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장
“장난감 정말 좋아하는구나.”
“네. 이런 거 좋아해요.”
용준은 해피밀 장난감 사진을 찍으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자신은 저런 좋아하는 것이 없는데 신기했다.
“어릴 적. 어머니께서 제가 힘들게 모은 것들을 모두 다 사촌동생에게 주셨어요. 아마 당신이 생각을 하시기에 그것을 가지고 놀기에 너무 컸다는 것이었지만 상의도 없는 건 꽤나 자인한 일이었죠.”
“저런.”
“그러니까요.”
이건 자신도 어렴풋이 공감하는 거였으니까.
“저는 늘 동생에게 양보했어요.”
“어쩔 수 없지만 서운한 일이죠.”
“그러니까요.”
서로의 닮은 부분이 아주 조금은 좋았다. 그때 서울은 시간을 확인했다.
“역사는 언제 열어요?”
“다섯 시요.”
“이르네요.”
“기다리는 분들도 계시니까요.”
“아.”
근무 시간이 다소 늘어나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는 것.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사람이 자신을 좋아해준다는 것이 고마웠다. 자신도 이런 사람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서울이었다.
“그럼 같이 열러 갈래요?”
“추울 텐데요.”
“나도 직원이에요.”
서울의 늠름한 말에 용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그럼 갈까요?”
“그래요.”
용준은 서울이 먹은 것까지 모두 다 정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운 사람이었다. 너무나도 고마운 사람이었다.
“전시오?”
“하긴 지금 가기에는 조금 피곤하죠?”
“아니요.”
용준의 물음에 서울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야간 근무를 하고 나서 데이트 나쁘지 않았다.
“다만 전시를 한 번도 안 가봐서요.”
“좋네요.”
“네? 뭐가 좋아요?”
“나랑 다 처음 하는 거 아니에요?”
“뭐야.”
“그거 좋아요.”
용준의 밝은 미소에 서울은 괜히 마음이 밝아지는 기분이었다. 너무나도 고마운 사람이었다. 본인의 입장에서는 별 것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상대가 불편하지 않게 느끼게 해준다는 거니까.
“그럼 정리하고 올게요.”
“네.”
용준은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서울은 벽에 기대서 이리저리 목을 풀다가 순간 지갑을 놓고 온 사실을 깨달았다. 용준에게 전화를 해서 가져다 달라고 할까 하다가 역장이 보기 싫어도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저기 지갑 놓고 가서.”
“잤냐?”
사무실 안에서 왜 용준이 나오지 않나 싶었는데 이런 마로 안 되는 더러운 이야기를 듣는 거였다.
“지나치시군요. 사과하시죠.”
“사과?”
용준의 항의에 역장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무슨 사고 방식이면 저런 말을 하는 건지.
“나란히 아주.”
“지금 뭐 하시는 거죠?”
“여주인공 왔네.”
작정한 모양이었다.
“연애를 할 거면 밖에서 해야지. 그렇게 붙어먹고 싶어서 하나는 야간 근무를 할 수 있는 역으로 가지 않겠다고 그 난리를 하고. 다른 하나는 역을 고쳐달라고 하고. 아주 두 사람 웃기지도 않아.”
“지금 성추행인 거 아시죠?”
“뭐?”
역장은 테이블로 책상을 쳤다.
“이게 무슨 문제야?”
“그럼 제가 이게 무슨 문제인 건지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뭐?”
“기대하시죠.”
“저도 같이 하죠.”
두 사람의 말에 역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이게 다였다. 다른 말을 더 하지도 못한 채 두 사람을 노려보는 것을 보며 그대로 나왔다. 너무 억울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미안해요.”
“또 사과.”
용준의 사과에 서울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김최용준 씨가 왜요?”
“나 때문에 이런 일들이 생기는 거니까. 나라도 조금이라도 고분고분했다면 안 그랬을 겁니다.”
“아니요.”
서울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용준이 무엇을 하건 자신은 이미 한 번 미움을 받은 사람이었으니까. 자신의 모든 행동은 역장과 부역장의 눌림이었을 거다. 그나마 지금 용준이 있어서 다행이었던 거니까.
“전시 가요.”
“괜찮겠어요?”
“그럼요.”
서울은 부러 더 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없네.”
왜인지 모르겠지만 당연히 집에 가면 세인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다 그가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지 않으니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이러면 안 되는 건데 되게 묘한 기분이었다.
“치킨.”
서울은 잠시 자신의 손에 있는 봉투의 무게를 느끼더니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식탁에 올려두었다.
“아.”
갑자기 진동이 와서 봤더니 춘자였다.
“왜.”
서울은 그대로 전화를 엎어두었다.
“정말.”
전화가 끊기고 바로 문자가 왔다.
‘엄마야. 지금 돈이 너무 필요해. 엄마가 네가 돈을 안 주면 감옥에 갈 지도 몰라. 도와줘. 응? 딸. 도와줘.’
도와달라니. 어떻게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가 있는 걸까? 자신에게 어떻게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하는 걸까?
“정말.”
서울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자 스스로가 너무나도 혐오스러웠다.
“바보도 아니고.”
그 사람에게 다시 가려고.
“미쳤어.”
서울은 한숨을 토해냈다.
“정말.”
머리가 너무 울렸다. 그리고 방이 갑자기 돌기 시작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그대로 바닥이 가까워졌다.
“이제 일어나요?”
“아.”
서울이 갑자기 일어나려고 하자 세인이 고개를 저었다.
“병원입니다.”
“네?”
“한서울 씨 쓰러졌어요.”
“아.”
그 순간 별 것 아니라고 생각을 하던 것들이 기억이 났다. 자신도 모르게 쓰려졌던 것. 그게 떠올랐다.
“미안해요.”
“왜 사과를 해요?”
“그러니까.”
“한서울 씨가 사과를 할 이유 없어요.”
“네.”
그렇다는 건 알고 있지만 괜히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그래야 할 거 같았다.
“치킨이 있어서 같이 먹자고 하려고 하는데. 한서울 씨의 방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더라고요. 문을 열어서 미안해요.”
“아니요.”
세인이 아니었더라면 자신은 지금 이런 시간을 보내지 못했을 수도 있었으니까. 아마 혼자 쓰러졌을 거였다.
“고마워요.”
“보호자를 불러야 한다더라고요.”
“네?”
“그래서.”
“아.”
어쩔 수 없을 거였다.
“미안합니다.”
“아니요.”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 사람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냥 가고 싶었다.
“좀 도와줄래요?”
“네?”
“도망을 가야 할 거 같아서.”
“아.”
세인은 재빨리 간호사를 불렀다. 링거 바늘을 뽑고, 옷을 추스르고 원무과에서 계산을 하는데 춘자와 부산이 보였다. 서울은 재빨리 몸을 숙였다.
“저기.”
“잠시만요.”
서울의 다급함에 원무과 직원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다른 말은 더 하지 않았다. 그들이 응급실로 가는 것을 보고 서울은 자세를 바로 잡았다. 직원의 표정에 모든 것을 다 안다는 것이 떠오르자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것까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으니까. 일단 피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다른 것은 더 힘들지 않죠?”
“네.”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에서도 다른 문제가 있다고 한 건 아니니까.”
“그래도 그 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거니까 조금은 쉬어야 한다는 말을 들은 거 알죠? 쉬어야 해요.”
“하지만 쉴 수 없잖아요. 직장인인 걸.”
“그러네요.”
세인의 걱정스러운 표정에 서울은 그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의 걱정을 받을 이유는 아니었으니까.
“고마워요.”
“뭐가 그리 고맙습니까?”
“이세인 씨가 아니었더라면 큰일이 날 수도 있었던 거. 이건 누가 뭐라고 해도 사실인 거니까요.”
“무슨.”
세인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한서울 씨 그런데 다른 검사는 더 안 받아도 되겠어요?”
“그럼요.”
서울은 부러 더 씩씩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에서 해마다 검사도 한다고요.”
“그래도.”
“아니요.”
더 이상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문제가 생길 거라면 진작 다른 문제가 더 생겼을 거였다.
“세인 씨가 걱정을 하는 부분이 어떤 부분인지는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그 정도는 아닌 거니까요.”
“그래요. 그럼.”
세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쉬어요.”
“네. 고마워요.”
방에 누웠는데 머리가 멍했다.
“한서울.”
가족을 모른 척을 한 거였다. 결국 자신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였고. 자신의 편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사람도 아무도 없는 거였다. 혼자인 거였고 홀로 있는 거였다. 자신은 혼자였다.
“정말 싫다.”
너무나도 외로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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