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장
“신기하네요.”
“그러게요.”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넘겼다.
“아 세인 씨 일은 말 안 했어요.”
“왜요?”
“놀라라고?”
“뭐야?”
서울의 대답에 세인은 웃음을 터뜨렸다.
“왜요?”
“아니.”
세인은 혀를 살짝 내밀었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렇게 별 것 아닌 이야기를 하면서 웃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한서울 씨 동생을 만나면 어떻게 대하죠?”
“그냥 대하면 되는 거죠.”
“그게 뭐야?”
“사실이니까.”
세인은 미소를 지으며 서울의 손을 꽉 잡았다. 서울도 그런 세인의 손을 꽉 잡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말도 안 돼.”
방에 들어서던 서울의 얼굴이 굳었다. 누군가가 다 뒤진 흔적. 보나마나 도둑도 아닌 도둑이었다.
“엄마 이거 뭐야?”
“뭐가?”
춘자는 태연하게도 대답했다.
“그냥 정리 좀 했어.”
“정리?”
정리 같은 소리.
“뭐 찾은 건데?”
“뭘?”
“도대체 뭘 찾기에 내 방을 저렇게 한 거냐고!”
서울이 악을 쓰자 춘자는 텔레비전을 끄고 서울을 응시했다.
“돈 찾았다. 돈.”
“뭐?”
“나도 사람이 살 구멍이 있어야 할 거 아니야. 나도 코에 바람 좀 넣고 그러고 싶은데. 도대체 어미를 뭐로 보면 너는 이 망할 년이. 그 돈을 가지고 내가 뭘 어떻게 살라고 그러는 거야?”
“아니.”
서울은 머리를 뒤로 넘겼다. 이 상황이 되어서도 자신의 잘못은 없고 모두 서울의 문제인 거였다.
“애초에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을 가지고 온갖 헛소리를 해서 나를 미치게 만들어. 그러면서도 무슨.”
머리가 지끈거렸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식으로 말을 할 수가 있는 걸까? 자신의 잘못은 전혀 모르는 거였다.
“나가요.”
“뭐?”
“이 집 내 집이야.”
“무슨.”
서울의 반응에 춘자의 얼굴이 굳었다.
“네가 어떻게 이래?”
“뭐?”
이 상황에서도 지금 이런 식의 말을 하는 거였다. 도대체 자신이 어떻게 그러느냐니. 그러는 당신은 엄마면서. 적어도 자신을 이 세상에 낳게 했으면서 당신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걸까?
“내가 엄마 때문에 행복해질 수가 없어. 행복하려고 하면 자꾸 이 사람이 왜 이러는 건가 의심을 해?”
“그러니 그냥 철수랑.”
“아니!”
서울은 고함을 질렀다.
“뭐라는 거야?”
이미 다 끝난 지 오래였다.
“무슨.”
“너 걔 만한 사람이 있어?”
“아니.”
애초에 이런 식의 말을 할 상황도 아니었다. 서울은 혀로 입술을 축이고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엄마가 지금 내가 무슨 지랄을 하기 바라는 건지 모르겠는데 말이야. 그런 헛소리는 하지 말아야지.”
“뭐야?”
“무슨.”
서울은 한숨을 토해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도대체 왜 이런 것을 자신이 들어야 하는 걸까?
“지금 이 집에서 살게 된 거. 전부 다 내 덕이잖아요. 안 그래요? 그러면 그냥 내 말 잘 듣고 살아.”
“건방진 년이!”
춘자도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소매를 걷었다.
“못 참으면 어떻게 할 거야?”
“팔지.”
“뭐?”
“팔자고요.”
서울의 말에 춘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무, 무슨.”
“소송까지 가면 귀찮기는 하지만 못 팔 거 뭐가 있어요? 그리고 어차피 명의는 부산이로 된 거잖아.”
아들이 더 귀하다고. 아들의 명의로 무조건 해야 한다는 그 말. 그게 지금 도움이 되는 거였다.
“평생 고생 한 번 안 하고 사신 거. 그거 전부 다 내가 고생해서 가능한 거잖아. 그런데 왜 이래?”
“네가 고생은 무슨 고생을 해? 네가 지금 내가 없었으면 이 세상에 있을 수 있을 거 같아?”
“왜 낳았어?”
서울의 차가운 물음에 춘자는 입을 다물었다.
“딸인 거 알았으면! 그냥 지우지. 그랬으면 되는 걸. 도대체 왜 낳아서 이 고생을 시키는 건데?”
“건방진 년.”
춘자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네 년이 아무리 모진 년이라고 해도 자기 엄마에게 왜 낳았느냐고. 그런 물음을 하는 년은 아마 없을 거야. 아무리 미워도 도대체 어떻게 내가 너를 지울 수 있을 거라고 그런 생각을 해?”
“지우는 게 더 나았으니까.”
기억도 나지 않는 아버지가 죽은 것은 모두 다 자신의 탓이었다. 평생 부산보다 잘나면 안 된다고 배웠다.
“딸이 아들보다 더 잘 나면 아들 인생 망친다고. 내가 그렇게 공부 좀 시켜달라고 한 거 누가 무시한 건데?”
“그래서 네가 지금 못 나가?”
“응.”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더 학벌이 좋았더라면 지금과 전혀 다를 거였다.
“엄마만 아니었다면 이런 식으로 그냥 인생이 끝이 나지 않았을 거야. 그거 엄마가 더 잘 알지 않나?”
“뭐?”
“나 많이 꼬였어.”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거 엄마 탓이야.”
“다 내가 잘못이지.”
“그럼.”
서울의 간단한 대답에 춘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침을 삼켰다.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다른 말을 할 것도 없었다.
“미안해요.”
“아니요.”
세인은 갑자기 찾아온 자신을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저 별 것 아니라는 듯 웃어줬다.
“일하고 있었던 거죠?”
“아니요.”
“거짓말.”
노트북을 닫는 것을 봤다.
“그냥 해도 돼요.”
“됐습니다.”
세인은 이리저리 목을 풀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이리 와요.”
“괜찮은데.”
“얼른.”
세인이 양팔을 벌리고 자신을 보자 서울은 웃음을 터뜨리며 그리로 가서 가만히 안겨서 체온을 느꼈다.
“좋다.”
“맛있는 거 먹을래요?”
“네”
“피자라거나.”
“아니요.”
서울은 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무거운 건 싫어.”
“맛있는 거 먹으면 우울이 다 달아날 텐데.”
“그래요?”
“그럼요.”
세인의 장난스러운 미소에 서울도 그만 웃고 말았다. 자신을 보고 계속 웃는 사람에게 뭐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럼 내가 살게요.”
“왜요?”
“갑자기 온 거니까.”
“아니요.”
세인은 서울의 코리를 건드리며 씩 웃었다.
“손님이잖아.”
“내가 손님이에요?”
“그럼요.”
“그러네.”
서울의 표정에 세인은 가볍게 서울의 허리를 안았다. 서울도 그런 세인을 보고 가볍게 이마에 입을 맞췄다.
“정말 고마워요. 그냥 이런 식으로 나를 위로해주고. 지금 나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안 물어봐서.”
“한서울 씨 성격에 나에게 말해도 괜찮은 일이라면 이렇게 숨기고 말하지 않지 않았을 거 같은데?”
“그러네.”
서울은 혀를 내밀고 싱긋 웃었다.
“나를 너무 잘 알아.”
“그렇죠.”
둘은 서로의 눈을 보며 가볍게 코를 비볐다.
“한서울 씨가 그래도 이런 순간에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를 찾아줘서. 내 입장에서는 너무 고마워요.”
“당연한 거잖아요.”
“뭐가 당연해요?”
“좋아하니까?”
“그런가?”
“그럼요.”
서울은 입술을 쭉 내밀고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세인 씨는 나에게 말 안 할 건가?”
“아니요.”
“할 거죠?”
“당연하죠.”
서울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당연하다는 말. 이것 자체가 주는 어떤 위안이 있었다.
“앞으로도 자주 올지 몰라요.”
“알겠습니다.”
“집으로 돌아갔으니까.”
“다른 말 안 해요.”
“그냥?”
서울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이런 생각이 들어서?”
“뭐래요.”
“아무튼 그렇다고요.”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먹을래요? 내가 쏠게요.”
“한서울 씨 여기 주소도 모르죠?”
“왜 몰라요? 여기 살았었는데.”
서울은 스마트폰을 흔들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이 정도는 내가 할 수 있게 해줘요. 그렇게 큰 것도 아니고. 내가 세인 씨에게 받은 게 더 많으니까.”
“알겠습니다.”
서울의 고집에 세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꾸만 다른 말을 하면서 감정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뭐 먹을까요?”
“그러게요.”
두 사람은 배달 어플을 보며 미간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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