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장
“정말.”
출근을 하면서도 죽을 두 가지나 끓여 놓고 간 세인에 서울은 한숨을 토해냈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도대체 뭐야.”
자신이라면 절대 못할 일.
“정말.”
아마 그의 현재 상태를 제대로 몰라서 이렇게 한 것인 모양이었다. 흰 죽과 달걀죽을 보고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고마운 사람이었다. 뭐라고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마웠다.
“괜찮아요?”
“네.”
용준이 호들갑을 떠는 것을 보며 서울은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네?”
“이미 지난 거거든요.”
“그래도요.”
“괜찮아요. 이제.”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로 약하지도 않고. 그리고 이미 병원에 가서 링거도 다 맞았고. 이제 정말로 괜찮아요.”
“회사 일 때문이죠?”
“뭐.”
아예 아니라고 할 수 없을 거였다. 하지만 너무나도 많은 일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그 모든 것들이 복합적인 영향을 준 거였고, 비단 그 중 하나라고만 할 수는 없는 일일 거였다.
“나에게도 연락을 하지 그랬어요?”
“그럴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요?”
“바로 퇴원했거든요.”
“왜요?”
“가족에게 연락이 가서?”
“아.”
용준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보니 자신이 얼마나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인지 다시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럼 우리 든든한 거 먹을래요?”
“뭐 먹어요?”
“추어탕?”
“으.”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음식이었다.
“막 그거 미꾸라지 그냥 있고 그러지 않아요?”
“다 갈아서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그래요? 그럼 갈까요?”
다행히 역장과 부장은 더 이상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아마 이쪽에서 어떻게 나올지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힘이 좀 나는 거 같아요?”
“아직 모르죠.”
“그래요?”
용준이 계속 자신을 조심스럽게 보는 것을 보며 서울은 고개를 저었다. 이러라고 말을 한 게 아니었다.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고. 용준 씨에게는 거짓말을 하면 안 될 거 같아서. 그래서 하는 말이에요.”
“알아요.”
“알기는?”
용준은 혀를 내밀며 어색하게 웃었다. 서울은 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그래도 오늘 야간은 내가 할게요.”
“아니요. 같이 해요.”
“한 사람만 해도 돼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용준의 말에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많은 배려를 해주는 사람이었다. 정말 고마운 사람이었다.
“고마워요.”
“이 정도를 가지고.”
서울은 싱긋 웃었다. 정말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렇게 역으로 내려가다가 서울은 그대로 몸이 굳었다.
“이 년이 여기에 있었네?”
춘자였다.
“어제 병원이었잖아?”
“아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여기에 온 걸까? 당신이 여기에 오는 것을 서울이 반길 거라고 생각을 한 걸까?
“네 앞으로 보험금 나오지?”
“뭐라고?”
“그거 내가 좀 써야겠다.”
“무슨?”
“그거 내가 들라고 해서 든 거잖아.”
“아니.”
이럴 수가 있는 건가?
“무슨 말이 그래?”
“뭐가?”
“아니.”
아마 본인의 말에서 무슨 잘못이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머리가 지끈거렸다.
“지금 나에게 그 돈을 달라고 할 수가 있어? 나보고 지금 괜찮은 건지. 그거 물어야 하는 거 아니야?”
“괜찮잖아.”
“아니.”
괜찮았다. 분명히 괜찮았다. 하지만 아무리 괜찮아도 이런 식의 대우는 절대로 아니었다. 이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나 정말로 힘들어요. 나 너무나도 아팠다고.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이런 식으로 나에게 이래?”
“아니 지금 아무렇지도 않으면 그걸로 그만이지. 망할 년이 지 엄마한테 이렇게 대들 수가 있어?”
“지나치시군요.”
용준이 나서자 춘자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쪽이네?”
“네?”
“이 년 아무 것도 없어. 이런 년한테 붙어 있어봐야 얻어 먹을 거 하나 없으니까. 괜히 여기에 뭐 바라고 있지 마.”
“무슨.”
어떻게 딸에게 이런 식으로 말을 할 수가 있는 걸까?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말도 안 되는 거였다.
“내가 도대체 누구니?”
“뭐?”
“됐어.”
서울이 그대로 비켜서 가려고 하는데 춘자가 거칠게 서울의 팔을 잡아 당겼다. 그리고 순간 서울은 중심을 잃어서 그대로 계단을 굴렀다.
“한서울 씨!”
용준이 놀라서 달려갔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이 되었다.
“마, 망할 년.”
춘자는 이 말만 남기고 계단을 올라갔다.
“괜찮아요?”
“네? 네.”
일어나려고 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서울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정말 너무 서러웠다.
“부러진 건 아니라니 다행입니다.”
“그러게요.”
그래도 몸 하나는 튼튼한 게 다행이었다. 그 정도를 가지고 부러졌다고 하면 그건 또 고생일 거였다.
“퇴근해야죠.”
“아니요.”
“하지만.”
“싫어요.”
이 정도를 가지고 퇴근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도 않았고, 이대로 물러서고 싶지도 않았다.
“어차피 갈 곳도 없고요.”
“하지만.”
“괜찮아요.”
아프기는 하지만 붓지도 않았고. 주사를 맞고 나니 확실히 괜찮았다. 생채기가 나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괜찮았다.
“룸메이트 있잖아요.”
“그쪽에게 더 의지하고 싶지 않거든요.”
“그럼 나는요?”
“의지하고 싶은 걸요?”
서울의 말에 용준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서울도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서 싫어요?”
“아니요.”
용준의 대답에 서울은 싱긋 웃었다.
“누나.”
“여기에 왜 와?”
“괜찮아?”
퇴근하려고 사무실을 나서던 서울의 얼굴이 굳었다.
“괜찮냐고?”
어떻게 이런 질문을 하지.
“결국 그 사람 편을 드는 거니?”
“아니야.”
부산은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그냥 누나가 다쳤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래도 퇴근한 후에 찾아와야 할 거 같아서 온 거야.”
“괜찮아.”
서울이 그대로 가려고 하다가 비틀하자 부산은 손을 댔다. 하지만 서울은 그 손을 거칠게 밀어냈다.
“한부산 손 대지 마.”
“누나.”
“아니.”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푹 숙였다.
“알아. 너에게 이렇게까지 모질게 이야기를 할 것은 없다고. 하지만 너를 보면 자꾸만 그 사람이 생각이 나.”
“미안.”
“아니.”
부산의 사과를 듣고 싶지도 않았다.
“됐어.”
“하지만.”
“그만 하라고.”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푹 숙였다. 곧 용준이 퇴근할 거였다.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네가 정말로 나를 누나로 생각이라도 한다면 그 사람이 나를 찾아오지 못하게. 그거나 막아줘.”
“그건.”
“할 수 있니?”
“해볼게.”
“그래.”
서울의 말에 부산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러니까.”
“나 너랑 다른 말 더 하는 것으로도 힘들어.”
“아니.”
“정말로.”
서울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하고 물끄러미 부산의 눈을 응시했다. 부산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알았어.”
“그럼 가.”
부산이 멀어지고 나서야 용준이 곁에 다가왔다.
“뭐 먹으러 갈래요?”
“다 봤죠?”
“네? 그게.”
“다 본 거잖아.”
“네.”
서울의 원망스러운 말에 용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봤어요.”
“정말 싫어.”
“한서울 씨.”
“너무 싫어.”
좋아하는 사람. 호감을 갖는 사람에게 이 모든 것을 다 보여준다는 것. 이거 자체가 너무나도 싫었다. 부끄러웠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을 하더라도 자신은 그와 같아질 수가 없는 거였다.
“먼저 갈게요.”
서울은 도망이라도 가는 사람처럼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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