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소설] 보편적 연애 2018 [48장]

48장

“그럼 하는 거지?”

“아니.”

부장이 다시 소개팅 말을 꺼내자 용준은 쩔쩔 매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왜 그렇게 뺀대?”

“그러니까요.”

서울도 말을 보태며 자리에 앉았다.

“용준 대리님. 선 한 번 보시죠.”

“그래?”

“부장님 말씀하시는 거 들으니까 여자가 들어도 되게 괜찮은 사람인 거 같은데. 한 번 만나만 보는 건 괜찮잖아요.”

“그렇지.”

부장은 손가락을 튕기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용준은 계속해서 어색하게 웃었다.

 

“그냥 치우려는 겁니까?”

“그런 거 아닌데요?”

“아니었어요?”

“그럼요.”

서울의 대답에 용준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서울은 이리저리 목을 풀며 가볍게 몸을 풀었다.

“용준 씨처럼 참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이 그렇게 혼자 있는 거. 그거 사회적으로 낭비에요.”

“낭비는.”

용준은 입술을 쭉 내밀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그래도 안 서운합니까?”

“네?”

“하나도?”

“음.”

하나도 아니라고 하면 그것도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다른 말을 더 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내가 하지 말란 것도 이상하지 않아요?”

“그냥 두고 봐도 되는데요.”

“용준 씨가 나를 봐서 그렇죠. 아무튼 알았어요.”

용준은 서울을 보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서울은 먼저 자리를 피했다. 자신이 여기에서 다른 이야기를 더 하는 것도 너무 유치하고 염치가 없는 일이었다.

 

“괜찮아요?”

“당연하죠.”

서울의 물음에 세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여기도 안 오려고 했어요?”

“그게.”

“우리 사장님 서운하게 느끼시겠네. 그래도 한서울 씨랑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거 좋아하시는데요.”

세인의 말에 서울은 혀를 살짝 내밀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을 해주시니 고마웠다.

“저기요.”

“나. 잠시 갔다가 올게요.”

“네.”

손님을 향해서 가는 세인을 보며 서울은 괜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둘이 아직도 안 사겨?”

“네?”

갑자기 유미의 말이 나오자 서울은 놀라서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무, 무슨 말씀을 하세요?”

“저기 좋아하잖아.”

“네?”

“눈빛이 그래.”

“그래요?”

유미의 말에 서울은 어색하게 미간을 모으며 표정을 관리했다. 눈빛이라는 것.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간다는 것. 이미 오랜 시간 살아오면서 그래도 아는 거였다. 누군가를 보는 눈빛이 그렇다는 것. 신기했다.

“좋은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그래요.”

“그럼 만나면 되는 거지.”

“제가 이미 한 번 거절했거든요.”

“그게 대수야?”

“네? 대수죠.”

유미는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세인 씨가 한 번 고백을 한 거면. 서울 씨도 한 번 고백을 하면 되겠네. 그래야 누구 하나 안 꿇리고.”

유미의 말에도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간단하게만 생각을 할 수 없으니까.

“나는 지금 후회가 돼요. 지금 내가 이렇게 된 상태에서도 나 좋다던 그 사람. 잡을 걸. 그런 생각이 들어.”

“아.”

서울이 너무 진지한 표정을 짓자 유미는 가볍게 그런 서울의 팔을 잡았다.

“자기 아직 어려.”

“어리긴요. 이제 해 넘어서 서른하나에요.”

“나는 쉰이야. 쉰.”

유미의 대답에 서울은 싱긋 웃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그건 어떤 선택이건 어렵다는 거였다.

“그 나이가 되었으면 그래도 조금 더 쉬운 것도 있어야지. 모든 것을 다 그렇게 계산하면 아무 것도 안 나와요.”

유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애도 아니고 다 알아서 할 테지만. 그냥 이 늙은 사람이 옆에서 보기 아쉬운 게 있어서 그래.”

아쉬움. 서울은 침을 삼켰다.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생각까지 바꿀 수 없겠지만.

 

“사장님과 무슨 대화를 나눴는데 표정이 그래요?”

“네? 아니에요.”

세인의 물음에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 것도 아닌 표정이 아닌 거 같은데 말이죠.”

“맞는데요.”

서울이 일부러 더 장난스럽게 답하자 세인도 장난스럽게 입술을 쭉 내밀면서도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점은 재미있어요?”

“네. 앞으로 차리고 싶거든요.”

“안 힘들어요? 돈도.”

“안 되죠.”

“미안해요.”

서울은 다급히 사과의 말을 건넸다. 너무나도 천박하게 하고 싶은 일을 이야기하는데 바로 돈이 나오다니.

“그러니까 내 말은 말이죠.”

“알고 있어요.”

세인은 미소를 지으며 별 것 아니라는 듯 답하고. 한 입 가득 카레를 먹었다. 그리고 삼키고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스스로에게 묻고 싶어요.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맞느냐고. 그래서 나온 결말이에요.”

“그러니까 그렇게 물으면 안 되는 거였죠.”

세인은 밝은 표정으로 목을 이리저리 풀었다.

“평생 하고 싶은 일을 글쓰기. 그런데 이게 등단이 될지도 모르는 거니까. 일단 도을 벌어야 하는 거니까요.”

“그러네요.”

서울은 침을 삼켰다. 너무나도 잔인한 말이지만 세인의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그게 바로 글쓰기였다.

“그래서 그렇게 글을 쓰면서 내 시간을 어느 정도 확보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뭔가 했더니 서점이 있더라고요.”

“몸이 고되잖아요.”

“정신이 맑아져요.”

세인은 예의 그 편안한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서울은 입술을 혀로 살짝 문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너무 아이 같이 해동하나?”

“무슨. 아니에요.”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누구라도 그러고 싶을 거야.”

“그렇죠.”

세인은 가볍게 손바닥을 바지에 닦았다.

“한서울 씨 자꾸 위로 안 해도 돼요.”

세인의 말에 서울은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데 자신이 다른 말을 더 할 것도 없고 자격도 없었다.

“그리고 내가 계속 일해야 한서울 씨가 내 핑계로 이 맛있는 카레 먹으러 오죠. 안 그래요?”

“그러네요.”

서울은 씩 웃으면서 카레를 한 입 가득 입에 넣었다.

 

“한서울 씨는 오지 마.”

“네?”

너무 단호한 역장의 말.

“지금 무슨?”

“내 기분이 상하니까.”

“그럼 저도 안 가요.”

부장의 말에 역장의 얼굴이 굳었다.

“저도 싫어하시잖아요. 제가 가면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으실 거 같은데. 미리 저도 빠져 드릴게요.”

“아니 부장이 겨우 셋인데 안 오면 내가 뭐가 돼?”

“전 부하가 겨우 둘이에요. 그런데 그 둘 중 한 사람이 안 오면. 제가 오히려 이상한 기분이 되죠.”

“뭐야?”

“아 그럼 저도 안 가겠습니다.”

용준도 손을 들며 유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 분 다 안 가는데. 저 혼자서 이 파트로 가서 있는 거. 그거 너무 사람들 시선을 끄는 일이니까요.”

“뭐하는 것들이야?”

“그러니 한서울 씨도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역장은 세 사람을 보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음대로 해.”

역장은 혀를 차면서 그대로 나갔다. 너무나도 심한 모욕이었다. 거절을 해도 이쪽에서 해야지. 서울은 아랫입술이 하얗게 될 때까지 세게 물었다.

 

“두 분 다 왜 그랬어요?”

“당연한 거야.”

서울의 물음에 부장은 담배를 물고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직원 셋 중 하나 안 오는 거 가지고 그렇게 난리에 그러면서 나는 뭐 괜찮다는 거야?”

“문제가 될 수 있어요.”

“내 걱정을 해?”

부장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멀리 연기를 뱉으면서 이리저리 목을 풀고 씩 웃었다.

“한서울 씨 나는 다 잘 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네. 알겠습니다.”

부장의 유쾌한 대답에 서울은 괜히 코를 긁적였다.

“그나저나 가도 되겠어?”

“가야죠.”

“한서울 씨가 가면 분명히 그에 대해서 다른 말이 나오기도 하고. 그게 싫은 말이 되어서 마음에 갈 거야.”

“네.”

그럴 거였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하지 않기로 한 거니까. 가야 하는 거였다.

“다칠 수 있는 거 알지?”

“알아요.”

자신의 위치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참을게요.”

“뭐래?”

“네?”

“나도 화를 낼 거야.”

“무슨?”

“내가 대신 화를 내줄게.”

부장은 이를 드러내며 더욱 밝게 웃었다.

“감히 내 직원을 말이야. 누가 그렇게 건드리면. 나는 뭐 그거 가만히 보고만 있는 사람인가? 그건 등신이지.”

“저도요.”

용준은 담배도 안 피면서 여기까지 따라와서 손을 들었다.

“금연자는 제외.”

“네?”

“아니 비흡연자도 아니고 금연자. 그거 너무 독한 거야.”

“맞습니다.”

“아니.”

세 사람은 서로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이렇게 잘 맞는 사람들과 일을 한다는 게 너무나도 다행이었다. 서울은 마음이 푹 놓이는 기분이었다. 이 고마운 사람들과 하는 것. 다행이었다. 편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자신의 편인 사람이 회사에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