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단편 소설

크리스마스 이야기 - 하나. 크리스마스의 고백

권정선재 2007. 12. 25. 20:54
 




크리스마스 이야기




하나. 크리스마스의 고백




“안녕하세요.”


“일찍 오셨네요.”


“저야 뭐 늘 그렇죠.”


“항상 부지런하세요.”


“고맙습니다. 이거 어디다 놓으면 되죠?”


“여기요.”

사내가 노란 식품 상자를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그나저나 징검다리 휴일인데도 일하시네요?”


“한참 벌어야죠.”

사내가 미소를 짓는다.


“그래도 힘드시겠어요.”

“힘들긴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저, 저기요!”


사내가 나가려고 하자 여자가, 사내를 불러세운다.


“네?”


“이, 이거요.”


그리고 수줍게 내미는 카드 한 장.


“이게 뭐예요?”


“카드요.”


사내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지금 읽어봐도 돼요?”


“아니요.”


여자의 얼굴이 붉어진다.


“혼자서 읽어보세요.”


“네.”


사내가 미소를 지으며 가게를 나갔다.


“휴우.”


여자가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킨다.




“킥.”


사내가 미소를 짓는다. 크리스마스 카드라니. 자신이 소년도 아닌데 이런 것을 받을 지는 몰랐다.


“그래도 궁금한데 열어나볼까?”


때마침 도로에서 신호가 걸리고, 사내는 조심스럽게 카드를 열어보았다.


‘♩♪♫♪♬’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퍼지는 카드에 귀엽게 쓰인 글씨들이 보였다.


‘이렇게 카드로 인사를 드리니까 쑥스럽네요. 우리는 아직까지 이름도 잘 몰라요. 제 이름은 서윤정이예요. 그 쪽을 처음 본 순간부터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함부로 다가갈 수 없었어요. 저는 부모도 없고, 가난한데다가, 결혼도 한 번 실패한 여자에요. 그런 제가 이렇게 카드를 건네는 게 우습게 느껴지실 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용기를 내봅니다. 이런 저라도 받아주실 용의가 있다면, 오늘 저녁에 다시 한 번 가게에 들러주지 않으시겠어요? 거절을 하신다고 해도 기꺼이 받아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즐거운 크리스마스 이브에 무거운 짐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하아.”

사내는 깊은 한숨을 내쉰다.


“바보.”

자신은 이 여자보다 훨씬 못한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도 이 여자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바보처럼 여태 그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니.


‘빵’


얼마나 오래 서있었을까? 뒤에서 다른 차들이 아우성이다.


“알겠다. 간다.”


사내가 차를 길가로 몰았다.




“어서오!”

여자의 눈이 동그래졌다.


“카드 읽어보셨어요.”


“제 답장이에요.”


사내가 쑥스러운 듯 카드를 던지듯 내맡기고, 가게를 나가버렸다.


“뭐지?”


하얀색 눈사람이 그려져 있는 카드에 쓰여 있는 투박한 글씨.


‘안녕하세요? 이렇게 카드를 먼저 주시기에, 저도 답장의 의미로 카드를 씁니다. 저를 좋아해주는 마음은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저 역시 그 쪽, 아니 서윤정 씨를 많이 좋아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은 유성후입니다. 저는 그 쪽을 사랑할 자격이 되지 않습니다. 고등학교를 다닐 시절 잘못된 길을 걸어, 소년원에도 몇 번 다녀왔었습니다. 나쁜 놈이라는 욕도 많이 들었는데, 먼저 좋아해주신다고 하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혹시나 이런 저도 좋으시다면, 오늘 저녁 7시 42분. 백화점 앞의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 와주시지 않겠습니까? 와주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만, 기다리겠습니다.’


“하아.”


여자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휴우.”


이런 말을 했어도 되는 건지, 아직도 사내는 고민 중이다. 하지만 이미 한 고백. 무를 수도 없다.


“성후 씨!”


멀리 그녀가 보인다.


“윤정 씨.”


정말 자신의 앞에 있는 여자가 그 여자가 맞는 지 믿기지가 않는다.


“오래 기다렸어요?”


“아뇨.”


둘은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다. 너무 좋다.


“그런 나라도 좋아요?”


“내가 묻고 싶은 말이에요.”


두 사람이 다시 미소를 짓는다.


“그래도 내가 먼저 고백했으니까 대답은 성후 씨가 먼저 해주세요. 이런 제가 그 쪽의 곁에 서 있어도 되는 거에요?”


“물론이죠.”


사내는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그러는 윤정 씨는요?”

“이제 아니잖아요.”


“네.”

“그러면 됐어요.”


“윤정 씨.”


“사람들 누구나 다 실수하고 살아요. 하지만 그 실수를 인정하지는 않아요. 그 실수를 인정했으니까 된 거에요. 그걸로 충분한 거예요.”


“고마워요.”


“나야말로.”


두 연인의 위로 흰 눈이 내린다.


“누, 눈이에요.”


두 연인은 신기한 듯 서로를 바라본다.


“하늘이 우리를 축하해주는 걸까요?”


“그런가 봐요.”


보고 있어도, 자꾸만 보고 싶다.


“이제 내 곁에 있어주실 거죠?”


“항상 내 왼손 잡아주실 거죠?”


두 연인은 행복하게 손을 잡고 하늘을 내려다보았다. 아름다운 붉은 색으로 빛나는 하늘에서 끈임없이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