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아저씨
“저 사람 정말 대단해.”
“왜요?”
“아직도 몰라?”
경수 엄마는 고개를 갸웃 거린다.
“아유, 민혁이 엄마. 경수 엄마 여기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현우 엄마가 민혁 엄마를 탓한다.
“그런가?”
민혁 엄마가 고개를 갸웃한다.
“저 남자 완전 순애보잖아.”
“순애보요?”
“애들 사이에서는 바보 아저씨로 불린다지?”
“바보, 아저씨요?”
정수 엄마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대체 왜요? 사람이 정신은 멀쩡해 보이는데.”
“어휴 정신이 이상해서인가?”
“맞아 그런 게 아니라, 너무 지극정성으로 부인을 사랑해서 그런 별명이 붙은 거야. 요즘에는 의사들도 그렇게 부른다던데?”
“그래?”
“도대체 얼마나 지극정성이길래 그런 별명까지 붙었대요?”
“저 남자 부인이 암이래.”
“어머.”
자식들이 암에 걸려 있는 세 아줌마의 마음에도 비슷한 공감대가 형성된다.
“그런데 병원에 입원한 지 어느덧 7년 째라네.”
“오래 살고 있네요.”
“그렇지.”
민혁 엄마가 슬픈 표정을 짓는다.
“우리 민혁이도 그렇게 살아주면 좋을 텐데.”
“또 쓸 데 없는 소리 하고 있어.”
“그러게.”
민혁 엄마가 눈물을 닦아 낸다.
“그렇게 7년이나 부인을 병간호 하고 있는 거예요?”
“응.”
정수 엄마의 눈에도 눈물이 고인다.
“어머, 어떡해.”
“게다가 저 남자 그 유명한 S 그룹 다녔었대.”
민혁 엄마가 목소리를 낮춘다.
“그런데 부인 때문에 그만 뒀다네.”
“어머.”
“그리고 부인이 시간 개념이 없어졌대. 너무 오래 병실에 있으니까 말이야. TV도 안 보고. 그래서 자꾸 봄이 되면 죽는다고 그러더래.”
“그래서요?”
“일년 365일 겨울 옷만 입고 다니잖아.”
정수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그게 정말이에요?”
“그래.”
때마침 바보 아저씨가 지나간다. 두꺼운 겨울 파카를 입고. 마치 지금이 1월인냥.
“정말 대단한 사람이네요.”
“우리 같이 장기입원 보호자들에게는 귀감이 된다니까.”
민혁 엄마가 쓸쓸한 얼굴로 바보 아저씨를 바라본다.
“자기 왔어요?”
“응.”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보고 싶었어.”
“그렇지?”
“그나저나 봄은 언제 오나?”
“왜?”
“봄이 오면 당신에게 더 안 힘들게 하려고.”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했잖아!”
남자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알잖아. 나 어차피 죽는 거.”
“그런 말 하지마.”
“헤헤. 알았어요. 자기 화내지 말아요.”
여자가 남자의 손을 잡아준다.
“당신 아니면 나 아직 못 살고 있을 거라는 거 알아. 그러니까 화내지 말아요. 알았죠?”
“아, 알았어.”
여자가 싱긋 웃는다.
“자기 나 팥죽 먹고 싶어요.”
“팥죽?”
“응.”
여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겨울이라서 그런 지 뜨거운 게 당겨.”
“알았어.”
남자가 두꺼운 파카를 걸쳐 입는다.
“다녀올게.”
“응!”
“하아.”
남자가 병실을 나서고 파카를 벗는다. 남자의 부탁으로 병실의 온도는 항상 22도, 창문은 없다. 남자는 팥죽을 사러 간다.
“바보 아저씨다.”
“그러게.”
간호사들도 애틋한 표정으로 바보 아저씨를 바라 본다.
“정말 멋있다.”
“그러게, 힘들지도 않나?”
그렇게 모두에게 바보라고 불리는 남자는 오늘도 여자를 위해서 겨울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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