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AM 7:42 [완]

AM 7:42 <열여덟번째 이야기>

권정선재 2008. 1. 21. 20:41
 




AM 7:42




18화


겁쟁이 길들이기.




“우리 이번 주말에 놀이공원 갈래요?”

“놀이공원요?”

“네.”

채경이 미소를 짓는다.


“나 놀이기구 정말 좋아하거든요.”

“그래요. 가요.”

이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진호 씨!”

“채경 씨.”

진호가 미소를 짓는다.


“오래 기다렸어요?”

“아니요.”

채경이 미소를 짓는다.


“별로 안 기다렸어요.”

“거짓말, 손이 차가운 걸요.”

진호가 채경의 손을 꼭 쥔다.


“어머, 이제는 스킨십도 막 하네요.”

“하하.”


진호의 귀가 빨게진다.


“풉.”

“왜 웃어요?”

“귀여워서요.”

채경이 싱긋 웃는다.


“그런데 나 이거 무거운데 들어주면 안 돼요?”

“아, 들어드릴 게요.”

“킥.”

진호가 황급히 채경의 손에 들려있던 피크닉 바구니를 받아든다.


“뭐 이렇게 많이 쌌어요?”

“그냥 샌드위치랑 주스에요.”

“그런데 채경 씨?”

“네?”

진호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채경을 바라본다.


“지금 1월인데.”

“네?”

“우리 지금 에버랜드 가는 건데?”

“!”

그제야 채경은, 지금 기온이 다소 낮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 괜찮겠죠?”

채경은 어색한 듯 웃었다.




“우와.”

진호가 탄성을 내지른다.


“에버랜드 처음 와봐요?”

진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렇게 사람 없는 에버랜드는 처음이에요.”

“네?”

“날이 춥기는 춥나봐요.”

채경의 얼굴이 붉어진다.


“자꾸 놀릴 거예요?”

“내가 언제 놀렸다고 그래요?”

“알았어요. 다음부터는 겨울에 놀이공원 오자는 얘기 안 할게요.”

“네.”

진호가 싱긋 웃는다.


“이제 들어갈까요?”

“네.”




“우리 뭐부터 할까요?”

“글쎄요.”

진호는 미소를 지었다.


“동물들이라도 구경할까요?”


“동물요?”

그 순간, 채경은 은호와 윤우의 충고가 떠올랐다.




“놀이공원요?”

“응.”

채경이 너무나도 기분좋은 표정을 지었다.


“팀장님, 가서 좀 자제하세요.”

“응?”

“팀장님 놀이기구 좋아하는 건 알거든요.”

“그런데?”

윤우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그렇다고 롤러코스터는.”

“당연히, 바이킹도 안 됩니다!”

은호가 쐐기를 박는다.


“왜?”

“그야 당연하죠.”

윤우가 고개를 젓는다.


“팀장님, 역시 연애 초보구만.”

“응?”

채경이 고개를 갸웃한다.


“그게 무슨 뜻이야.”

“어떤 남자가 놀이기구 잘 타는 여자를 좋아해요?”

“하지만.”

“음음.”

은호가 손가락을 젓는다.


“다음에 저희가 같이 놀이공원 가드릴 테니까요.”

“이번 주말에는 자제하세요!”

“어?”

채경이 울상을 짓는다.


“그럼 놀이공원에 왜 가?”

“놀이공원에 왜 가냐고요?”

“하!”

두 사람이 코웃음을 친다.


“데이트죠.”

“데이트?”

채경이 볼을 부풀린다.


“이 겨울에 무슨 데이트?”

“그러니까 더 좋죠.”

은호가 미소를 짓는다.


“추우면?”

“붙는다.”

윤우가 은호 옆에 붙는다.


“당연한 상식 아니겠어요?”

“그래?”

채경이 미소를 짓는다.


“그러면”

“당연히, 자연스러운 스킨쉽까지?”

“오.”

은호가 미소를 짓는다.


“그런데, 여자가 놀이기구를 너무 잘 탄다면?”

“보호해주고 싶지 않잖아요.”

“그래?”

“당연히!”

“그래요!”

“그, 그래.”

두 사람의 연합에 도저히 당해낼 수 없는 채경이다.


“그러니까, 가서는 얌전히.”

“동물이나 보고 오세요.”

“힝.”

채경이 울상을 짓는다.


“그래도?”

“가서 회전목마나 타세요.”

“어?”

“낭만적이잖아요. 솜사탕 먹으면서 회전목마 타는 거.”


은호가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는다.


“그런 거야?”

“네!”

은호가 채경의 책상을 두 손으로 짚는다.


“그러니까, 팀장님 최대한 청순하게!”

“로맨스 소설 스럽게!”

“으, 응.”

채경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무슨 생각해요?”

“아, 아니에요.”

채경이 미소를 짓는다.


“동물원은 이쪽이에요.”

“알겠습니다.”

채경이 미소를 지으며, 진호를 이끈다. 그리고 진호가 자연스럽게 손을 잡는다.


“흠.”

“네?”

“아, 아니에요.”

1단계는 성공이다.




“푸하하!”

“저거 봐요.”

“어머, 귀엽다.”

“우와!”

“웬일이니?”


“채경 씨 저것 좀 봐요.”




“하아, 다리 아프다.”

“많이 아파요?”

“조금요.”

채경이 싱긋 웃는다.


“하지만 괜찮아요.”

“조금 많이 걸었나?”

“아니에요.”

채경은 속으로 하이힐을 신고 온 것을 후회하고 있다. 물론 예뻐보이기는 하지만, 물개 쇼, 동물 쇼, 새 쇼, 등을 보고 나니 종아리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댕긴다.


“우리 어디 앉을까요?”

“조금만 더 걸어요.”

채경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네?”




“우리 여기서 뭐 먹을까요?”

“네.”

회전목마를 타러갔지만, 역시 체질에 맞지 않아서 그만 둔 채경이다. 그리고 이곳은 범파카 앞이다.


“그럴까요?”

온열기구가 설치되어 있지만 그래도 추웠다.


“빨리 먹어요.”

“네.”

채경이 재빨리 샌드위치를 꺼냈다.


“우와.”

“많이 먹어요.”

“네.”

기쁜 마음으로 쇠고기 샌드위치를 한 입 문 진호의 표정이 썩 밝지 않다.


“왜 그래요?”

“그게.”

진호가 어색한 듯 머리를 긁적인다.


“?”

채경도 한 입 먹는다.


“!”

이건 딱딱해도 너무 딱딱하다.


“조금 딱딱하네요.”

“그, 그러게요.”

“내가 커피 한 잔 줄게요.”

“네.”

채경이 보온병에서 커피를 따른다.


“마셔요.”

“고마워요.”

진호가 미소를 지으며 따뜻한 커피를 마신다.


“?”

진호의 표정이 이상하다.


“왜요?”

진호는 다시 한 모금 마신다.


“!”

‘퉤’


그러더니 커피를 뱉어 버린다.


“진호 씨 왜 그래요?”

“채경 씨가 좀 먹어봐요.”

“?”

채경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

채경 역시 커피를 뱉는다.


“미안해요.”

“괜찮아요.”

아침에 서두르다가 설탕 대신 소금을 넣은 모양이다.


“영양은 나름 훌륭하겠네요.”

진호가 어색하게 웃는다.




“하아.”

화장실로 도망친 채경은 한숨을 쉰다.


“재미가 하나도 없잖아.”

그따위 물개들을 보려고 온 게 아니다. 물론 물개들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자신과 주파수가 맞지 않다. 라고 생각하는 채경이다.


“휴우.”


눈 앞에 롤러코스터가 자신을 향해 손짓하고 있는데, 타지 못하다니, 채경은 너무나도 아쉽다.


“하아.”


타고 싶다! 간절히!




“저기 진호 씨?”

“네?”

진호가 고개를 든다.


“왜요?”

“진호 씨 놀이기구 잘 타요?”

“놀이기구요?”

진호는 등으로 식은 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그게.”

그 순간 태균이 말이 떠오르는 진호다.


“잘 타요.”




“놀이공원?”


태균이 코웃음을 친다.


“너 같은, 놀이기구 심장 두근두근 발작 벌렁증 환자가?”

“내, 내가 무슨?”

“어이고, 후룸라이드 타고 기절한 사람 네가 처음일 거다.”

“흠.”

진호가 헛기침을 한다.


“그건.”

“알아 알아.”

태균이 미소를 짓는다.


“그런데 무슨 베짱으로 놀이공원을 다 간대?”

“뭐, 채경 씨가 타는 게 그게 그거 아닐까?”

“뭐?”

태균이 코웃음을 친다.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거다.”

“어?”

“여자들이 그런 거 더 잘타.”

“그, 그래?”

“그럼.”


태균이 미소를 짓는다.


“채경 씨가 바이킹이라도 타자고 하면 어쩔래?”

진호가 침을 삼킨다.


“타, 타야지.”

“네가?”

“그, 그럼.”

“그래 그러면 가라.”

“응?”

태균이 진호의 어깨를 두드린다.


“그렇게 여자친구를 위해 헌신하겠다는데, 그래 꼭 가.”

“진짜?”

“대신 놀이기구 반드시 타라.”

“어?”

진호의 표정이 굳는다.


“그게 무슨?”

“그래야 있어 보이잖냐?”

“어?”

“남자가 딱 멋있게.”

“그래?”

“그럼.”

태균이 주먹을 쥔다.


“그게 남자거든.”

“그, 그런가?”

진호는 도대체 놀이기구와 남자가 무슨 관계인 지 모르겠다.


“그, 그래.”

하지만 지금 상황은 어떻게든 대답을 해야할 듯 하다.




“정말요?”

채경이 미소를 짓는다.


“사실 저 놀이기구 별로 못 타요.”

채경은 일단 내숭을 베이스로 깔았다.


“그래도 진호 씨가 옆에 있으니까.”

“네.”

진호의 다리가 가늘게 떨린다.


“타러 가실까요?”

“네.”

채경이 진호의 손을 잡는다.


“우리 뭐부터 탈까요?”

“글쎄요?”

진호는 일단 눈에 보이는 조그만 바이킹을 가리켰다.


“저거 탈까요?”

“에, 시시해요.”

그러더니 채경이 진호를 이끈다.


“따라와요.”

“네?”

진호가 마지못해 끌려간다.




“!”

진호는 입을 딱 벌렸다.


“재밌겠, 아니, 어머, 무서워 보인다.”

채경이 겨우 말을 막는다.


“진호 씨 우리 저거 타러 가요.”

“하하.”

독수리 요새. 진호가 혐오하는 놀이기구다.


“그럴까요?”

남자다운 모습, 진호는 속으로 열심히 외운다.


“하하.”




“휴우.”

줄을 서고, 이제 놀이기구에 탈 차례다.

“우리 맨 앞에 타요.”

“맨 앞요?”

“네!”

채경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맨 앞에 선, 진호는 지금 다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다. 물론 채경은 눈치를 못 채고 있다.


“제가 먼저 앉을게요.”

“네.”

진호는 내릴 때 빨리 내리기 위해서, 안 쪽에 앉는다.


“안전바 내려갑니다.”

“후우.”

진호가 한숨을 쉰다.


“왜요?”

“오랜만이라 두근거려서요.”

“그래요?”

진호는 애써 거짓말을 하고 양 옆에 손잡이를 꽉 잡는다.


“그럼 즐거운 여행 되세요.”

직원들이 손을 흔드는 것 따.위.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후우.”

진호는 깊게 심호흡을 했다.




진호는 난생처음 2분이라는 시간이 굉장히 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분간의 즐거운? 놀이가 끝나고 난 진호는 말 그대로, 하얗게 질린 불쌍한 강아지 모양이었다.


“진호 씨!”

반면 얼굴에 붉은 기색을 보이며 신이 나 있던 채경은 당황했다.


“괜찮아요?”

“아, 네.”

진호가 힘없이 중얼 거린다.


“손님, 괜찮으십니까?”

“네.”

진호는 지금 이 순간, 속이 니글 거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괜찮아요.”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니요.”

진호는 혼자 힘으로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도와 드릴까요?”

“네.”

진호가 채념을 하고 대답했다. 직원이 옆에서 부축을 하니, 쉽게 놀이기구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그럼 조심해서 내려가십시오.”

“네.”

진호가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었다.


“괜찮아요?”

“아, 네.”

하지만 전혀 괜찮아보이지 않는 진호다.


“그러게 왜 잘 탄다고 했어요?”

“네?”

“안 타도 되는데.”

“아니요.”

진호가 미소를 짓는다.


“채경 씨 놀이기구 타고 싶었잖아요.”

“네?”

“딱 보였어요.”


진호가 싱긋 웃는다.


“그런데 기대를 어떻게 져버려요?”

“진호 씨.”

“나는 정말 괜찮아요.”

“그래요?”

“네.”

하지만 진호의 말이 거짓임은 바로 밝혀졌다.


“우욱!”

땅을 밟자 마자, 채경의 소금 커피와, 돌덩이 샌드위치가 함께 아름답게 어울린 모습을 손님들에게 보여준 진호다.




“오늘 잊지 못할 거예요.”

“그렇겠죠.”

진호는 울상을 짓는다.


“정말 최고였어요.”

“네?”

“멋있어요.”

“멋은요.”

“아니.”

채경이 고개를 젓는다.


“진호 씨는 내 왕자님이에요.”

“!”

그리고 다가오는 입맞춤.


“고마워요.”

그리고 집으러 들어간 채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