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랑해!
- Season 2 -
스물두 번째 이야기
엄마와 아들. 둘
‘철컥’
문이 열리는 소리. 대연은 애써 귀를 닫는다.
“대연아.”
화영이었다.
‘삐걱’
방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대연은 벽을 보며 눈을 감고 자는 척 했다.
“자니?”
화영의 조심스러운 목소리. 대연은 숨소리 조차 내지 않는다.
“후우.”
화영이 한숨을 내쉰다.
“미안해.”
화영이 대연의 팔에 손을 올린다.
“엄마가 정말로 미안해. 우리 대연이한테 엄마가 너무너무 미안해. 우리 아들한테 뭐든 다 해줄 수 있는 좋은 엄마가 아니라서 너무나도 미안해. 엄마는 대연이에게 모든 것을 다해준다고 생각하지만, 대연이는 아닐 거야.”
대연이 조심스럽게 숨을 쉰다. 자꾸만, 자꾸만 들킬 것만 같다. 하지만 자고 있지 않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는 않다.
“알아. 엄마도 대연이 마음.”
화영이 심호흡을 한다.
“대연이가 이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 지 이 엄마가 누구보다 잘 알아. 남들만큼 좋은 것도 해주지 못하고, 고작 급식 아줌마인 이 엄마를 누구보다도 좋아해주는 거 이 엄마가 더 잘 알아.”
화영이 입술을 꼭 깨문다.
“그래도 엄마는 우리 아들이 안 그랬으면 좋겠어.”
대연도 입술을 꼭 깨문다.
“아팠지? 많이 아팠지?”
화영이 아직 솜털이 가득한 대연의 뺨을 쓴다. 빨갛게, 부어 있다.
“미안해, 대연아.”
화영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는 그럴 수 밖에 없었어. 안 그러면, 그러지 않으면 네가 멈추지 않았을 거 같으니까. 엄마를 생각해주는 대연이 마음은 이 엄마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만 거기서 그러면 안 되는 거니까.”
화영이 손등으로 눈물을 닦는다.
“그래도 이 엄마는 너무나도 기분이 좋았어.”
화영이 미소를 지으며, 대연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평상시에는 이 엄마가 급식 아줌마 한다고 창피해 하던 네가, 창피해서 이 엄마랑 말도 섞기 싫다고 항상 귀에 MP3 이어폰을 꼽고 있던 네가, 그렇게 엄마 편을 들어주었을 때 이 엄마는 얼마나 뿌듯했는 지 아니? 이 엄마 말을 하나도 듣고 있지 않은 거 같으면서도 그렇게 마음 속으로 세세하게 하나하나 다 신경 쓰고 있는 줄, 솔직히 엄마는 몰랐어. 그렇게 우리 대연이가 엄마 생각해주는 지 몰랐어.”
화영이 고개를 끄덕인다.
“언제 이렇게 컸니?”
대연이 침을 삼킨다. 눈물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사나이 체면이 있지 여기서 눈물을 흘리면 안 됐다. 만일 눈물이 흐른다면 여태까지 참은 것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 버린다. 대연은 애써, 겨우 울음을 참는다. 누군가 터뜨리기만 하면 왈칵 터져버릴 그 눈물을 겨우 참았다.
“엄마는 네가 내 아들이라서 정말 고마워.”
화영이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네 누나 주연이도 정말 고마워. 아빠도 없는데, 하나도 잘못하는 거 없이 예쁘고 바르게 커줘서 너무나도 고마워. 평상시에는 누나에게 까불고 건방지게 굴기도 하지만, 그게 주연이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는 거 이 엄마도 잘 알고 있고, 네 누나인 주연이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화영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흘러서 대연의 볼에 떨어진다.
“!”
대연이 가만히 눈을 뜬다. 눈 앞에 엄마의 그림자가 있다. 거실로 비춘 엄마의 그림자가, 그런데 이렇게 엄마의 그림자가 작았던 것일까? 항상 커다랗고 무섭기만 했던 엄마의 그림자가 이렇게 작았던가? 대연은 갑자기 슬픈 생각이 홍수처럼 밀려 왔다. 여기서 울면 안 되는데. 안 되는 건데.
“언제나 대연이에게 부족한 엄마라서 너무 미안해.”
화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고 싶은 거 정말 많은 거 잘 알고 있는데, 하고 싶은 거 다 못해줘서 너무 미안해. 너도 엄마를 생각해서 하고 싶은 거 다 말 못하는 거 알고 있어서 더 미안해. 남들 다 하는 거 못 시켜줘서 미안해. 그 흔한 학원도 한 번 못 보내줘서 미안해. 누나 대학 다녀서 용돈도 못 줘서 너무너무 미안해. 다른 애들 PC방 다닐 때 혼자서 집에서 컴퓨터 한다고 투정부려도 그냥 못 들은 척 했어.”
화영이 울먹 거린다.
“그게 네가 얼마나 망설이고 망설여서 한 말일 지 다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 내가 엄마이니까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건데, 그냥 못 들은 척 하고 모른 척 해서 이 엄마 너무너무 미안해.”
화영이 천장을 본다.
“하아.”
가슴 속 깊이서 나오는 한숨을 몰아쉬는 화영이다.
“남들 엄마처럼 좋은 엄마가 못 되어줘서 너무나도 미안해.”
화영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린다.
“너는 다른 아줌마들 아이보다 훨씬 좋은 아이인데도, 이 엄마는 그러지가 못했어. 오늘도, 오늘조차도 그러지 못했어.”
화영의 어깨가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미안, 미안.”
대연은 다시 조심스럽게 눈을 떠 보았다. 벽에 비춘 화영의 너무나도, 너무나도 작고 초라한 그 그림자의 어깨가 끊임 없이 들썩이고 있었다. 그래도 울음 소리는 들리지 않으려고 입을 꼭 가리고 있었다. 대연에게 그래도 엄마이니까, 억지로 울음을 참는 화영이었다. 엄마이니까.
“미안해, 미안해 대연아.”
화영이 계속 주절주절 말을 꺼내 놓는다.
“그리고 고맙고, 정말 사랑해.”
화영이 다시 눈물을 닦는다.
“주연이도 너무나도 든든하지만, 그래도 이 엄마는 항상 네가 더 든든했어. 아들이라서 그렇기도 하고, 우리 대연이는 아빠를 많이 닮았으니까, 그랬으니까 더 든든했어. 너무 좋은 아들이니까.”
화영은 눈물을 흘리며 침을 삼켰다.
“후우.”
“하아.”
“최 선생.”
“아, 김 선생님.”
대연의 담임인 최 선생이 미소를 짓는다.
“너무 신경 쓰지 마.”
김 선생이 최 선생의 어깨를 두드린다.
“저는 정말 부족한 교사인가봐요.”
최 선생이 고개를 숙인다.
“저는 여태 대연이 어머님이 급식 일을 하고 계신 지 몰랐어요. 조금만, 아주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되는 일이었는데, 저는 그 정도의 관심도 대연이에게 기울이지 않았어요. 대연이에게 아버지가 없는 거 잘 알고 있었는데, 그랬는데, 그랬는데, 그래서 대연이에게 관심을, 아주 작은 관심이라도 더 보여줬어야 하는 건데, 그랬어야, 그랬어야 하는 거였는데, 저는 그러지 못했어요.”
최 선생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저는, 저는 정말 담임의 자격도 없는 사람이에요. 아니 담임 자격만 없는 게 아니라, 아예 선생 자격도 없어요. 저 같은 게 무슨 선생이에요. 아이 사정도 전혀 모르는 저 같은 게 무슨, 저 같은게.”
“아니에요.”
김 선생이 티슈를 건넨다.
“그래도 이런 마음을 가지고 계시잖아요. 그래도 대연이를 이해하려고 하시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마음을 가진 최 선생님이시니까 선생님 자격이 있으신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도 아이들 마음을 전혀 이해하고 싶어하지 않아하시는 분들도 계시니까요. 그러니까 최 선생님은 자격이 있으신 거예요.”
“흐윽.”
최 선생이 눈물을 닦아 낸다.
“저는 정말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처음으로 교사가 되고, 처음으로 담임을 맡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좋은 선생님이 되어주고 싶었어요.”
“알아요.”
김 선생이 고개를 끄덕인다.
“학기 초에 다른 그 어떤 선생님들 보다 아이들 이름을 열심히 외우셨던 게 바로 최 선생님이시잖아요. 아무리 아이들이고 학기초라지만,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서운 할 거라고 정말 열심히 외우셨잖아요. 다 알아요. 최 선생님이 그 어느 분보다 노력했단 거 정말로 잘 알아요.”
“그런데, 그런데.”
최 선생의 어깨가 들썩인다.
“결국은, 결국은 이렇게 되어 버렸어요.”
“최 선생님.”
“아이 마음에 상처를 주고 말았어요.
“상처는요.”
“아니요.”
최 선생이 고개를 젓는다.
“분명 대연이는 많은 상처를 받았어요.”
최 선생이 울먹 거린다.
“저 때문에, 저 때문에.”
“최 선생님.”
“제가 무능해서 그랬어요.”
최 선생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떨어 진다.
“제가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그래서 그 아이를 말렸더라면, 그랬다면 대연이가 그러지 않아도 됐을 텐데.”
“후우.”
김 선생이 한숨을 내쉰다.
“최 선생님.”
“대연이한테 미안해서 어떡해요.”
최 선생이 울먹 거린다.
“제가, 제가 먼저 알아서, 대연이가 그렇게 화를 내기 전에 미리 말렸더라면, 그랬더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모든 게, 모든 게 전부 다, 무능한, 너무나도 무능한 제 탓이에요. 다른 누구의 탓도 아닌, 무능학기만 한 제 탓이라고요. 선생 자격도 없는 제 탓이란 말예요.”
“최 선생.”
그 순간 부장이 다가온다.
“부, 부장 선생님.”
“그렇게 자책하지 말어.”
부장이 커피를 내려 놓는다.
“그래서 좋을 것이 무엇이겠는가?”
“부, 부장 선생님.”
“대연이도 마음 다 알고 있을 거야.”
부장이 미소를 짓는다.
“다 봤어. 바로 대연이 안아줬었지?”
“오 그랬어요?”
최 선생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최 선생은 훌륭한 교사라는 것을 보여준 거야.”
“하, 하지만.”
“아니.”
부장이 고개를 젓는다.
“오히려 그 상황에서는 그렇게 놔 두었어야 했어. 대연이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 아니었겠나? 그러니까 오히려 잘 한 거야.”
“부장님.”
“보라고.”
부장이 미소를 짓는다.
“분명 두 사람의 사이는 더 좋아질 테니까.”
“하지만.”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
부장이 최 선생을 바라본다.
“그렇게 힘들어만 한다면, 다른 반 아이들은 어쩔 샘인가?”
“!”
“대연이도 소중한 한 학생이지만, 최 선생 반의 다른 아이들도 정말 소중한 학생들이잖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그 아이들에게 관심을 주기 시작한다면 된 거야. 대연이는 속이 깊은 아이라고.”
“부, 부장 선생님.”
“잘 해 봐.”
부장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최 선생님. 좀 힘이 나요?”
“네.”
최 선생이 고개를 끄덕인다.
“조금은, 아주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후우.”
김 선생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다행이다.”
“뭐가요?”
“저는 제가 하루 종일 위로만 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다행히 아니네요.”
“뭐예요?”
“봐요. 그렇게 웃어요.”
최 선생이 웃으며 김 선생을 노려보자, 김 선생이 훈훈한 미소를 짓는다.
“그게 정말 담임의 미소니까요.”
“기, 김 선생님.”
“그러다 둘이 정분 나겠다.”
부장이 자나가면서 장난스럽게 말했다. 최 선생의 마음에 무언가 새로운 각오가 또렷하게 새겨 졌다.
“정말 좋은 선생님이 되겠어요.”
“그래야지.”
김 선생이 미소를 짓는다.
“이제 좀 웃어요. 눈이 퉁퉁 부었네.”
“헤헤.”
대연에게, 그리고 또 다른 아이들에게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쏟아야 겠다고 다짐하는 최 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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