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보편적 연애 [완]

[로맨스 소설] 보편적 연애 2018 [42장]

권정선재 2019. 2. 1. 19:40

42

혹시 송별회에 갈 겁니까?”

내가 가면 불편할 거 같죠?”

그래요.”

서울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있으면 사무실에 정적이 흘렀다. 그 동안 낸 돈이 아깝기는 하지만 굳이 그 불편한 자리에 가서 시간을 더 보내는 것 자체가 이상한 거였다.

그럼.”

용준도 불편했으니까. 서울은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돈이 이렇게 남아도 되는 건가?”

춘자에게 돈을 보내지 않으니 월급이 고스란히 모였다. 딱히 쓰는 돈이 없으니 더 그럴 거였다.

신기하네.”

여기에 철수가 돌려준 돈까지. 많았다.

한서울 잘 사네.”

서울은 벽에 머리를 기댔다. 머리가 울렸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 저들은 그저 그를 기구처럼 보는 거 같았다.

다들 바쁘게 사네.”

그런데 이상하게 저 안에 자신의 자리는 없어 보였다.

 

내 방.”

원룸텔이지만 건물주가 꽤나 신경을 써서 지은 거라고.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이야기를 하더니 그게 사실인 모양이었다. 다른 방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복도에서의 소리가 가끔 들리지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심심하데.”

서울은 눈을 감았다.

혼자 산다는 거.”

서울은 다시 침대에 누워서 몸을 둥글게 말았다. 이렇게 있으면 조금이라도 외로움이 사라질까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외로움이 그대로 그의 몸으로 마음으로 모두 다 파고들었다. 너무나도 서럽게.

 

.”

이제 돈이 부족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돈을 좀 달라는 춘자의 문자.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질린다.”

이 말을 제외하고는 다른 말은 생각이 나지도 않았고, 할 수 있는 말도 없었고 어울리는 말도 없었다.

싫다.”

서울은 눈을 감았다. 머리가 멍했다.

할 게 없네.”

야간이 끝나고 난 아침.

심심해.”

연락할 사람도 없었다.

한서울.”

자신의 지금이 너무나도 낯설게만 느껴졌다.

 

놀러 와도 되는 거죠?”

당연하죠.”

세인의 말에 서울은 싱긋 웃었다.

책 구경 좀 할게요.”

그래요.”

열심히 책 정리를 하는 세인을 보며 서울은 그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좋아해요?”

?”

나는 여기 사장이에요.”

.”

손을 내미는 그를 보며 서울은 멍하니 있다가 그 손을 잡았다.

이유미에요.”

한서울입니다.”

유미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차 한 잔 할래요?”

? . 좋아요.”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인은 이쪽을 보면서 엷은 미소를 지었다. 서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가리는 차 있어요?”

사실 차를 잘 몰라요.”

나도 사실 잘 몰라요. 후후후.”

유미의 대답에 서울은 멍하니 있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편안한 사람이었다.

보이차는 알죠?”

? .”

녹차를 덖어서 발효한 건데. 꽤 향이 좋아요.”

그의 말처럼 정말로 향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한 모금 마시고 나니 온 몸에 온기가 퍼지는 느낌이었다.

세인 씨가 여기에 와서 가장 먼저 말한 게. 누군가가 일상을 무료하게 느끼는데 그를 위한 책이 뭐가 있을까였어요.”

.”

자신에게 선물한 책.

좋은 사람 같네.”

그런데 저는.”

아무 사이도 아니네요.”

서울은 혀를 살짝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사귀는 건 아니었으니까.

내가 이렇게 오지랖인 거 불편하죠?”

아니요.”

사람을 잘 못 만나서. 딱 봐서 선한 사람이 오면. 자꾸만 이렇게 의미도 없이 말을 걸고 싶어지네.”

아니에요.”

약간 낯설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호감 같은 것이 느껴져서 그렇게 불편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사실 걷지 못해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사람들이 나에게 오게 만들려고 시작을 한 서점이거든요.”

.”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주인의 취향이 고스란히 다 드러나는. 그러면서도 따스한 느낌이었다.

책을 좋아하시나 봐요.”

그럼요. 서울 씨는?”

저는 잘 안 읽어요.”

사실이었으니까.

학교 다닐 적에 그저 시험을 보기 위해서 책을 읽다 보니까. 왠지 책이라고 하면 낯설게 느껴져요.”

그게 문제야.”

유미는 정말로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지.”

?”

아니.”

유미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렇다고요.”

.”

재미있는 분이었다.

아무튼 둘이 밥 먹고 오면 되겠네?”

밥이요?”

그렇게까지 세인의 시간을 빼앗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여기를 누군가는 지켜야 해서 교대로 먹거든요. 세인 씨. 서울 씨랑 같이 식사 하고 와요.”

? .”

세인은 다가와서 고개를 갸웃했다.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반가웠습니다.”

그래요.”

유미는 다시 손을 내밀었다. 서울은 그 손을 잡고 살짝 힘을 줬다. 뭔가 긍정적인 느낌의 사람이었다.

 

이세인 씨가 좋은 사람이라서 곁에도 다 그런 사람인가 봐요.”

그럴 리가.”

세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우리 사장님 좋죠?”

.”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신기해.”

그러니까요.”

장애를 가진 것과 상관없이 그렇게 밝은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 그리 많지 않기에 신기했다. 편안한 사람이었다.

사실 저도 처음에는 너무 저에게 관심이 많으셔서 약간 이상한 분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이상한 분이요?”

한서울 씨는 안 그랬어요?”

안 그랬는데.”

?”

일러야지.”

서울의 대답에 세인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세인 씨에게 호감이 갖나 보다.”

그렇죠. 제가 좀.”

세인이 턱을 브이로 그리자 서울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여기 유명한 곳인가 봐요.”

꽤 유명하죠.”

두 사람이 들어오기 전에는 그래도 테이블이 있었는데. 두 사람이 자리를 잡기가 무섭게 빈 자리가 사라졌다.

원래 연남동에 있는 곳이었는데. 여기에도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아래 서점도 그렇게 옮겨온 거고.”

.”

서울은 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곧 주문한 카레가 나왔다. 어제의 카레. 이름도 특별했다.

이거 왜 어제의 카레일까요?”

카레가 하루 뒀다가 먹으면 더 맛있다고 하던데요?”

? 그게 뭐야?”

그러면서도 그 작은 이름 하나에도 재미가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한 입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그냥 집에서 먹는 별 것 아닌. 그런 느낌의 카레가 아니라. 정말 맛있는 카레였다.

너무 맛있는데?”

그렇죠.”

서울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서 세인도 괜히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 데리고 와서 다행이었다.

이세인 씨는 이 맛있는 걸 매일 먹어요?”

매일은 아니고요.”

그래도.”

그럼 한서울 씨도 자주 와서 같이 먹죠.”

그래야겠다.”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ᅟᅵᆫ도 그런 서울을 물끄러미 보다가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여기가 거기였구나.”

유명해요?”

? .”

세인의 물음에 서울은 목소리를 낮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기업 출신 여성이 혼자서 모든 걸 다 이룬? 여기 전부 다 그 분이 마케팅하는 그런 곳이잖아요.”

. 그 분이구나.”

봤어요?”

? .”

대단하죠?”

.”

세인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한서울 씨도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해서.”

내가 뭘요?”

야간도 하고.”

에이.”

서울은 입술을 쭉 내밀었다. 남자 직원들은 당연하게 하는 것. 그것도 자신은 약간의 오기로 하는 거였다.

누구라도 하는 걸요?”

그거 대단한 거예요.”

그래요?”

그럼요.”

별 것 아닌 것도 고마운 사람. 세인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럼 나는 이제 일을 하러 가야 해요.”

그래요. 오늘 나랑 놀아줘서 고마워요.”

저야 말로 영광이었습니다.”

서울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로 유쾌한 사람이었다. 사소한 부분에서도 미소를 짓게 만든다는 것. 자신은 하지 못하는 거였기에 더욱 신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