 되더라고요. 사실 처음에는 다소 낯설어서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요즘에 자주 보게 되니 좋더라고요.”

그래요?”

다른 말을 더 할 것이 없었다. 자신은 이런 것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용준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신기했다.

. 재미가 없구나?”

아니요.”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좋아요. 저도.”

용준도 들떠서 앞으로 향했다. 우리는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자신과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었다.

 

어디 아픈 거 아니죠?”

? .”

용준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프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표정이 안 좋아서요.”

그래요?”

서울은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낯설어서요.”

?”

나는 어릴 적부터 이런 곳에 오지 못했으니까.”

그럴 수도 있죠.”

아니요.”

그럴 수 없는 거였다. 데이트를 하면서도 오지 못한 곳이었으니까. 너무나도 이상한 일인 거였다.

너무 악착 같이 살았어. 다른 것 하나 보지 못하고. 그렇게 그냥 앞만 보고 그렇게 살았어요.”

한서울 씨.”

미안해요.”

왜 이렇게 우울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건지.

좋은 시간 보내려고 한 건데.”

아니요.”

용준의 미소에도 그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의 마음이 그저 편하기만 하지 않다는 게 답답했다.

김최용준 씨는 모든 걸 다 해본 사람 같아요. 모든 게 즐겁고. 그저 행복하기만 한 사람 같아.”

나도 안 그래요.”

거짓말.”

사람에게 구김살이라는 게 보이지 않았다. 가끔 그런 사람이 보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곁에 이런 사람이 있으니 더욱 신기하게 느껴졌다. 더 신기한 것은 이런 사람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거였지만, 이건 다른 일이었다.

용준 씨는 내가 왜 좋아요?”

?”

아니.”

자꾸만 묻게 되는 거였다.

이상해서.”

뭐가요?”

?”

서울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나도 나를 알고 있으니까. 내가 그렇게 잘난 사람이 아니라는 거.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왜 한서울 씨가 잘난 사람이 아니라는 거예요? 한서울 씨처럼 좋은 사람. 나는 본 적이 없는 걸요?”

거짓말.”

왜요?”

거짓말.”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 좋은 사람이었지만 자신과 다른 사람이었다.

조금 더 어린 나이에 용준 씨를 만났더라면. 아니면 우리가 동갑이 아니라면 더 편했을 거예요.”

그래서 불편해요?”

.”

서울이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자 용준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입술을 살짝 물었다.

왜 그렇게 느껴요?”

용준 씨가 너무 좋은 사람이라서 자꾸만 이게 느껴져요. 당신이 나에게 좋은 것을 하나 해줄 때마다. 내가 그걸 하지 못했던 그 모든 시간들. 그것들이 다 고스란히 나에게 다가오는 거 같아.”

그러라고 해주는 거 아니에요.”

알아요.”

그럴 리가.

그런데 느껴져.”

이상한 거였다.

우울하죠?”

아니요.”

서울의 물음에 용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모든 것을 다 편안하게 해주려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 거였을까? 자신은 철수와 만나던 시절에도 저렇게 굴지 못했다.

사람이 어릴 적 사랑을 받아야 커서 그 사랑을 나눠줄 수 있다는 쇼 프로그램 진행자의 말. 그 말을 그저 하는 말이라고만 생각을 했는데. 요즘 들어서 그게 절실하게 느껴지는 거 같아요.”

그래요?”

. 그래요.”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나 이제 갈게요.”

식사는?”

아니요.”

밥까지 먹고 싶지 않았다.

미안해요.”

사과는 그만 해도 돼요.”

?”

자꾸.”

.”

그랬다. 자꾸만 사과를 하고 있었다. 그럴 이유는 없다고 하지만. 자꾸만 사과가 나오는 것이 사실이었다.

용준 씨가 너무나도 좋은 사람이라서. 내가 이 옆에 있으면 자꾸만 이런 생각이 더 드는 거 같아.”

그러지 마요.”

알았어요.”

미소를 지으면서도 마음이 너무나도 무거웠다. 자신이 이 모든 것을 누려도 되는 건가. 너무 어려웠다.

 

한서울. 정말.”

해나와 유정. 두 사람을 제외하면 친구도 없었는데 연락을 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부산에게도 할 수도 없었다.

외롭다.”

세인은 일이 많은지. 요 근래 점점 퇴근하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었다. 물론 이르게 온다고 해도 다를 건 없지만.

정말 싫다.”

세상에 혼자 있는 기분이었다.

 

예전에 읽었었는데요.”

그런데 어른이 되어 읽으니 느낌이 전혀 다르더라고요. 조금 더 각자의 입장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된달까?”

세인이 내민 책을 보며 서울은 입을 내밀었다. 어린 왕자. 조금 특이한 동화라고 기억되는 책이었다.

제가 정말 좋아하거든요.”

그래요?”

. 정말로.”

세인은 커피를 마시며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어린 왕자를 보면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게 느껴지는데. 그러면서도 그 안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거? 그 안에서 어떤 품위를 잃지 않는 그 모습. 그런 게 뭔가 묘하게 멋지더라고요.”

그러네요.”

서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인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로 이야기 속 인물이 그렇게 느껴졌다.

부담을 주는 거 아니죠?”

아니요.”

책 주면 불편해 해서.”

아니에요.”

서울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뭐.”

그럼. 쉬어요.”

.”

다시 문을 닫고 서울은 한숨을 토해냈다.

.”

어차피 할 것도 없었으니까. 서울은 침대에 책을 들고 누웠다. 그리고 엎드려서 첫 장을 펼쳤다.

 

초등학교 때 제주도 몇 번이나 갔었는데.”

그래요?”

귤을 먹으면서도 이런 이야기가 가능한 사람이었다.

아람단으로도 가고.”

.”

그런가?

한서울 씨는 제주도 언제 가봤어요?”

아직 못 가봤어요.”

. 그래요.”

.”

분명히 미소를 지으면서 넘기려고 하지만, 용준의 얼굴 어딘가에 아차하는 표정이 스치는 것이 보였다.

비행기 안 타봤다니까.”

그럴 수 있죠.”

아니요.”

그럴 수 없었다.

서른인데?”

그래. 비행기를 타보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게 뭐 대단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타보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자주 타서 여행을 하는 사람과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제가 워낙 여행을 좋아해요.”

내가 이상하죠?”

아니요.”

서울의 물음에 용준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이상하잖아.”

아니라니까요?”

정말.”

서울은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머리가 다시 왕왕 울리는 기분. 자신과 용준은 너무나도 달랐다.

왜 그러지?”

용준은 서울의 눈을 물끄러미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일이 아닌데.”

그러게요.”

사소한 것. 작은 거였다.

정말.”

그럴 게 아니었다. 이런 기분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썩 유쾌하지 않다는 것. 그것이 조금씩 느껴지고 있었다.

용준 씨는 나랑 있으면 좋아요?”

당연하죠.”

그렇구나.”

한서울 씨.”

아니요.”

용준이 조심스럽게 얼굴을 살피려고 하자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머리가 더욱 복잡해졌다.

오늘은 집에 갈게요.”

데려다 줄게요.”

혼자 갈 수 있어요.”

용준은 잠시 멈칫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이 혼자 갈 수 있다는데 다른 말을 더 할 것은 없었다.

그럼 들어가요.”

화가 난 건 아니죠?”

내가 화가 왜 나요?”

용준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한서울 씨를 너무 바쁘게 했네.”

아니요.”

아니긴.”

그럼 갈게요.”

그래요.”

서울은 용준을 한 번 더 보고 돌아섰다. 지금이라도 그가 잡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이대로 그냥 보내주기를 바라는 마음. 두 가지가 같이 있었다. 자신이 바라는 것. 그게 뭔지 스스로도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