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야기
둘. 크리스마스의 재회
“정말 너 미팅 안 할 거야?”
“미팅은 무슨.”
“너 벌써 그 여자랑 헤어진 지 6개월째야. 이제는 다른 여자를 만날 때도 됐잖아.”
“그만 해라. 김찬.”
민서가 신경질을 내며, 애꿎은 빨대만 씹어댄다.
“내가 답답해서 그런다.”
찬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다. 도무지 자신의 친구가 이해가 안 된다. 벌써 헤어진 지 몇 년인데, 아직까지도 그렇게 얽매여서 사는 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야, 미팅 나간다고 다 사귀는 거냐?”
“싫다니까.”
“한 사람 펑크 나서 어쩔 수 없다고, 너한테 사귀라는 얘기도 안 하고, 너는 커플 안 되게 잘 할 테니까, 나 좀 도와주라. 네 친구 28번째 크리스마스도 솔로로 보내라는 거냐? 너 친구 맞아?”
“휴.”
이쯤되면 민서도 더 이상 거절하기 곤란해진다. 하지만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된다. 자신과의 약속이 있으니까.
“정말 미안.”
“민서야.”
“나 갈게.”
“하아.”
찬도 고개를 젓는다.
“그래, 너를 누가 말리겠냐? 너를 억지로 미팅에 나가게 하려고 한 내가 미친놈이지.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으유 저 소고집.”
“미안, 다음에 보자.”
“그 사람도 벌써 애인 생겼을 거야. 응? 그러니까,”
“그거랑은 아무 상관 없네요.”
진희가 미소를 짓는다.
“그러니까, 쓸 데 없는 오해하지 말고, 괜히 나 설득하려고 진 빼지 말고, 그냥 가셔요. 네?”
“진희야.”
“헛수고네요.”
진희가 귀찮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버린다.
“야!”
“어? 뭐라고?”
“하아.”
찬이에게는 아니라고 했지만, 아직까지도 그녀가 머릿속에서 걸어다니고 있다. 내 속에서 살고 있다.
“휴우.”
찬의 말대로 이제는 벗어나야 할텐데, 아직까지도 그녀를 생각하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바보.”
진희는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작게 중얼거린다.
“언제 적 사람인데, 아직까지 그리워해?”
뜨거운 냄비가 식듯, 그들의 사랑도 쉽게 식어버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온기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
“휴우.”
“나 이번 미팅 나갈게.”
“어?”
게임에 열중하던 찬이 자신의 캐릭터가 죽는 지도 모르고 멍하니 민서를 바라본다.
“그, 그게 정말이야?”
“응.”
“민서야! 네가 드디어 망령에서 벗어났구나!”
“망령은 무슨.”
민서가 어색하게 웃는다.
“아무튼, 나갈 거니까, 날짜랑 시간만 알려주면 돼.”
“진짜지? 온다고 해놓고 약속 펑크내지 않을 거지?”
“응.”
찬이 미소를 짓는다.
“시간이 언제냐면.”
“야,”
“왜?”
윤아는 뾰루퉁하니 진희를 바라본다.
“나 미팅 나갈게.”
“어?”
윤아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진희를 바라보았다.
“진짜?”
“응.”
“하지만,”
“네가 매일 말하는 게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느끼게 해줄게.”
“진짜지?”
“날짜랑 시간만 말하세요.”
“이게 얼마만인지.”
민서는 자신의 가슴이 묘하게 뛰는 것을 느끼며 설렌다.
“누가 나올까?”
“흠.”
옷장에 있는 옷을 다 꺼내봤지만, 영 미덥다. 그렇다고 아무 옷이나 입고 나가고 싶지는 않다. 벌써 몇 년 째인걸?
“하아.”
하지만 진희의 옷장에 있는 옷은 전부 숙녀용 정장 뿐이다.
“이러다가 늦겠네.”
민서는 시계를 보며, 뛰기 시작했다.
“찬이 녀석 또 뭐라고 할 텐데.”
“어?”
진희 역시 시계를 보니 마음이 급해진다.
“또 한 달 내내 커피를 사야 하나?”
‘쾅’
“아야.”
“괜찮으세요?”
진희는 머리를 만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진희야.”
그녀의 눈 앞에 그가 서 있다.
“여기는 어쩐 일이야?”
그녀가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떨렸다.
“친구랑 약속 있어서.”
그의 목소리도 묘하게 떨린다.
“잘, 지냈어?”
“너는?”
“나야, 잘 지냈지.”
어색한 미소.
“건강해보인다.”
“응.”
그가 나의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다.
“그 때는 미안.”
“응?”
“그 때는 내가 옳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가보니까 내가 틀렸더라, 네가 옳았어. 미안. 늦었지만 사과할게.”
“아니. 내가 미안해. 당신 조금은 이해해 줄 수 있었는데, 그냥 내 고집만 피워서 미안해. 늦었지만 미안해.”
“진희 씨.”
“민서 씨.”
그 순간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 너무 먼 길을 돌아온 거 같지만 말이야. 하늘에서도 축복을 내려주는 데, 한 번만 기회를 다시 줄 수 없을까?”
“기회?”
“다시는 그런 바보같은 짓 하지 않을 거야.”
“민서 씨.”
“진희 씨.”
행복한 미소가 퍼진다.
‘따르릉.’
“여보세요?”
“야, 너 왜 안 오냐?”
민서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진희를 바라본다.
“그럴 일이 생겼어. 나 오늘 못 간다.”
“야, 야!”
민서는 전화를 끊었다.
‘전화왔다.’
“어, 미안해.”
“너 언제 올꺼야?”
“나?”
진희도 민서를 장난스럽게 바라본다.
“오늘 못 갈 거 같은데?”
“뭐?”
“미안.”
진희도 전화를 끊는다. 그리고 행복한 두 연인의 어깨로 하얀 눈이 소복히 쌓였다. 눈부시도록 하얀 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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