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소설] 보편적 연애 2018 [47장]

47장

“미안해요.”

“한서울 씨가 왜 사과를 합니까?”

“그래도.”

용준은 어깨를 으쓱하고 그저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한서울 씨가 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사과하지 마요. 그거 너무나도 이상한 거고. 그럴 이유 없어요.”

“하지만.”

“응?”

용준의 채근에 서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께서 한 거잖아.”

“네.”

“전부.”

“네. 알아요.”

용준의 말에 서울은 마음이 아주 조금이나마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다.

“내가 밉지 않아요?”

“왜요?”

“아니.”

“한서울 씨 탓이 아니라니까.”

용준의 말에 마음이 편해지기는 하지만 서울은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정말 답답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다 치울게요.”

“그게 답이 아니잖아!”

경찰서에 다녀온 사무실. 역장은 우리를 향해서 갑자기 역정이었다. 아마 사무실 꼴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이래서 무슨 일을 해!”

“죄송합니다.”

“너무 그러지 마시죠.”

부장은 느릿느릿 끼어들었다.

“어차피 여사님들이 다 치워주시고. 역장님 책상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습니다. 지금 방향제 냄새만 나고.”

“부역장은 지금 그 태도 뭐지?”

“네?”

“건방지게.”

“건방이라.”

열을 내는 역자오가 다르게 부장은 그저 여유로운 표정을 지을 따름이었다. 부장은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건방 좀 더 떨어드려요?”

“뭐라고?”

“저 모르세요?”

부장의 능글맞은 대답에 역장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더니 아무 말도 못하고 그대로 사무실을 나갔다.

“고맙습니다.”

“아니야.”

서울의 인사에 부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일찍 퇴근해.”

“네?”

“자기 말고 용준 씨.”

“괜찮습니다.”

“내가 안 괜찮아서 그래.”

부장은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고 머리를 긁적이고 밖으로 근무를 서로 나갔다. 서울과 용준은 서로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죄송합니다.’

“아니요.”

경찰 말로는 그 정도를 가지고 더 이상 사람을 가둘 수는 없는 거라고 했다. 뭐 법이 그렇다니까.

‘큰 도움이 못 되드렸습니다. 아까 경찰의 태도도 너무 죄송하고. 그래도 한서울 씨를 찾아가서는 안 된다고 알려드렸어요.’

“고맙습니다.”

그래도 남경이 아니라 여경이라 자신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거 같았다. 서울은 전화를 끊고 한숨을 토해냈다. 춘자가 그 말을 들을 리는 없을 거 같지만 그래도 이쪽이 만만하지 않다는 걸 보여줘서 다행이었다.

 

“왜 못 가게 해?”

“와서 뭐하게?”

“뭐?”

부산의 지적에 서울은 멍해졌다.

“그러네.”

“미안.”

“아니야.”

부산의 사과에 서울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자신이 하려는 짓은 자신이 너무나도 싫어하는 춘자의 행동과 같았다.

“와서 똥물을 끼얹더라고.”

“뭐?”

“말 그대로.”

“아니.”

부산은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게 말이 돼?”

“그러게.”

서울은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다른 말을 더 하지 않았다.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난 거니까.

“혹시 너에게도 뭐라고 할까봐. 너 조심하라고 온 거야.”

“어? 어.”

“이건 용돈.”

서울은 용준에게 보투를 내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는 간다.”

“아니.”

“왜?”

“갔다가 갈래?”

“됐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부산은 그런 서울에게 어색하게 웃으며 봉투를 세게 쥐었다. 아마 돈이 필요할 거였다. 자신은 혼자서 크게 쓸 돈이 없으니까. 서울은 미소를 더 밝게 지으며 돌아섰다.

 

“오늘 용준 씨는?”

“내가 쉬라고 했어.”

“건방지게.”

역장이 혼잣말처럼. 그러나 모두에게 다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렸지만 부장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한서울 씨는 좀 괘낞아요?”

“네. 고맙습니다.”

“나야 이 파트의 담당이니까. 내 밑에 있는 직원들이 우선이지. 우선. 그게 당연히 티장이지. 힘들면 바로 말해.”

“네. 고맙습니다.”

“고맙다는 말은 좀 그만하고.”

서울의 인사에 부장은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다친 덴 없나요?”

“네. 다행히요.”

세인은 마치 자신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안도의 한숨을 토해냈다. 서울은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경찰은 뭐래요?”

“별 게 아니라고 그냥 풀려났어요.”

“아.”

“웃기죠?”

“그러게요.”

서울은 기지개를 켜며 이리저리 몸을 풀었다. 어차피 일어난 일이었지만 너무나도 이상한 일이었다.

“너무 싫어.”

“자신에게는 그러지 마요.”

“나에겐 안 그래요.”

“그렇게 되더라고요.”

“네?”

서울의 눈이 동그래졌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결국 그 모든 일들. 정말로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내가 아무런 이유도 만들지 않은 일들이 자꾸 일어나게 되니까. 결국 그 모든 일들이 내가 한 것이고. 나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진 거 같더라고요. 그리고 그 혐오가 스스로에게 오게 되더라고요.”

세인은 짧게 한숨을 토해내며 미간을 모았다.

“내가 그랬거든요.”

서울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했어요. 그런데 나는 안 그래.”

“정말 조심해요.”

“네.”

서울의 미소에 세인도 겨우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그 사람은 서울 씨를 많이 좋아하네요.”

“네?”

“그런 것까지.”

“그런데 이미 거절했어요.”

세인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달라서요.”

서울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정말 다른 사람이었다. 이런 말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이라는 게 떠올랏다.

“정말 너무 다르더라고요. 그 사람은 늘 좋은 사람이라서. 늘 밝은 사람이라서 너무 신기했어요.”

“그래서 더 잘 어울리지 않아요?”

“지치게 돼요. 자격지시몯 생기고.”

가장 끔찍한 기분이었다.

“자꾸 그게 느껴져.”

“아.”

“만일 더 발전해도. 좋아하는 사이에 그런 거 이상하잖아.”

“그렇죠.”

서울의 말에 세인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그런 관계는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럼 난 어때요?”

“네?”

“연애.”

“무슨?”

“왜요?”

세인은 눈썹을 움직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서울은 입술을 쭉 내밀며 코를 찡긋했다. 농담이라도 좋았다.

“그런 말은 농담이라도 하지 마요. 해나가 뭐라고 할 줄 알고.”

“여기에서 걔 얘기가 왜 나와요?”

“네?”

“이건 한서울 씨랑 내 이야기입니다.”

세인의 단호한 말에 서울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 말이 옳은 말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꽤나 복잡한 말이었다.

“그래도 이건 우리 둘만의 일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이세인 씨.”

서울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흔들었다.

“좋은 사람이에요. 그쪽.”

“그런데 왜요?”

“그래서요.”

서울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상대가 좋은 사람이니 만큼 진이 빠지는 연애는 싫었다.

“세인 씨랑 내가 만나게 되면 해나는 어떻게든 알고 찾아올 거야. 그럼 우리 두 사람은 또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지금과 같은 순간을 맞을 거야. 그런 거. 너무 복잡한 일이에요.”

“한 번 더 생각 좀 해줘요.”

“아니.”

“네?”

세인의 간절한 표정.

“알았어요.”

아닐 테지만.

“그럼 나는 갈게요.”

“조심히 가요.”

세인의 미소. 서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인이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자신이 다른 말을 더 할 것도 없었으니까.

 

“말도 안 돼.”

방으로 돌아와서 생각해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일이었다. 자신과 세인이라니. 해나의 반응이 너무 눈에 보였다. 누군가가 그렇게 격하게 반대하는 연애. 그런 것까지 할 정도로 급하지 않았다.

“온갖 지랄을 할 텐데.”

서울은 눈을 감았다.

“한서울. 잠이나 자자.”

모든 게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렇게 다시 관계를 복잡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랬다가는 좋은 친구. 늘 이야기를 나누는 세인까지 잃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