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장
“연락 고마워.”
“아니야.”
부산의 인사에 서울은 고개를 저었다.
“이게 뭐라고.”
“그래도.”
부산의 밝은 표정에 서울은 한숨을 토해냈다.
“좀 어때?”
“어?”
“너는?”
“잘 지내.”
부산의 밝은 얼굴을 보니 그나마 다행인 것 같았다.
“집은?”
“안 가지.”
“그래?”
“응. 왜?”
“아니야.”
그럼 춘자가 왜 돈이 필요하다고 하는 건지 모를 수도 있었다. 굳이 물을 것도 없었으니까. 자신과 관련이 없는 거였다.
“누나는 좀 안 좋아 보여?”
“그래?”
더 할 이야기는 없었다. 서울은 그저 부산이 밥을 먹는 것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이 정도. 이렇게 보는 것만 해야 하는 거였다.
“너 이제 세인이 집에 안 사니?”
“갑자기 무슨 말이야?”
“아니.”
이제 와서 미안하기라도 한 걸까?
“그거 너랑 관련 없는 거 아니야?”
“어떻게 그래?”
“뭐?”
“그게 왜?”
“왜라니?”
해나의 대답에 서울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해나와 관련이 없는 일이었다. 자신과 세인 사이의 일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네가 나를 속였다는 거야.”
“속였다고? 내가?”
웃기지도 않는 소리였다.
“뭘 속였다는 건데?”
“뭐라고?”
서울의 반응에 해나는 눈을 깜빡이며 입을 내밀었다.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송해나. 네가 지금 너랑 나의 관계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정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우리 두 사람 아무 사이 아니야. 더더군다나 세인 씨에 대해서 가타부타 말을 할 사이도 아니고.”
“친구잖아.”
“친구?”
친구라니. 친구라는 사람은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아니 그렇게 행동할 수 없는 거였다.
“내가 힘들 때 넌 뭐라고 했는데?”
“그건 다르지.”
“안 달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필요로 하는 그 순간. 그 순간에 그가 없었다는 게 사실이었다.
“소해나. 너는 내가. 가장 의지하던 사람이었어. 그런데 너는 나를 그렇게 대하지 않았잖아. 안 그래?”
“미안했어. 그건.”
“늦었어.”
서울의 싸늘한 대답에 해나는 인상을 구겼다.
“다른 사람은 다 몰라도. 너는 나에게 친구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우리 두 사람 친구냐고.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야. 다른 사람은 다 할 수 있어도. 송해나. 너는 나에게 그러면 안 돼.”
서울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정말 네가 다른 변명도 하지 않고 그저 사과만 할 줄 알았어. 그런데 이런 거. 너무 웃기네.”
서울은 다른 말을 더 듣지 않고 돌아섰다. 머리가 왕왕 울리는 기분이었다.
“한서울 씨?”
“네? 네.”
용준은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아니요.”
용준은 다른 말을 더 물어보려고 하다가 바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아. 제가 오늘 서류 작업을 할 게 있어서요. 야간 당직은 저 혼자 해도 괜찮다고. 그 말 하려고요.”
“어떻게 그래요?”
서울의 물음에 용준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러는 걸요?”
“그래도.”
“괜찮아요.”
서울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입술을 살짝 물었다.
“알았어요.”
“그래요.”
“혹시 무슨 일 있으면 말하고요.”
“물론이죠.”
용준의 서글서글한 미소에 서울은 자신도 모르게 더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이 조금이나마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잘도 주무시네.”
새로 온 부장은 이런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인지 코까지 드르렁 드르렁 골면서 잘 자는 중이었다.
“한서울.”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며 눈을 감았다. 해나에게 지나쳤나 싶으면서도 그가 한 일이 생각이 나서 억울했다.
“모르겠다.”
이불을 얼굴까지 뒤집어 썼다.
“손님이요?”
누구지? 하고 고개를 내밀다가 표정이 굳었다. 춘자였다. 아침부터 그가 사무실로 자신을 찾은 거였다.
“너 왜 연락을 안 받아?”
“몰라서 물어?”
“뭐야?”
춘자는 갑자기 고함을 빽 질렀따.
“엄마한테.”
“엄마?”
서울은 어이가 없어서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이런 식으로 행동을 하면서 엄마라니.
“당신이?”
“망할 년.”
춘자가 손을 들자 영준은 그 앞을 여유롭게 막아섰다.
“여기 한서울 씨가 일하는 곳입니다.”
“안 비켜?”
“경찰 부를 거야.”
서울이 112를 누른 화면을 보여주자 춘자는 손을 내리고 아랫입술을 세게 문 채로 뒤로 물러섰다.
“빌어먹기 딱 좋을 년. 제 어미가 이렇게 오는데. 제 어미 귀한 줄을 모르고 저렇게 함부로 굴지.”
서울은 망설이지 않고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스피커폰을 누른 채로 입에 가져갔다.
“여기 광명사거리역 사무실인데요.”
“아주 오살할 년.”
자기 딸에게 저렇게까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면서도 경찰은 싫은 것인지 춘자는 바로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가는 것을 보기가 무섭게 서울은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저기.”
“아. 네.”
경찰에게 안 와도 된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용준이 결국 대신 전화를 받아서 통화를 이어갔다. 온 몸에 힘이 다 빠지는 기분이었다.
“이제 좀 괜찮습니까?”
“아니요.”
용준이 차를 건네며 묻자 서울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건 익숙해지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직장까지 올 생각을 어떻게 하는 건지.
“정말.”
“한서울 씨.”
용준은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더 이상 다른 말을 더 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서울을 살폈다.
“한서울 씨 퇴근해.”
“네?”
그때 사무실로 돌아온 부장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정말로 별 것 아니라는 듯 말하며 씩 웃었다.
“어차피 이제 일도 없고.”
“하지만.”
“아유. 이제 어차피 두 시간 남았어. 역장님께는 내가 말할게. 그리고 용준 씨가 좀 도와주고.”
“네. 알겠습니다.”
부장은 이 말을 남기고 다시 나갔다. 서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들어가요. 괜찮을 거야.”
용준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채근했다.
“네?”
서울은 더 이상 버티지 않았다. 모두의 걱정을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었으니까. 다만 남도 이렇게 해준다는 사실에 더욱 힘이 빠졌다.
“혼자 갈 수 있겠어요?”
“그럼요.”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애도 아니고.”
“애가 아니니까.”
“네?”
“어른이니까. 어른은 힘들어도 힘들다는 소리를 쉽게 할 수가 없으니까. 지금 너무 버겁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가 없으니까. 오히려 그게 더 걱정이 되고. 한서울 씨에게 마음이 가는 거죠.”
“마음.”
중요한 거였다.
“고마워요. 그런데 갈 수 있어.”
“조심히 들어가요.”
“응. 자면 좀 괜찮아질 거예요.”
서울은 짧게 고개를 숙이고 안으로 향했다. 뭐든 스스로 해야 하는 나이니까.
“일찍 오게 됐어요.”
말을 하면서 들어가다가 서울은 순간 멈칫했다. 여긴 세인과 같이 사는 집이 아니었는데 자신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다.
“멍청하게.”
서울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옷도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침대에 엎어졌다.
“진짜 싫다.”
옷을 벗어야 하는데 눈이 자꾸 감겼다.
“이대로 자면 안 되는데.”
서울은 그대로 잠에 빠졌다.
“지긋지긋해.”
춘자에게서 온 전화가 112통. 문자는 300건이 넘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가 있는 건지.
“대단하네.”
어쩌면 이럴까?
“뻔뻔하고.”
서울은 눈을 감았다. 머리가 띵했다.
“할 게 없네.”
자고 났더니 잠도 더 오지 않았다. 동네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멍하니 있었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잠시는 즐거웠지만 더 이상 보낼 것도 없었다.
“한서울.”
서울은 입술을 내밀었다.
“정말 한심해.”
갈 곳도 없고. 할 것도 없고. 그러다가 문득 세인의 생각이 났다. 자신이 가는 것. 이게 민폐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무조건 가고 싶었다. 세인이랑 있으면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해지는 거 같았으니까.
“그래. 가보자.”
서울은 입술을 내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제야 카운터 남직원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스크림 가게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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