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소설] 보편적 연애 2018 [71장]

71장

“그러니까 조심하라고.”

“고마워.”

“고맙긴.”

서울은 부산을 가만히 응시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집에는 오지 말고.”

“언젠가는 가야지.”

“왜?”

“어?”

서울의 물음에 부산은 살짝 긴장한 모양이었다.

“왜 오려고?”

“엄마니까.”

“너도 참.”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이 와중에도 엄마라는 이유로 봐야 한다는 것. 그건 말도 안 되는 거였다.

“나중에 너에게 모든 걸 다 책임을 지라고 할 거야. 그런 거 말도 안 되는 거잖아. 네가 왜 그래야 하는 건데?”

“그렇다고 누나에게 모든 부담을 다 줄 수 없어. 그건 내가 바라는 게 아니야. 안 그래도 누나 힘든 거 아는데.”

“아니.”

서울은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어릴 적 당한 게 더욱 컸었으니까.

“너 괜히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마.”

“무슨.”

“한부산.”

“알았어.”

부산이 겨우 대답하자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를 지키는 것. 이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농담으로 하는 말 아니야. 여전히 엄마는 너를 자신의 소유물로만 생각하고 있으니까.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알았어.”

부산의 미소에 서울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다른 말을 더 하고 싶었지만 어차피 들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한서울 씨의 일은요?”

“네?”

세인의 물음에 서울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요?”

“지금 한서울 씨 얼굴에 자신의 고민이 하나 가득이라고 되어 있는데. 자꾸 부산 씨 이야기만 하는 거 알죠?”

“그건.”

지금 이 상황에서 세인에게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다 한다는 것. 그건 결국 둘을 흔드는 일이 될 거였다.

“나 혼자 할 수 있어서 그래요.”

“누가 없대요.”

“아니.”

“한서울 씨.”

세인은 서울의 눈을 보며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이런 건 모두 다 말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래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 그 얼굴.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 거. 스스로는 알고 있어서 그러는 거죠?”

서울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은 세인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거였다.

“그렇구나.”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요?”

“그러게요.”

“아니.”

“나 오늘은 피곤해서 갈게요.”

서울이 일어나자 세인은 그의 손을 잡았다. 평소와 다른 그의 태도에 서울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냥 가지 마요.”

“이거 놔요.”

서울은 세인의 손을 밀어냈다.

“나 이러는 거 싫어.”

“아니.”

세인은 무슨 말을 더 하려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해요.”

“아니요.”

이건 세인이 사과를 해야 하는 종류의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속의 것을 모두 다 말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 자신이 바라는 것. 원하는 것. 그건 세인이 모두 다 이해할 수 없을 수도 있었다.

“내가 모두 다 말해주지 못하는 건 미안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식으로 알아내기 바라지 않아.”

“알았어요.”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하게 침묵이 흘렀다.

 

“누나 그 형 진심으로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좋아하지.”

서울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인이 있기에 지금 자신이 뭐라도 할 수 있었던 거니까.

“그런데 왜 그래?”

“그러게.”

부산의 말이 옳았다. 지금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은 세인이면서 자꾸만 다른 것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좋아하는데 이상해.”

“아니.”

“그만 할래.”

부산의 말이 길어지려고 하자 서울은 고개를 저었다. 세인과도 나누기 싫은 대화를 부산과 나누고 싶지 않았다.

“너까지 보태지 마.”

“보태는 게 아니라.”

“한부산.”

“하여간.”

부산은 볼을 부풀리면서 벽에 머리를 기댔다. 그런 그를 보며 서울은 그저 엷은 미소를 지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미안해요.”

“아니요.”

서울의 고백에 세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부산의 말을 듣고 그냥 가볍게 한 말이었는데 속이 편했다.

“오히려 내가 미안하네.”

“이세인 씨가 왜요?”

“자꾸 캐물어서.”

“아니요.”

이건 무조건 자신이 세인에게 미안해야 하는 거였다. 이게 뭐라고 세인에게 말도 못 하고 숨기기만 한 거였으니까.

“서로 비밀이 없다고 하고서 이렇게 숨기는 건 아니었어. 이세인 씨가 얼마나 나를 좋아하는지 아는데.”

“그래도 물어서 안 되는 거였어요.”

“내 걱정을 한 거잖아.”

“그렇죠.”

서울은 싱긋 웃었다.

“좋네.”

“뭐가?”

“좋으니까.”

서울은 가만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세인의 손을 끌었다. 이런 별 것 아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서로가 있어서 너무나도 다행이고 너무나도 좋았다. 너무 좋은 사람들이었다.

“손은 미안해요. 너무 놀라서 그랬어요.”

“내가 실수한 거예요.”

“어떻게 그래요?”

“네?”

서울의 물음에 세인은 고개를 갸웃했다. 서울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어떤 자존감이면 이렇게 쉽게 사과를 할 수 있는 걸까?

“너무 착해.”

“그걸 몰랐어요?”

“응.”

서울은 다른 말을 더 하려다가 고개를 저었다. 자신과 닮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세인도 자신과 달랐다. 너무나도 좋은 사람이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거 받아요.”

“아니.”

서울이 내민 상품권에 용준은 난처한 표정이었다.

“이게 무슨?”

“그거 내가 마음이 불편해서 줘야 해.”

“한서울 씨.”

“제발.”

서울의 단호한 말에 용준은 어색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마지못해 상품권을 받았다.

“왜 이러는 거죠?”

“김최용준 대리님. 지금 혼자서 마음 편하다고 그러면 안 되는 거죠. 이쪽은 가시방석에 앉은 거 같은데.”

“그럴 거하나 없잖아요. 그런 일 아니에요.”

“내가 불편해요.”

“아니.”

서울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건 자신의 감정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 거였다. 용준으 자신을 위해 너무 많이 희생했다.

“나 때문에.”

“그거 아닙니다.”

“그럼요?”

“내 자존심이기도 해요.”

“네?”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원래 부장이 모를 거 같아요?”

“무슨?”

“뒤로 다 들을 걸.”

“아.”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던 거였다. 그가 여전히 이쪽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수 있다는 것.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건.”

사실일 거였다. 그 정도 인간이라면 당연히 지금 여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다 듣고 있을 거였다.

“그런데 한서울 씨가 이리로 와봐요. 그 부장. 아마 자신이 이긴 거라고. 결국 이겼다고 말을 할 거야.”

“그래도 이건 아니에요.”

스스로 감당을 해야 하는 거였다. 자신이 할 수 없어서 용준의 도움을 받은 것. 이게 더 말도 안 되는 거였다.

“본인이 간다고 했을 거면서.”

“당연한 거라니까.”

서울이 힘을 주어 말하자 용준은 싱긋 웃었다. 그에게 모든 것이 다 간파당하는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그거 봐요.”

“그럼 아니에요?”

“그러니까.”

“아니.”

“그만.”

서울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용준이 자신을 도와준 것인지. 어떤 의미인지 알았지만 속상한 건 사실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

“네?”

“그런 거 말고.”

서울이 너무 놀란 표정을 짓자 용준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뒤로 한 발 물러나서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한서울 씨가 조금 더 좋은 사람. 그리고 그 자리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게 돕고 싶ㅅ브니다.”

“이미 그러고 있어요.”

“그래요?”

“응.”

서울은 용준의 눈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런 말 좀 하지 마요. 사람 놀라게.”

“놀랐어요?”

“당연하죠.”

“미안하네.”

“자꾸.”

요준의 사과에 서울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자신에게 사과할 것이 없었다. 오히려 사과는 이쪽에서 해야 하는 거였다.

“이제 내가 당신에게 더 잇아 아무런 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것. 그건 내가 확실히 마음을 접는다는 겁니다.”

“김최용준 대리님.”

뭔가 마음에서 툭 끊어지는 기분이었다.

“늘 응원할게요.”

“저도요.”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보며 싱긋 웃었다. 마음이 조금은 아리면서 따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