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AM 7:42 [완]

AM 7:42 <열아홉번째 이야기>

권정선재 2008. 1. 22. 19:30
 




AM 7:42




19화


보라색 꽃




“휴.”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응.”

정수가 이마를 짚자, 이 기사가 황급히 다가 온다.


“정말 괜찮으십니까?”

“아스피린이나 줘.”

이 기사가 불안한 표정으로 아스피린을 건넨다.


“정말 병원 가보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시간이 없잖아.”

정수가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아스피린만 먹으면 괜찮은 걸?”

“그래도.”

“걱정하지 마.”

“알겠습니다.”


정수가 미소를 짓는다.


“우리 이 기사 너무 책임감이 강해.”

“당연한 일인 걸요.”

“나는 정말 괜찮으니까, 그렇게 사서 걱정하지 말라고.”

“네.”

이 기사가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정말 아프시면 병원 가셔야 합니다.”

“알아.”

정수가 손을 내젓는다.


“하지만 아직 괜찮다니까.”

“네, 그러면 그렇게 믿겠습니다.”

“참!”

뒤돌아서는 이 기사를 정수가 다시 부른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 이한테는 말하지 마.”

“네?”

“주현 씨에게 말이야.”

“아.”

이 기사의 눈이 흔들린다.


“부탁이야.”

“알겠습니다.”

정수가 미소를 짓는다.


“정말 고마워요.”

“별 말씀을 요.”

“그럼 나가봐요.”

“네.”


이 기사가 나가고, 정수는 책상에 엎드린다.


“하아.”

머리가 너무 아프다.


“정말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그래?”

주현의 표정이 심각하다.


“병원도 안 가려고 하고?”

“네.”

이 기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주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것 참 큰일이군.”

“회장님 위도 안 좋으신대, 이렇게 계속 아스피린 드셔도 될까요?”

“그러니 말일세.”

주현이 고개를 숙인다.


“고집은 계속 부리지?”

이 기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자네가 힘들겠군.”

“아닙니다.”

“아니긴.”

주현이 이 기사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미안하이.”

“네?”

“내가 별로 믿음을 주는 사내가 아니라서 말이야. 그 사람이 그렇게 고집불통이 된 거 같군. 정말 미안해.”

“아닙니다.”

“그 사람 어떻게든 병원은 데리고 가야 하는 데 말이야.”

주현이 한숨을 쉰다.


“무슨 방법 없을까?”

“글쎄요.”

“흠.”




“뭐?”

채경이 커피를 내려놓는다.


“아빠는 그동안 뭐 하셨어요?”

“네 엄마 성격 알잖니?”

“하아.”

채경이 털썩 자리에 앉는다.


“엄마는 뭐라고 하세요?”

“나에게는 아무 말도 꺼내지 않고 있다.”

“하아.”

채경이 머리를 짚는다.


“우리 엄마 왜 그런데요?”

“후후후, 그러게나 말이다.”

“하여간, 아빠도 왜 그래요? 당장 엄마에게 아빠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하세요. 그리고 병원으로 빨리 모시고 가셔야죠. 이렇게 나에게 전화만 하시면 어떡해요? 엄마 심각하면 어쩌시려고요?”

“네 엄마한테 말하면.”

“?”

“이 기사가 말한 게 바로 들통이 날 텐데?”

“하지만.”

“나도 그 사람이 약을 먹은 거는 본 적이 있다만 겨우 한 번 뿐이다. 다소 무리를 하는 것 같지만, 아직은 모르겠다.”

“하아.”

채경은 한숨을 쉰다.


“모르겠어요.”

“그래 미안하다. 너도 힘들 텐데.”

“제가 집에 한 번 갈까요?”

“아니다.”

“왜요?”

“어차피 조만간 이사 올 건데 뭐.”

아, 그걸 잊고 있었다.


“네. 들어가세요.”

“그래 너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편히 쉬거라.”

“네.”

채경은 한숨을 쉬며 전화를 닫았다.


“하아.”

이런 걸 보고 산 너머 산이라고 하는 구나라는 것을 채경은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계속해서 힘든 일의 연속이다.


“휴우.”

이 일을 털어 놓을 상대도 없다.




“다녀 왔어요.”

“늦었군.”

“회사가 좀 바빠요.”

정수가 미소를 짓는다.


“나 기다리지 말고 자라니까요.”

“당신이 안 왔는데 어떻게 자.”


주현이 정수의 손을 잡는다.


“어서 방으로 가지.”

“네.”

정수가 미소를 짓는다.




‘♩♪♫♪’


“여보세요?”

“나에요.”

“아, 진호 씨.”

채경이 미소를 짓는다.


“무슨 일이에요?”


“왜요? 나는 전화하면 안 되는 거예요?”

“아니요.”

“그냥 채경 씨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요.”

“나도 진호 씨 목소리가 듣고 싶었는데.”

“우와, 우리 텔레파시가 통하나봐요?”

“그런 가요?”

채경이 낮게 웃는다.


“안 자요?”

“이제 자야죠.”

채경은 고민이 된다.


“저,”

“네?”

“내 이야기 좀 들어줄래요?”

“힘든 이야기에요?”

“네.”

“그럼 내가 갈게요.”

“네?”

채경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힘든 이야기는 얼굴 맞대고 이야기하면 말하기가 더 쉬워지는 법이에요. 상담하기도 편하고요. 기다려요.”

“진호 씨!”

하지만 전화기는 이미 꺼져 있다.




“어디 가게?”

“그 사람이 고민이 있대.”

“그래?”

진희가 귤을 까먹으며 대꾸한다.


“야밤에 남녀가 무얼 하려고?”

“어린 게, 까불기는.”

진호가 미소를 짓는다.


“늦을 지도 모르니까 먼저 자고 있어.”

“알았습니다.”

진희가 귤을 던진다.


“하나 먹으면서 가세요.”

“왜?”

“입에서 귤 냄새 퍼지면 좋더라.”

진희가 딴청을 피우며 말하자, 진호의 얼굴이 붉어진다.


“어유 응큼하기는.”

“나, 나 갈게.”

“그래.”

진호의 뒷 모습을 보며 진희가 미소를 짓는다.


“하여간 귀엽다니까.”



“조그만 게.”

진호는 아직까지 얼굴이 화끈 거린다.


“흠.”

그런데, 채경의 집 앞에 서니, 아까 진희가 한 말이 자꾸 생각난다.


“먹어야 하나?”




“어? 저기 오네.”

채경이 미소를 지으며 가디건을 걸친다.


“안 와도 된다니까.”

휴일까지 자신에게 반납해주는 진호가 너무 고맙다.




“?”

채경이 고개를 갸웃한다.


“왜 안 오는 거지?”

아까 진호를 본 지, 벌써 10분이나 지났다.


“흠.”

채경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진호 씨!”

“!”

진호가 무언가 나쁜 일이라도 한 듯이 움찔한다.


“거기서 뭐해요?”

“네?”

진호의 얼굴이 붉다.


“어디 아파요?”

“아, 아니에요.”

그러더니 재빨리 손을 놀린다. 그리고 입에 무언가를 던져 넣는다.


“그게 뭐예요?”

“자까마운요.”

“?”

진호가 힘겹게 그걸 삼킨다.


“하, 하핫.”


“어서 와요. 춥다.”

“네.”




“뭐 마실래요?”

“음, 코코아요.”

“네.”

채경이 코코아를 타서 건넨다.


“안 와도 되는데.”

“아니요. 채경 씨가 고민이 있다는데요.”

“별 거 아니에요.”

“무슨 고민인데요?”

채경이 가만히 커피 잔을 만지작 한다.


“채경 씨.”

“어머니가 아픈 거 같아요.”

“네?”

“두통약을 너무 많이 드신데요.”

“그러면 병원을 가시면 되잖아요.”

채경이 고개를 젓는다.


“안 가려고 하세요.”

“왜요?”

“자신은 항상 강한 줄 아시는 분이거든요.”

채경이 쓸쓸히 웃는다.


“아직도 자신이 강한 줄만 아세요. 아닌데.”

채경의 눈이 붉어진다.


“우리 엄마지만, 참 바보 같은 분이세요. 그렇게 혼자 다 안 짊어지셔도 되는데, 항상 혼자만 힘든 거 하시려고 해요. 진희 씨 일도 그렇고 말이에요. 항상 혼자 모든 것을 다 책임지려고 하세요. 힘들면 힘들다고, 나나 아버지께 말씀 하셔도 되는데, 아무 말도 안 하세요. 지금 아프신 것도, 엄마가 말씀 하신 게 아니에요. 엄마 밑에서 일하시는 이 기사님이 말씀해주신 거예요.”

“채경 씨.”


진호가 채경의 손을 잡는다.


“나 어떡해야 할까요?”

“그냥 솔직하게 말하는 거 어때요?”

“그럼 이 기사님이 나쁜 사람 되는 거잖아요. 엄마는 분명히 말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걸 우리가 알고 있으면 뻔하잖아요. 이 기사님만 나쁜 사람 되는 거니까, 우리가 알고 있으면 안 돼요.”

“하아.”

진호도 답답하다.


“그러면 어떡하죠?”

“그러니까요.”

채경이 고개를 숙인다.


“회사도 어렵대요.”

“그래요?”

“그런데 저에게는 아무 말씀 안 하세요.”

채경의 어깨가 가늘게 떨린다.


“나도 이제 30이니까, 돈도 꽤 모아놨거든요.”

“네.”

“그래서 나에게 부탁해도 되는 건데, 엄마는 여전히 고집을 피우시죠. 물론 내 돈 엄마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걸 알지만, 그래도 조금은 엄마가 나에게 이야기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조금만.”

“하아.”

진호가 자신의 어깨로 채경을 기대게 한다.


“조금만 더 기다려요.”

“네?”

“어머니, 분명 말씀 하실 거예요.”

“그럴 까요?”

“네.”

진호가 힘주어 대답한다.


“분명 채경 씨 마음도 아실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당연히 그러세요.”

진호가 미소를 짓는다.


“그러니가 채경 씨는 괜한 걱정하지 마세요.”

“괜한, 걱정 일까요?”

“그럼요.”


“고마워요.”

“뭐가요?”

“이렇게 내 얘기 들어줘서요.”

“뭘요? 애인 사이인데 당연한 거잖아요.”

“킥.”

채경이 웃음을 터뜨린다.


“꼬맹이 주제에, 애인 애인 하니까 웃기다.”

“내가 왜 꼬맹이에요?”

“그럼? 꼬맹이 아니에요?”

“에? 나도 이제 22살이라고요.”


“한참 아기네요.”

“치.”

그 순간 채경이 진호의 목을 잡아 당긴다.


“!”

그리고 긴 입맞춤.


“언제나 나만의 아기였으면 좋겠어요.”

“약속 할게요.”

진호가 조심스럽게 채경의 등을 쓸어본다.


“흣.”

채경이 입에서 탄성을 터뜨린다.


“채경 씨.”

“진호 씨.”

조심스럽게 둘은 하나가 되어 갔다.




“흐음.”

채경은 약간의 고통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 났어요.”

“!”

트렁크 팬티만 입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는 진호를 보니 얼굴이 붉어진다.


“이미 볼 거 못 볼 거 다 본 사이에, 부끄러워하기는.”

“시끄러워요!”

사실 부끄럽기는 진호도 마찬가지다. 진호도 채경이 처음이다.


“출근 안 해요?”

“출근요?”

채경은 시계를 본다.


“!”

하마터면 또 늦을 뻔 했다.


“아!”

자리에서 일어 난 채경이 신음을 흘린다.


“왜요?”

진호가 달려 온다.


“아파요?”

“조금요.”

이런 거구나, 라며 채경은 새로운 사실을 깨달는다.


“나 좀 씻을게요.”

“그래요.”




“점심 같이 할래요?”

“점심요?”

진호가 미소를 짓는다.


“좋죠.”

“편의점 샌드위치 괜찮죠.”

“그럼 제가 쏘겠습니다.”

“킥.”

채경이 수줍은 미소를 보인다.


“알았어요. 점심에 봐요.”

“네.”

진호와 채경이 손을 들며 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