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보편적 연애 [완]

[로맨스 소설] 보편적 연애 2018 [58장]

권정선재 2019. 2. 13. 22:27

58

내가 가도 되는 거예요?”

당연하죠.”

세인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우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세인 씨는 나랑 만나는 사람이니까. 내 동생이 만나는 사람을 만나는 거. 이거 지극히 정상이에요.”

하지만.”

. 혹시.”

그럴 수도 있는 거였다.

동성애를 싫어한다거나.”

아니요.”

세인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닙니다.”

다행이네요.”

그냥.”

세인은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렀다.

그다지 잘난 것이 없는 사람이라서요. 괜히 한서울 씨가 나 같은 사람을 만난다고 실망할 수도 있을 거 같고요.”

누가 그래요?”

서울은 입을 내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세인은 자신에게 그 누구보다도 좋은 사람이었다.

말했잖아요. 이세인 씨가 아니었다면 지금 이런 일들 하지 못했을 거라고. 그 말 농담으로 들은 거예요?”

하지만.”

진심이에요.”

서울의 고백에 세인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침을 삼켰다. 진심이라는 말. 그 말에 어떤 힘이 느껴졌다.

나는 세인 씨가 너무 부담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실 나도 그 친구를 처음 보는 자리거든요.”

서울 씨 동생도 나를 처음 보고.”

한부산이에요.”

?”

이름.”

.”

세인의 얼굴에 뭔가 묘한 표정이 지나가자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살짝 목을 이리저리 풀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이름인데 세인이 들으면 얼마나 더 말도 안 되게 느껴질 건지.

나를 가진 곳은 서울이었고, 동생을 가진 곳이 부산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름을 이렇게 지었대요.”

신기하네요.”

그렇죠.”

서울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이런 이름을 지은 것. 나름의 의미는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내 이름을 들으면 바로 이거하니까. 어른이 되고 나서는 딱히 손해는 아닌 거 같아요.”

나도 부러워요.”

세인 씨가 왜?”

다들 잘 못 알아들어요. 이상하게 이세인이라고 하면 이해인. 이렇게 많이 알아듣고 그러더라고요.”

그럴 수도 있구나.”

서울은 그 누구도 자신의 이름을 못 알아들은 적이 없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나 자신만이 생각하는 불편함 같은 것이 있는 거였고, 이건 자신이 있는 것처럼 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외식을 하나요?”

자기 집에 오라고 하더라고요.”

집에요?”

.”

서울은 어색하게 웃으며 혀를 내밀었다.

그래서 세인 씨가 가야 하는 거예요.”

. .”

세인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라면 좋죠.”

정말이죠?”

그럼요.”

서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혼자 가서 묘한 상황을 만들거나 이상한 시간을 보낼 것이 아니라, 그래도 누군가가 자신과 같이 가준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너무나도 고마운 일이었고 설레는 일이었다.

그런데 한서울 씨는 너무 나를 남자로 안 보는 거 같아요.”

?”

지금 몇 시죠?”

.”

열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그러니까.”

이런 시간에.”

세인의 장난스러운 미소에 서울은 씩 웃었다.

왜요?”

아니. 우리 아직 좀 유별한데.”

.”

어차피 집까지는 5분도 안 걸리는 시간이니까. 춘자 때문이라도 가야 하는 시간이기는 했다.

내일 와인 같은 거 없어도 되겠죠.”

됐어요.”

서울의 단호한 표정에 세인은 장난스럽게 눈썹을 움직였다.

.”

하여간.”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제 갈게요.”

데려다 줄까요?”

아니요.”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았지만 혹시라도 춘자가 자신과 세인을 본다면 그건 너무나도 복잡할 거였다.

그럼 나는 갈게요.”

배웅할게요.”

됐어요.”

서울은 그리고 돌아서다가 씩 웃더니 다시 세인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세인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순간 허리를 숙였다. 조심스러운, 그러나 설레는 입맞춤. 세인의 입이 살짝 열리고 서울은 조금 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세인이 가볍게 서울의 체중을 받고 두 사람은 짧지만 강렬한 입맞춤을 나눴다.

갈게요.”

그래요.”

서울은 얼굴이 붉어진 채 돌아섰다. 세인도 멍하니 있다가 서울이 나가고 나서야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세인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사람 설레게 하네.”

세인은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미쳤어.”

서울은 이불을 막 발로 차면서 돌아누웠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 순간 도대체 그런 용기가 어디에서 나온 건지. 아무리 서른이라고 해도 여자가 조금은 더 튕겨야 하는 건가 싶다가도. 오늘날 같은 상황에서 뭐가 필요한가 싶기도 했다.

하긴 세인 씨는 못 했을 거야.”

그럴 거였다.

아우 몰라.”

서울은 다시 이불을 머리까지 덮어쓰고 눈을 감았다.

 

돈 더 필요해.”

?”

서울의 물음에 춘자는 미간을 모았다.

아니. 이 망할 년이. 그냥 내가 필요하다고 하면 주면 될 것이지. 그렇게 하나하나 다 따져야 해?”

.”

서울이 간단하게 답하자 춘자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다가 이 집 관리비도 내지 않고 다시 나가는 수 있어. 이 집에 돈 계속 내고 있던 이유는 언제라도 부산이가 다시 돌아올 가능성. 그거 하나였어요. 그러니까 더 이상 나 자극하지 마요.”

서울은 이 말을 남기고 그대로 집을 나섰다.

 

좋은 아침이에요.”

무슨 일 있구나?”

?”

용준의 말에 서울은 입술을 내밀었다.

무슨?”

한서울 씨 출근하다가 무슨 일이 있으면. 일부러 더 밝게 그렇게 있더라고요. 나한테 그런 인사를 해주는 걸 보면. 분명히 한서울 씨에게 무슨 일이 있다는 건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아니거든요.”

서울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가 놓았다. 용준은 더 이상 다른 말을 보태지는 않았다.

 

내가 점심 살게요.”

아니요.”

아무리 사회복무요원이 있다고 하더라도 둘 다 식사는 좀 그랬다.

나 지금 배 안 고파요.”

내가 사주고 싶어서 그래.”

아니.”

다녀와.”

부장도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서울은 입술을 내밀면서도 엷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우리가 직장 동료인 거긴 하잖아요.”

당연하죠.”

그럼 무슨 일인지 조금은 말해도 괜찮지 않나?”

?”

그러니까 지금 아침에 이야기를 계속 하자는 거였다.

나 그거 불편해요.”

.”

용준은 바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합니다.”

나도 미안해요.”

아니요.”

용준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내가 쓸데없는 오지랖을 부린 겁니다. 내가 학교 다닐 적부터 별명이 김최지랖이었는데 그게 이렇게 되네.”

거짓말.”

들켰나요?”

그럼요.”

두 사람은 웃음을 터뜨렸다. 서울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고마운 사람이었다.

김최용준 대리님하고 같이 일을 하게 되어서 즐거워요. 이런 이야기도 편하게 할 수 있고요.”

아마 한서울 씨의 마음이 달라져서 그렇지 않을까요? 저 이전의 직원과도 그럴 수 있었을 겁니다.”

.”

동선이라면 어느 정도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였다. 하지만 동선은 용준과 다르게 성격이 조용한 사람이었다. 동선 덕에 자신도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이건 전혀 다른 종류였으니까.

늘 말을 하는 거지만. 김최용준 대리님. 정말로 좋은 사람이라는 거. 이미 스스로도 아시는 거죠?”

그런가요?”

용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한서울 씨. 아마 나는 계속 오지랖을 부릴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해요. 나는 내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을 때. 한서울 씨가 나에게 오지랖이어도 괜찮거든요.”

알았어요.”

자신이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날을 세우기만 하는 것은 아무래도 춘자의 영향이 클 거였다.

겁이 나서 그래.”

뭐가요?”

약점을 자꾸 보이는 거?”

에이.”

정말로요.”

서울의 말에 용준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 서울의 눈을 보며 더 밝게 웃었다.

그래도 부장님 덕에 이렇게 밥도 먹고 좋네요.”

그러니까요.”

늘 배려해주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상사라는 게 너무 다행이었고 이제라도 만났다는 게 다행이었다. 두 사람은 별 것 아닌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이어갔다. 정말 별 것 아닌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더 편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의 이미가 큰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